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석씨 수필집 ‘황혼의 찬가
30여 년 전 호주로 건너가 제2의 삶을 꾸려온 수필가 서범석씨가 일흔 넷이라는 늦은 나이에도 문학의 열정을 지펴, 그동안 틈틈이 창작해 온 수필을 모아 첫 수필집 「황혼의 찬가」(해드림출판사)를 국내서 발간했다.
「황혼의 찬가」는 노년을 설득력 있게 재조명하여 제2의 시원이 될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실버에세이라 할 수 있다. 황혼을 햇덧한 볕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공간으로 쏟아지는 빛기둥처럼 받아들이기를 저자는 원한다.(제1부 꿈꾸는 노년) 늘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구하면서 고정관념에 안주한 노년에게는 어김없이 저자의 안타까운 시선이 흐른다. 어느 몇 작품을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없을 만큼 여기서는 한 편 한 편이 노년의 휘어진 마음을 잦다듬어 주는 것이다.
위중한 아내를 위해 기도하듯 써내려간 작품들(제3부 사랑하는 아내에게)이나 이웃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파고를 애틋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서 꿋꿋하게 헤쳐 나온 삶의 궤적에 경의를 표하거나 겸손해 하는 혜량이 돋보인 작품들(제4부 장미꽃을 등에 감은 여인) 그리고 이 작품집을 ‘대표적인 실버에세이’로 규정지어 줄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작품들(제1부 꿈꾸는 노년)외에도, 이번 작품집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저자의 호주 이민 30년을 통해 심층적으로 그려낸 ‘호주 한가운데 숨 쉬는 원주민의 애환이나 호주 역사 그 자체’ 그리고 ‘변방에서 들어와 정착한 이민자들의 애환과 온전한 호주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담긴 작품들(제2부 호주이민 30년)이 그것이다.
30년 이민생활이 들려주는 호주의 생생한 문화는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국(異國)의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과 서정적인 그림자들이 저자의 해박한 필치로 펼쳐지는 가운데 이민자로서 호주와 호주민에 대한 애정도 진하게 나타난다. 30년 세월을 친친 감은 호주를 조금도 밀쳐냄 없이, 마치 동양의 입장에서 역사를 쓰듯 원주민의 서러운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는 저자이다. 이는 가치중립적인 균형을 유지하면서 탈민족 차원의 또는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한다. 더불어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내용들이 진진하다.
저자는 책을 펴내면서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므로 자신의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어 열심히 글을 썼고, 영상물을 만들었으며, 그림을 그렸다. 순간순간 삶에서 권태를 느끼거나 의욕이 없어지거나 살아가는 의미가 옅어질 때 또는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약해질 때는 이를 이겨 보려고 또한 몸부림을 쳤다. 노루꼬리만큼 남았지만 황금 같은 노년기의 두 번째 인생은 다르게 살겠다는 발버둥인 셈이다. 청년기라고 여긴 70대의 두 번째 인생에서 문인의 대열로 뛰어든 나는, 호주 속에 한국문학을 뿌리 내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런 내게 누군가가 미래를 물어온다면, 호주 속 한국문학이 영어로 번역되어 널리 보급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라며 문학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한 서범석 수필가는 현재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며 서양화를 전공한 전직 교사이다. 문학 이외 예술 영상편집에 조예가 깊고 시드니순복음교회의 경로대학을 운영한다. 한편 ‘문학바탕’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그는 <사>호주한국문학협회(회장 이기순) 이사이며 공저로 ‘시와 에세이’ 3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