이웃사촌

2012-01-06     의약뉴스
명심보감에 ‘먼 곳에 있는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하고, 먼 곳의 일가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같지 못하다(遠水 不救近火, 遠親 不如近隣)’는 구절이 있다.

해서 이웃은 소중한 만큼 좋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

이웃에 화장품 가게가 있다면 늘 향긋한 냄새를 맡지만 매연과 악취를 내뿜는 공장이 들어선다면 낯을 찡그려야 하고 건강도 나빠져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이해와 양보, 인내와 배려의 미덕을 모르는 이웃을 만나면 아파트 소음 분쟁과 골목 주차 문제로 이웃사촌 간 주먹다짐과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집값이 백 냥이면, 이웃 값은 천 냥”이란 속담이 있는 것 같다.

간혹 옆 밭에서 심은 호박이 내 울타리를 넘어와 무거운 열매를 매달곤 한다.

호박 무게 때문에 싸리문 담장이 기우는 피해를 입고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무단으로 들어와 열매만 따가는 이웃도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놓고, 담을 넘어간 나무 가지에 달린 과일은 옆집의 몫으로 양보하거나 ‘소지밥’으로 선물하는 배려와는 거리가 먼 이웃이다.

소지밥은 나무 가지가 옆집의 담을 넘으면 그늘이 지고 떨어진 낙엽을 쓸어야 하는(소지=掃地) 민폐를 끼치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미안함을 과일 한 바구니로 배려하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소꿉친구의 묵인 아래 친구의 아버지가 원두막에서 지키고 있는 과일밭을 한 밤중에 서리한 경험도 적지 않다.

당시엔 ‘서리밥’이라 하여 극히 일부분을 이웃과 나눠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서리꾼들은 비싼 농작물만 골라 중국 어선처럼 싹쓸이를 하기 때문에 밭주인도 모르는 척 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지금은 이웃이 새로 이사를 오면 불길처럼 번성하라며 성냥이나 초를 선물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적 만해도 할머니는 아궁이 불길을 고르는 부지깽이, 재를 긁는 고무래, 재를 담아두는 잿박, 잿물을 받는 잿독을 선물하곤 했다.

당시에는 거의가 산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를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집안의 길흉을 관장하는 아궁이신(조왕신)에게 이웃의 행운과 번성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의미에서였다. 애틋한 향수를 자아내는 이웃사촌 중엔 내 마음을 아프게 한 분도 있다.

대학을 휴학하고 농사를 거들던 시절이 있었다.

오랜 가뭄에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는 모습만 바라볼 수 없었기에 장수동 연못(현 장수주공아파트)에 양수기를 설치한 후 비닐 호스를 연결해 만수동 논(현 만수고등학교)에 물을 대는 작업을 매일 밤 반복해야 했다.

옆집 형님이 경운기에 연결한 양수기를 지키는 동안 나는 연못과 논을 오가며 비닐 호스가 뚫어져 물이 새지 않나 밤새 관찰을 해야 했다.

양수기가 돌아가고 있는 연못 옆 산에는 오래된 공동묘지가 있어 아무리 피곤에 지쳐도 잠이 오기는커녕 소름이 돋았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내리는 밤이면 공동묘지 쪽에서 도깨비불이 날아다니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를 땐 신발이 얼어붙은 듯 한발자국도 옮길 수 없었다.

무서움을 잊기 위해 애써 다른 생각을 떠올리며 논에 물이 차기를 기다렸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논두렁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논둑 한 귀퉁이가 터져 있었고 밤새 어렵게 댄 피와 땀 같이 소중한 물이 누군가 터놓은 물꼬를 통해 아래 논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형체가 있어 전등 불빛을 비추니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이웃집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소작논을 붙이는 옆집 아저씨는 내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퍼붓는 험담에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일을 굶으면 도둑질 안 할 사람이 없다”는 속담이 있다.

가뭄으로 쌀농사를 망치면 가족이 굶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옆집 아저씨!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그 후론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옹졸함을 한해를 보내며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