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프래드월리 증후군
환자의 부모들은 때로는 의사 보다도 더 많은 의료지식을 습득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치료가 어려운 희귀병 부모들의 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자식을 낫게 해보려는 간절한 소망의 결과다. 올해 11살인 주희 어머니 이은영씨도 그런 경우다.
" 어느 날 우연히 비만아동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를 보다가 혹시 저 애도 프래드윌리 증후군 환자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음식을 앞에 두고 짓는 행복한 표정이 보통 아이들 하곤 달랐으니까요."
그 아이는 이씨의 직감대로 프래디윌리 환자로 판명됐다.
주희는 5살 때 환자로 확진 받았다. 출산 후 부터 축 쳐져 있어 이상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이의 병명을 알지 못했다. 한 대학병원의 소아과 교수는 대사이사증후군이라고 말하면서 정확한 진단을 위해 같은 대학 다른 교수를 소개했다.
이 교수 역시 확진을 하지 못했다. 이 교수는 주희를 지방의 소아과 교수에게 의뢰했고 이 교수는 또 서울의 다른 대학 교수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확진을 한 것은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진동규 교수였다.
엠알아이 검사를 네번씩이나 했고 그 비싼 PET검사도 두 번이나 한 것이 아깝기도 했다.
진 교수는 주희의 얼굴 생김새만 보고도 프래디월리 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심증이 100%이니 물증을 찾자고 했다.
염색체 정밀검사 결과는 확실한 물증이었다.
길고 지루한 병원순례 끝에 진단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치료법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확진 후 부터 더 큰 고뇌의 순간이 이어졌다.
별로 먹지 않아도 체중이 급속히 불어났다.
얼굴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고 피부는 근육이 없어 반대로 쭈글쭈글 거렸다. 한번은 약하게 다리에 화상을 입어 운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단 3일만에 3킬로 그람이 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골절로 기브스를 했는데 이때도 2틀만에 2킬로 그람이 늘었다. " 이 병은 체중과의 싸움이고 음식과의 전쟁입니다." 주희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기초 대사량이 낮다 보니 먹은 음식이 골격이나 다른 곳으로 골고루 퍼지지 못하고 모두 지방으로 축적된다. 그러니 살이 찐다.
그런데 환자는 먹는 것을 참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음식을 찾는다.
이미 5살때 주희는 고도비만 판정을 받았다. 신생아 때는 잘 먹지 않아 애를 태우던 아이가 어느 날 부터 잘 받아 먹고 쑥쑥 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이제 아이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에 좋은 것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였다. 추어탕도 많이 먹었다.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어머니는 병 때문에 아이가 잘 먹기 시작했다는 것을 뒤 늦게 알고 땅을 치고 통곡했다.
" 보통 사람들이 보면 정상인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차릴 정도예요. 발음도 부정확하고 말도 애기처럼 하죠. 지능도 모자란 편입니다."
특히 새로운 단어를 말할 때는 여러번 확인한 후에야 그 뜻을 알아 듣기도 한다.
그러니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기 어렵다. 특수반에서 공부한다. 어머니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주희의 상태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이해해 주고 선생님도 배려해줘 고마울 뿐이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24시간 먹는 것을 감시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애가 잠에서 깨기 전에 먼저 깨어 있어야 하고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없이 텅 비워 놔야 한다. 있는 것이라고는 야채와 과일 정도다. 어머니는 주희가 엄마 몰래 음식을 먹다가 들키면 '죽음'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새벽에 몰래 일어나 음식을 먹다가 냄비 뚜껑을 깨뜨리기도 했다.
어머니느 그 때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등을 때리고 엉덩이를 심하게 때렸다. 너무너무 화가 났다. 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은 것에 대한 죄값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곧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어린 것이 병 때문에 먹는 것인데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때린 자신이 더 없이 밉기도 했다. 폐렴에 걸린 아이가 기침을 한다고 때리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허락된 양만큼, 허락한 음식외에 먹는 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음식을 먹다 들키거나 음식을 더 먹으려고 하면 아예 무시하면서 까지 주희에게 무시무시한 겁을 준다.
"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제일 무서워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 앞으로 주희 엄마 하지 않는다고 협박하는 것이 가장 심한 형벌인 셈이죠."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생존에 바로 문제가 생긴다.
하루 900칼로리에 맞추다 보니 골밀도가 형편 없다. 그래서 생식을 시키고 있다. 생식은 몸에 좋기도 하지만 포만감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그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음식을 자제하지 못한다. 하루는 할머니 댁에 가서 호박잎을 보고는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고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고 그만 맥없이 웃고 말았다.
이제 갓 11살인 아이에게 호박잎이 무슨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이씨는 주희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일본의 경우 형제가 이 질환에 걸린 사례가 보고 됐기 때문이다. 돌연변이 이고 유전은 아니라고 하지만 혹시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
건강한 동생이 엄마, 아빠의 희망이며 자랑일 수 있지만 동생 역시 누나나 형의 아픔으로 또다른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욕심이라고 여겼다.
이씨는 다른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똑똑하고 너무 귀여워 주희와 비교될 때 속상해 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제 운명이라고 다짐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하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저 정도면 문제없다. 우리가 모범이 돼보자'고 아빠와 함께 다짐하면서 위안을 얻고 스스로 위로한다. 어쩌면 이것이 이씨가 찾은 정답인지도 모른다.
주희는 지금 여주의 공기좋은 곳에 살고 있다. 전교생이 45명인 일반학교 특수반에 다니면서 산과 들로 마음대로 누비며 뛰놀고 있다.
조만간 주희 외할머니댁도 이곳으로 이사를 온다. 새 집을 짓고 그림같은 정원이 있는 곳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날이 곧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