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병원 납품 로비행태 도마위에

'검은 돈 거래' 여전 근절책 시급

2003-09-18     의약뉴스
제약사의 병원납품 로비가 도마위에 올랐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리베이트와 관련된 내용들이 계속 번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병원에 뇌물주고 약 사먹는다", "제약회사 매출의 10%는 검은돈"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을 붙이고 떠돌고 있다. 여기에는 제약회사가 병원에 영업하는 행태가 낱낱이 드러나 있어 사뭇 충격적이다.

내용에 따르면 제약 영업사원들은 병원관계자와 친분관계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거액의 랜딩비를 무기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

영업사원들은 과장급 이상의 간부가 바뀌면 '그럴 듯한' 장소에서 회식연을 연다. 술도 같이 마셔주고 2차, 3차 가자는 대로 수행해서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해야한다.

또 '민감한' 시기가 되면 고급 양주에다 선물꾸러미 사들고 집까지 찾아가 '알현'해야 한다. 주말에는 병원담당 임원들이 골프를 쳐야 하기 때문에 부킹과 저녁 술자리 예약까지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

한 영업사원은 "병원담당들은 '야간방문'을 위해 밤낮이 없다. 허우대는 멀쩡해도 속은 곪아가고 있다. 술 접대가 보통 일인가"라며 한탄조로 말했다.

랜딩비와는 별도로 리베이트는 약을 랜딩한 뒤 이 약을 처방한 수와 분량을 계산해 제공하는 사례비다.

리베이트는 제약회사를 대표하는 담당 영업사원과 개인 사이의 철저한 비밀거래 형태를 띤다. 몇 개 제약회사로부터 매월 어느 정도의 리베이트를 챙기는지는 오로지 본인만이 알 수 있다.

한 병원영업 담당자는 "노골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음성적으로 횡행하고 있다"며 "특히 서울보다 지방쪽이 더 심한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제약사 간부는 "대학병원이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개인병원 간부중에는 월급을 훨씬 넘는 리베이트 수입을 올린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준종합병원 이상 규모의 병원에서 개인에게 가는 리베이트는 평균 월 2백만∼3백만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한달에 1천만원 정도의 부수입을 챙기기도 한다고 귀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랜딩비·리베이트 외에 병원과 제약회사간에 이루어지는 뒷거래는 의국비·임상비와 '뿌로(퍼센티지의 일본식 발음)'가 있다.

'뿌로'는 할증이라고도 불린다. 병원이 계약한 만큼의 약품을 사면서 제약회사로부터 덤으로 더 받는 것을 말한다. 할증률은 적게는 50%, 많게는 3백∼4백%까지도 준다는 것이다. 약품을 1백개 살 때 50개 내지 3백∼4백개를 더 얹어주는 셈이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면서 약을 계속 애용해 달라고 부탁하며 내 놓은 것이 '회전뿌로', 수금을 마쳤다고 주는 것이 '수금뿌로'다.

임상비는 병원이 납품받을 의약품에 대해 임상효능 실험을 하려 할 때 제약회사가 부담하는 돈이다. 액수는 대체로 병원에서 달라는 대로 맞춰 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약의 90% 이상이 외제품을 복사하거나 외제 원료로 만들어진 것이라 이미 외국에서 임상실험을 거의 거친 약이기 때문에 임상비는 명분만 그럴 듯한 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제약사의 병원담당 간부는 "대학병원급의 경우 품목 하나에 3천만∼1억원을 임상비로 준다"며 "이것이 순수 임상비용인지 아닌지는 제약회사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달라는 대로 줄 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과마다 설치돼 있는 의국을 운영하는 데 드는 경비도 제약회사에서 떠맡는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장차 약품구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의사들에게 미리 점수를 따 놓겠다는 생각이다.

과거에 한 의국장을 맡았던 관계자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의국에 들를 때마다 내놓는 돈이 3백∼5백만원 정도, 연간 3천만∼5천만원 규모다. 이런 돈은 보통 회식을 하거나 물품 구입하는데 쓴다. 한번은 휴대폰을 사서 나눈 적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거래관행은 90년대 초반 몇차례에 걸쳐 철퇴를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94년 2월, 3개월에 걸친 병원과 제약회사간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3백81개 사립병원이 국내 14개 대형 제약업체들로부터 91년부터 93년 6월까지 2년반 동안 총 7백67억원을 기부금·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건네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95년 2월에는 경기도 K의료원이 억대의 병원장비와 의약품을 구매하면서 병원 집기 등을 받는 대신 특정업체와 편법으로 수의계약을 하는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 병원은 의약품 3백50종에 대한 입찰에서 소화제의 경우 D제약과 소화제를 생산하지 않는 H제약을 복수 추천하는 편법으로 D제약 의약품 10종류를 구입하고 2천5백만원짜리 신경외과용 수술기기를 업체로부터 받았다.

한편 감사원도 95년 8월 서울시내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22곳이 의약품 구매시 20여개 제약회사로부터 사례금을 받는 수법으로 한해 동안 1천억원대의 의약부조리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일단 정가에 의약품을 구매, 정상 장부를 만든 뒤 약값의 30%인 1천8억원을 랜딩비 명목으로 되돌려 받았다.

또 그해 11월 경찰은 전국 21개 대학병원이 M제약으로부터 거액의 랜딩비·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를 잡고 제약회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식당에서 허위 영수증을 발급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 이들 병원에 30여종의 의약품을 납품하면서 약 8억원의 돈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약회사가 병원의약품과 관련, 리베이트·랜딩비 등 검은 돈 거래에 사용하는 돈은 보통 매출액의 5∼10% 선에 이른다고 한 제약회사 임원은 말했다.

종합병원에 월 20억원 가량의 의약품을 납품하는 B사의 경우 월 1억∼2억 정도, 연간 12억∼24억원의 돈을 한 병원에 대주고 있는 셈이다.

제약회사들이 이렇게 출혈성 경쟁을 하면서도 대형병원에 납품을 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진이 적거나 안 나오더라도 큰 뭉텅이로 넣을 수 있고 이윤이 많은 품목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같은 제약회사와 병원간의 지하경제는 국민복지정책과 국민경제에 해를 끼치는 암적 요인이 되고 있어 병원·제약사의 의식개혁이 중요하다.


의약뉴스 이창민 기자(mpman@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