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미국 의료 정책의 문제점
2. 국민들과 멀어져 가는 의료 보험
2003-03-11 의약뉴스
보건의료정책과 관련해 정치권은 각각 자기들의 안을 가지고 끊임없는 논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Clinton 대통령의 전국민의료보험개혁안이 이익단체의 제물로 상·하 양원 인준에 실패하고 이듬해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게 패하게 되자, 정치권에서는 보건의료에 관한 근본적인 개혁안 제시를 주저하게 되었다.
90년대 중반이후, 양당은 의료보험 적용확대와 비용 통제에 관해 점진적인 노력(step-by-step efforts)을 경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보험적용자가 퇴직하는 등의 사유로 무보험자는 천천히 증가하게 되었다.
90년대 초 경기후퇴로 인한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무보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중산층이 대거 공화당을 이탈하여 민주당에 투표하였다. 이로써 공화당은 오랫동안 누려온 권력을 민주당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 후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은 무보험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격한 개혁안을 내놓았으나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중간선거에서 다시 쓴잔을 마셔야 했다. 이러한 경험에서 보듯 “의료보험의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양당이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게 된 결과 나타난 방법이 점진주의적 접근이었다.
점진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먼저 민주당의 상원 원내총무인 Tom Daschle과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의 위원인 Mark McClellan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들은 점진주의적 접근으로는 결코 현재 미국이 처한 의료보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였다.
정치권의 합의부재는 양당간의 건강보험을 바라보는 이념차이 외에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간, 각 주의 연방의원들과 이익단체의 결합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합의를 도출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정치권의 합의부재는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산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입법안에 대한 처리가 지연되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천만 명에 달하는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자들을 상대로 처방약제비의 일부를 보조하는 법안이 4년째 심의를 기다리고 있고, 경기부양책을 통해 실업자를 줄임으로써 무보험자를 더 양산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도 역시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민간보험 가입 장려차원에서 무보험자의 약 6백만~8백만 명에게 조세감면혜택을 부여하는 정책 등을 제안하는 한편, 의사가 부담하는 의료사고보험료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들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부시행정부의 이러한 정책이 결코 무보험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하여 Medicare, Medicaid를 강화하는 방향에서의 문제 해결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당의 접근 방법은 공화당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인 까닭에 합의는 요원한 실정이다.
설상가상, 의료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연방예산의 흑자기조가 갑자기 적자로 돌아선 시기에 의료보험개혁에 대한 합의는 쉽지 않은 문제다.
현재 New York 주 상원의원이자, 1994년 대통령의 부인으로 의료개혁위원회를 총괄하며 보고서를 발표했던 Hillary의 언급은 현재 정치권의 딜레마를 잘 함축하고 있다. "국민들은 우리가 의료보험개혁을 다시 한번 논해주기를 희망하고 있고, 나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나도 거기(개혁목표)에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국민들과는 자꾸만 멀어져 가는 건강보험
공장근로자로부터 기업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미국민들은 급속도로 늘어나는 의료비용에 대처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갈급하게 몸부림치는 계층은 사용자가 보험료를 부담하는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된 사람들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실제로, 해고된 근로자나 자영업자들은 민간보험으로부터 직접 보험을 구매해야 하는데, 현재 보험료는 최소 월 300달러가 넘는 수준이다. 매년 최소한 12% 정도 인상된다면 보험료부담이 몇 년 후에는 가계에 상당한 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보험료부담이 늘어나자 이들 계층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급여를 축소하거나 필요한 검사 등을 피해 진료비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근로자 또한, 사용자가 급여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때문에 이러한 피해를 보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극단적인 최악의 방법으로 아파도 참는 것이다. 실제로 2002.8.12자 New York Times지에 소개된 내용을 인용해 보면; "Texas 주에 거주하는 Everett 여사는 3년 전 팔이 뻣뻣해져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심야에 응급실로 후송되었다. 이러한 증세가 몇 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이는 복합 동맥경화증의 징후였다.
그러나 그녀는 진료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진료받기를 연기하였다"는 기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마치 이 기사는 국내에 상영된 바 있는 영화 “존 큐”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 Institute of Medicine 연구소에 따르면, 가입자가 보험급여 혜택에서 제외됨에 따라 진료를 받지 못하여 매년 18,000명이 사망한다고 한다. 병원문턱이 높아 진료를 받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는 현상은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공식적인 통계로 발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와 직장근로자의 무보험현상과 급여범위 축소는 진료전달체계를 왜곡시킨다. 미국의 응급의료법령에 따라 누구든지 응급환자로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진료비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하여, 진료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질병을 키워 악화된 상태에서 응급진료를 이용하는 악순환 현상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계속)
전창배
/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센터
/ 외대 국제관계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