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친애하는 본씨, 펜팔 여성의 첫 편지

2008-12-30     의약뉴스

우체국 집배원으로부터 그녀의 편지 봉투를 받아든 순간의 황홀한 기쁨은 칡넝쿨처럼 엉킨 나의 고뇌를 일시에 깨끗이 풀어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편지는 암울한 현실과 복잡한 환경 속에 허우적거리던 나를 소생시키는 불꽃이었다.

난생처음 이성으로부터 받아 보는 인격적 대우는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이름 박순이, 편지봉투는 그녀가 직접 손으로 접은 연두색 종이봉투였으며 그 속의 편지는 연한 핑크색이었다.

나는 그 편지봉투를 남이 볼까 두려워 얼른 나의 왼쪽 가슴속 안주머니에 집어 넣고서는 달맞이 동산으로 뛰어갔다.

나는 뚜나바위에 앉아 서너번 심호흡으로 가쁜 숨을 가라 앉혔다. 춘삼월의 미풍이 나의 귓 볼을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 펼쳤다.

은은한 분홍색 종이 위에 잘 영근 수수알갱이를 뿌려놓은 듯이 그녀의 예쁜 글씨는 저 아래 찰랑이는 한강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친애하는 본씨 이렇게 지면이지만 글로서 인사 나누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소개 받고 처음엔 상당히 망설였지만 본씨의 첫 편지를 받아보니 용기가 생겨 답장의 형식으로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씨께서 들려주신 뚜나바위에 대한 이야기는 한편의 감동적인 서사시였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습니다.

저는 본씨의 글을 읽으며 눈을 감고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감상하듯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멋있는 글 고맙고요. 앞으로 더 기대가 되는군요!

저는 본씨와 같이 고교 3학년이고 청주에서 태어나 여태까지 청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 청주시는 깨끗한 교육도시로 유명하며 시내 중심을 가로질러 시냇물 무심천이 흐르고 있답니다.

오늘은 처음이라 떨려서 많이 못 쓰겠습니다. 앞으로 진행하면서 서로의 자세한 소식 전하기로 하고 이만 간단히 줄이겠습니다.

안녕! 

1964. 3월

글벗 순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