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약대진학 우정과 자연에 심취하다
드디어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가 된다면 나는 어머니 병도 고쳐 드리고 어머니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 드려 그간의 불행을 말끔히 씻어 드리고 싶었다.
그간의 고통을 두배로 보상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음대 대신에 약대를 선택 하였던 것이다. 음악은 이제 나의 급한 임무가 끝난 후의 2차적인 문제였다.
65년도 약대에 들어와서 동급생 65명의 출신고를 분석해 보니 거의 대부분이 소위 5대 공립 5대 사립 아니면 지방 명문고 출신들이었다. 비 명문고 출신인 내가 그들과 함께 대학 뺏지를 단 것이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약대 입학초 제일 먼저 사귄 동급생 친구가 있었다. 명문고 출신인데 나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와 그는 나의 대학 첫번째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달맞이 동산의 뚜나바위로 데려갔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벌판과 그 사이를 뚫고 힘차게 흐르는 한강을 보면서 우리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감탄의 탄성을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옥수동 무수막강 나룻터에 당도 했다. 그곳에는 나룻배 선착장이 있어 지금 돈으로 쳐서 1000원만 주면 누구든지 그 배를 탈 수 있고 배를 타면 강 건너 모래섬으로 건네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세상에․ ․ ․ 서울 시내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모래 섬나라에 가서 미역 감고 수영하고 모래성도 쌓고 일광욕도 즐길 수 있는 이런 완벽한 곳이 어디에 있을까?
서울의 한강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보물 낙원이었다. 금싸라기 같이 맑고 빛나는 모래섬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어 축구장 수십개가 들어가고도 넉넉할 정도였다. 이 금 모래섬은 뚝섬에서 강물이 두 갈래로 쪼개지면서 모래섬이 생겨났는데 한쪽은 옥수동 무수막강 다른 한쪽은 지금의 압구정동쪽으로 흐르는 샛강이었으며 이 샛강은 수심이 허리 정도로 낮아 성인이면 누구나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500년전 세조때 한명회가 샛강에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는데 명나라 사신들이 환상적인 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던 곳. 그 정자가 압구정이요, 그 강이 샛강이라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생각 할 수 있을까?
샛강을 건너면 지금의 강남땅 어디로든지 이어지는데 그곳은 온통 과수원, 무, 배추밭, 시금치, 파, 참외, 수박, 토마토, 옥수수, 보리밭으로 이루어 졌으며 한수이남의 농촌 풍경을 적나라하게 펼치며 길이란 길은 모두 오솔길 내지는 샛길로 말죽거리까지 쉽게 닿을 수 있었다.
강을 건넌 우리는 모래섬에서 팬티 차림으로 맑은 한강 물속에서 수영도 하고 친구가 던진 하얗고 예쁜 자갈들을 내가 가마우찌처럼 잠수해 들어가 찾아서 손에 들고 수면위로 솟구쳐 오르면 우리는 둘 다 깔깔대며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강을 건너 뚝섬 벌판에 자리 잡은 경마장으로 달려간다.
나는 친구와 함께 난생 처음 마권을 사보았다. 처음엔 발목이 날씬한 2번, 천리마가 괜찮아 보였으나 가슴이 떡 벌어진 적토마에 반하여 5번마 단식을 샀더니 기대했던 적토마는 2등에 그치고 다리가 날씬했던 천리마가 우승하는 것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풋풋하던 경마장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 넓고 빛나던 그 모래섬은 어디로 사려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