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새벽 라면 한 그릇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영월에서 들어오는 국도와 더 한 고비 넘어 황지로 가는 길목만 막으면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유배지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60년대 우리나라 수출이 총 1억 달러에 턱걸이 할 즈음에 대한 중석 탄광의 연수출액이 3천 500만불이었으니 그 시절 대한 중석의 막강한 위세는 하늘을 찌를것처럼 막강하여 광업소 직원들은 거의 다 국내 명문대 출신과 그에 상응하는 최고 명문 여대 출신들이 부부 짝을 이루어 그들의 엘리트 세대를 자랑하며 태백산 준령의 산골짜기를 주름 잡고 있었다.
그네들의 패션모드의 변화에 따라 밝고 화려하면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노출이 심한 톱레스 미니스커트의 물결을 이루면 한 여름을 실감 했고,
갈색 외투에 아련한 스카프가 보이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겨울이야 자연히 입고 또 껴입고 두르고 쓰고 하면 북풍한설의 계절이 왔음을 훤히 알 수 있었다.
나의 무절제 했던 대학생활에 대한 죄책감에서 나의 부족했던 근면성을 키우고 철두철미한 원칙주의를 몸에 익히기 위하여 나는 일부러 가장 열악한 지역 환경을 일터로 선택했으며 그 곳에서 나는 지난날의 불성실함에 대한 형벌을 받는다는 자세로 약국 근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아침 새벽부터 밤 늦게 폐문할 때까지 몸 사리지 않고 일했다.
약국은 대형 슈퍼도 함께 운영 하였는데 슈퍼 물품은 심야 2~3시경에 대형 운송회사 천일 화물 10톤 차가 정종이며 맥주며 소주며 기타 슈퍼 제품을 차 가득 싣고 와 2층 창고에 부리는데 나는 자원하여 슈퍼 직원들과 똑같이 작업복 차림으로 무거운 술 박스를 나르며 야간작업을 도와 주곤 했다.
밤새워 작업이 끝나는 새벽에 끓여 주는 라면 한 그릇은 이 한 몸 숨 쉬고 살아 있다는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