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GIST(위장관 기질 종양)

2010-02-10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기업은 영리를 추구한다. 제약사도 기업이다.

하지만 제약사는 일반 제조업체와는 다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제약사에서 생산하는 약도 일반 공산품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약과 인간. 제약사와 이윤 추구는 서로 같으면서도 때론 다르다. 이해 할 것 같으면서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묘한 이치가 작용하는 것이다.

스위스의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는 글리벡이라는 좋은 약을 생산하고 있다. 신약이기 때문에 특허기간도 앞으로 수 년간 더 남아있다.

따라서 다른 제약사들이 제네릭(복제약)을 생산해 싼 값으로 환자에게 공급할 수 도 없다. 말하자면 노바티스는 특허기간이 끝나는 시간 까지 약을 독점하면서 이윤을 최대한 남길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백혈병 환자에게 주로 쓰였던 이 약은 적응증이 확대돼 현재는 기스트(위장관 기질종양)에도 쓰인다. ( 단, 보험적용은 전이성 기스트에 한한다. 수술 후 재발 경험이 없는 재발 고위험군에 쓰이는 환자들의 경우 여전히 비보험 적용을 받는다.)문제는 약값이다.

기스트 환자들은 보험 적용이 안될 경우 한알에 2만5000( 2003년 기준, 현재 약가는 2만 3045원)원 하는 약을 4알 그러니까 하루에 10만원 어치 먹어야 한다. 한달이면 300만원이다. 한달 봉급을 다 털어넣어도 부족할 만큼 큰 돈이다.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 먹지 못하고 죽는 아이러니 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환자들은 말한다.

차라리 약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있는 약도 돈이 없어 못 먹으니 서러움은 더 크다고 하소연한다. 이해할만 하다. 기스트 가족 양현정씨도 이같은 서러움을 당하고 있다. (양씨의 부친의 경우 재발, 전이성이므로 글리벡 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

다행히 부친의 병세가 호전돼 위안을 삼고 있을 뿐이다.

양씨의 부친은 57세인 지난 2001년 발병했다.

발병전에는 건강했으며 수술후 휴직을 하고 현재는 요양 중이다. 부친은 30년간 개인사업을 했으며 개인사업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술과 담배 그리고 고기음식을 즐겼다.

발병원인이야 여러가지 일 수 있지만 양씨는 이런 이유 때문에 기스트에 걸린 것은 아닌가 짐작했다. 여의도성모병원을 찾은 양씨 부친은 소장에 생긴 암을 수술했다.

이후 8개월 만에 소장은 물론 식도 위 복막 대장 등에도 암이 전이됐다. 전이된 암은 아무리 종양의 크기가 작아도 말기로 친다. 혼비백산한 양씨 가족은 친지의 도움으로 위암 전문의인 영동세브란스병원 외과 최승호 교수를 만났다.

양씨는 이때 최교수에게 "당신의 가족이 이 상태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가족처럼 생각해 달라고 상의하자 최교수는 수술하겠다고 대답했다. (당시 양씨의 부친은 전이된 곳이 많아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

최교수는 수술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6개월 살고 수술하면 평균 생존 기간이 2년 정도 산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교수는 수술을 집도했다.

해당 소화기관을 절제했다.  이후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식이요법을 한다. 수술후 설사가 심했으며 그보다 재발 위험 때문에 고통의 하루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당시는 글리벡이 국내에 들어와 있었으나 효과에 대한 확신을 주저하던 때였다. 하지만 달리 대안이 없어 처방전 없이 글리벡을 살 수 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먹었다.

글리벡 복용 후 부친은 손발이나 얼굴이 크게 붓는 부작용이 심했다. 식욕 부진과 피부 가려움증은 물론 구토도 따라왔다. 하지만 이는 다른 항암제 부작용에 비해서는 경미했다고 양씨는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약값이 비싸다는데 있었다.

 한달 복용에 수 백만원을 들여야 하니 왠만한 부호가 아니고는 복용을 주저하게 된다. 어떤 가족은 비싼 약값 때문에 어차피 죽을 환자는 죽고 산 가족이나 살자며 눈물로 지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양씨가 기스트 환자 모임을 결성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글리벡의 비싼 약가도 한 이유로 작용했다.

양씨는 글리벡을 먹으면 재발율이 많은 기스트 환자의 생명연장에 도움이 되는데 비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처방 받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에 노바티스를 상대로 숱한 싸움을 벌여왔고 앞으로도 벌일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기스트 환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자 회견을 열기도 했다.

기스트 수술 후 1년내 재발율이 글리벡을 복용하지 않으면 60-70%로  높은데 글리벡을 복용하면 미국의 경우 수술 후 1년간 재발 지연율이 80% 한국의 경우 90%라는 연구 보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격을 낮추는 일은 쉽지 않다. 특허권에 대한 국가간 통상마찰도 있고 최근에는 복지부가 글리벡 가격인하와 관련 노바티스와 소송을 벌여 패소 하기도 했다. ( 복지부는 항소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의약품 직권 사용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단 한차례도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통상 문제 때문이다. (인도는 물질특허가 가능해 제네릭을 생산하고 있다.)

방법은 또하나 있다.

인도에가서 글리벡을 사오면 된다. 몇가지 허가 절차를 거치면 인도에서 생산하는 글리벡( 상품명 비낫.veenat)을 1정에 약 2달러 1년치 2800여 달러에 사올 수 있다. 한달 치도 못되는 돈으로 1년치 약을 사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약을 먹는 기스트 환자는 현재 없다.

양씨도 이런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노바티스를 직접 방문해 피터야거 사장도 만나고 항암제 사업부 헤드인 문학선 상무도 만난다. 환자들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회사는 환자의 입장보다는 회사의 입장과 다른 나라 환자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환자 단체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 환자에게는 무상공급하겠다는 사탕발림 제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의를 수용하면 회사의 농간에 놀아나게 된다는 것을 환자들은 잘 알고 있다.  

회사는 일부 환자라도 도움을 주겠다며 온갖 생색을 내면서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근본 처방이 되지 않는다.( 한편 기등재 약의 경우 무상공급은 건강보험법에 위배가 된다. 따라서 환우회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원하고 있다.)

양씨는 의사가 비낫을 처방하지 않는한 수입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의사들이 비낫을  상품명으로 처방하는데 주저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가 치료용으로 약을 직접 수입할 경우 진단서와 수입추천서가 있고 2000달러 이하일 경우 가능하다.)

양씨는 답답하다고 했다. 패소한 복지부의 어쩡쩡한 태도도 그렇고 노바티스는 기가 살아 있고 의사는 상품명 처방을 하지 않고 환자들은 여전히 비싼 약값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글리벡이 만능은 아니다. 오래 사용하면 내성이 생기는데 이 때는 2차 치료제로 화이자의 수텐을 쓴다. 경우에 따라 바이엘의 넥사바도 쓰인다. 현재 기스트에 환자는 연 300명 정도 발병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환우 모임에 정식으로 가입한 회원은 2000명 정도 이다.

국내에서 환자를 많이 보고 있는 의사는 대한위장관기질종양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강윤구 서울아산 종양내과 교수와 삼성의료원 종양내과 강원기 교수, 서울대 외과 양한광 교수, 전남대 혈액종양내과 정익주 교수 등이다.

이외에 전국 대학병원에 10명의 전문의가 있다.

양씨는 지쳤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글리벡 약가 인하와 환자 권익 보호 활동에 더 진력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