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폐결핵 말기 어머니를 그리며 작곡하다
황량한 벌판 한길에서 12년만에 뵙는 어머니!
나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긴 회색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의 어머니는 나비처럼 나풀나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본”이냐? 아주 작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살얼음이 깨질라 조심성 있는 목소리! 아! 나는 알아요 엄마가 왜 그리도 힘없이 걱정스런 소리로 나를 부르는지 나는 압니다. 그러나 엄마야, 나는 엄마가 내 앞에 살아 계시니, 그냥 좋아요! 내 가슴속엔 뜨거운 눈물이 콸콸 쏟아진답니다.
나는 어머니 손을 잡았다. 어머니도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남들처럼 포옹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처지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꼬깃꼬깃 모아 산 나이드라짓과 비타민 폼플렉스 병을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준 결핵약 2알과 비타민 1알을 물로 삼키셨다.
약을 복용하시기 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어머님의 모습은 내 상상의 천사처럼 아름다워 눈이 부셨다.
동생은 형광등 공장에 다닌다고 했고, 지각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작업반장이 때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메어졌고 쓰라렸다. 나는 어머니께 공장이라도 좋으니 취직자리를 구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취직하면 나는 신앙촌 인근에서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 모두 모여 함께 살기로 결심 하였다.
우선 나의 주머니에 있던 모든 돈을 동생 주먹에 쥐어 주고 나는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로부터는 일체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알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나와 살기를 원하지 않으셨나보다.
학교를 중퇴한 나를 보고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도 처음에는 상당히 걱정 하였지만, 완강한 나의 태도에 모두들 포기하는것 같았다.
위대한 성악가로의 꿈도 깨졌고, 학교도 집어 치웠고, 온통 나를 휘감고 있는 것은 비통함뿐이었다.
나는 뚜나바위를 찾았다. 대 자연,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드넓게 쓰다듬으며 도도히 흐르는 한강물은 초봄의 따뜻한 햇살에 황금빛 너울처럼 찬란히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콧소리로 봄이 오는 소리를 읊조리고 있었다. 대지를 스치며 불어오는 봄바람은 부드러운 비단결 같이 따뜻하게 응어리진 나의 가슴을 어루 만져주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오자 나는 오선지에 그 봄이 오는 소리를 적기 시작했다.
깊고 깊은 숲속에 맑은 샘물이 흐르고, 풀피리가 울리고 아름다운 꽃들과 작은 새들이 합창하는 전원교향시...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하여도 우주의 힘, 자연의 힘에 내 몸을 맡기면 모든 시름은 훈풍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폐결핵 말기에 피를 토하며 고생하시는 어머니 생각에 완전 포기했던 노래 대신에 나의 상상의 나래는 새로운 꿈으로 갈아타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 작곡가가 되는 것이었다.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현의 감미롭고 세련된 음과 , 플릇,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트럼본, 베이스, 트럼펫, 피콜로 등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서부터 가슴속에 들어와 포근히 안기는 소리, 호소 하는듯한 은은한 소리, 장열한 의지의 소리 등 큰북, 작은북, 티파니 등 천둥번개, 폭풍 비바람소리, 하프, 심벌즈,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모든 관현악들을 총 동원하는 나의 작품 전원교향시는 마지막 일자 획을 그으며 끝나게 되는데 그 순간의 그 설레임은 영원으로 바로 이어지는 연속선이었다.
나는 몽상가가 되어 매일 밤잠을 안자고 작곡에 열중하였다. 나는 하늘이 나에게 준 재능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며 나의 모든 정신적 방황을 작품 창작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창작의 기쁨을 아는가?
어느날 우연히 신문광고가 눈에 띄었는데 전국 신인 음악 콩클대회를 알리는 D-일보의 큰 광고였다. 참가부문: 작곡,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기악부문이었다. 수상자 1위와 대상 : 국비 장학생 유학보장. 광고를 보자 나의 가슴은 큰 북소리처럼 쿵쿵 뛰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는 천재일우의 기회인 이 콩클대회에 응모하기로 했다. 작곡부문이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8분짜리 작품(지정과제) 나는 어머니를 그리는 곡으로 오선지에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곡이 끝나자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을 완성한 내 자신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랑스럽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나의 응모작품을 가상 연주해 보면서 어떤 때는 감격의 눈물도 흘려보고 기쁨에 겨워 가슴 벅찬 황홀함에 흠뻑 빠져 보기도 했다.
나는 이 작품을 응모하기 전에 내가 아는, 당시 국내에서 가장 저명한 나운영 교수님께 사전 검증을 받고 싶었다.
5년 전에 나는 나운영 선생님께서 운영하는 대한 합창단 단원 이었었다.
내가 중학교때 나운영 선생님께서 운영하는 대한 합창단에 입단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