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을 많이 팔아준다는 말에 정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의약뉴스]
십칠. 그렇게 그 사건은 끝났다. 학생들이 떠난 토요일 오후는 한가했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북적이던 막사는 텅 비었다. 빈 막사 안은 한여름이라도 견딜만 했다.
양쪽 문을 개방하면 앞뒤로 바람이 통과해 부채질만 살살하면 낮잠도 즐길 수 있었다. 파리나 모기도 없어 조교들은 서로의 막사 안에서 지난 일주일간의 긴장감을 풀었다.
승길도 사건이 큰 문제 없이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누워서 보는 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그 하늘은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슬비가 내렸다. 옆 소대 조교가 승길의 막사로 찾아오더니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이 조교, 남한산성 안 간 거 다, 내덕분이다. 내가 기도했거든. 그러니 학생들이 주고 간 것 중 남은 것 있으면 내놔라. 난 이번 주는 빈손이다."
승길이 관물대 위에 올려놓은 앨범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거 피엑스에 되팔아서 민촌 가서 막걸리 한잔 하고 오자. 비오는 날에는 막걸리지."
앨범을 들고 조수동 병장이 나갔다. 그는 승길처럼 이등병이 병장 계급장을 단 것이 아니라 짬밥을 제대로 먹은 진짜 병장이라 승길이 다른 부대지만 고참 대우를 해줬다.
잠시 후 그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이 자식이 이거 손 하나 안 댄 걸 1000원을 깎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또 5000원 받겠지. 한 대 패주려다 그만두었다."
방위병은 그런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수완이다.
"어쨌든 가자."
4000원을 들고 나가려는데 도저히 나갈 형편이 못됐다. 이스랑비는 어느 새 폭우로 변해 있었다. 우산도 무용지물이었다. 밖을 보던 조병장이 "비 그치면 가자. 그럼 난 한 번 뛰고 온다."
그가 바지를 벗었다. 윗통은 아예 맨몸이었다. 팬티 바람으로 그가 연병장으로 질주했다. 곧 그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빗줄기 때문에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먹구름이 대성산을 넘지 못하고 그 아래 부대에 물을 퍼부었다.
승길도 조병장 차림으로 뒤따라 나갔다. 등줄기가 아팠다. 빗방울을 맞아 몸이 아프기는 처음이다. 딱딱딱.
"조 조교님 어디세요?"
승길이 소리쳤으나 빗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연병장을 달렸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할까. 신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개들이 왜 비 오는 날, 날 뛰는지 이해가 갔다.
승길은 개처럼 뛰어다녔다. 일정한 방향이 아니라 갔다 왔다 그리고 옆으로, 반대로 도 달렸다. 정말 개처럼 날뛰었다. 한 30분쯤 달렸을까.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구름이 몰려가기 시작했다.
연병장이 보였고 조병장이 저쪽에서 칼 맞은 조폭의 최후처럼 어그적거리며 걸어왔다.
"신난다, 최고다 최고."
"최고다 최고."
승길도 그렇게 따라 소리쳤다. 그러다가 문득 승길은 앞쪽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검고 붉은 것. 뭐지? 가까이 다가갔다. 엄청난 구렁이가 고인 빗물을 벗어나 서서히 승길 쪽으로 다가왔다.
저건 구렁이다. 승길은 구렁이를 안다. 그것도 황구렁이. 어릴 적 시골집 담장을 그야말로 능구렁이처럼 슬슬 타고 올랐던 바로 그 구렁이. 하지만 이놈은 그놈보다 두 배는 더 컸다.
조병장도 뱀을 확인했다. 다가온 것은 조병장 뿐만이 아니었다. 학생 부식을 책임지고 있는 수색대 인사계도 뚱뚱한 배를 내밀고 승길 옆에 섰다. 그는 수색대서 임시로 교육대로 파견 나온 부식 책임자였다.
계급이 상사로 조교들 사이에서는 학생 부식을 빼먹는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소고기나 과일은 물론 식용류까지 따로 챙기는 것을 한 조교가 봤다고도 했다.
"야, 이거 내것이다. 너 본부에 가서 마대 자루 가져와. 빨리, 빨리."
승길은 뛰었다. 명령이니. 승길이 돌아왔을 때 인사계는 놈의 머리를 잡고 하늘로 들고 있었다. 얼마나 큰지 꼬리가 땅에 닿고 나서도 몇 바퀴 돌고 있었다.
"히야, 이햐."
늙은 인사계의 작은 눈이 뱀처럼 빛을 내면서 이런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루 안에서도 놈은 크게 반항했다. 자루를 묶고 들어보니 정말 무거웠다. 인사계는 말했다.
"내가 민촌 생사탕 집에 전화할 테니 너희 두 놈은 이거 가져다 줘라. 20만원 줄 거다."
잠시 인사계는 주머니는 뒤지더니 5천원 짜리 하나를 조병장에게 주었다.
"고생했으니 이걸로 막걸리 하나 사 먹고."
어이가 없었다. 발견한 것은 나인데 자기 거라고. 그리고 20만원을 말하면서 5천원을 준다고. 그는 자신이 타고 다니는 짐받이가 달린 자전거를 내주는 선심을 썼다. 조병장이 운전하고 승길이 뒤에 탔다.
무릎에 얹은 자루가 마구 꿈틀댔다. 사타구니를 물을까 겁이 났다. 뱀을 잡고 죽이고 구워 먹은 적이 있지만 승길은 불안했다. 놈이 마대 자루를 뚫고 기어 나오면. 독이 없다고는 하지만 몸을 찡찡 감으면.
그때 아, 하는 단말마 비명과 함께 자전거가 미끄러졌다. 비 오는 비포장 도로를 세게 달리다 경을 친 것이다. 조병장이 쌍욕을 했다. 처음에는 운전 미숙인 자신이거나 뒷자리에 앉은 승길에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인사계 그 개새끼'였다.
"그 개새끼 날로 먹네. 야, 이 조교. 이게 말이 되니?"
그가 무릎의 흙을 떼면서 인상을 썼다.
"잡은 건 우린데 5천 원이라니."
"그러게 말입니다. 적어도 인당 1만 원씩은 줘야지요. 아니 조교들 한잔 하게 막걸리 서말 정도는 받아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승길도 동조했다.
"그냥 온전히 줄 수는 없어. 그 도둑놈에게. 학생들 부식까지 쎕치는 놈에게 20만 원을 날로 먹게 줄 수 있나. 묘수가 없을까."
"아 있어요. 도망쳤다고 하지요."
조병장이 다음말을 기다렸다.
"자전거가 굴러 넘어졌고 그 사이 도망쳤다고 하지요. 조병장님 무릎도 까지고 나도 얼굴에 생채기 났잖아요. 이걸 보여 주면 자전거 핸들 구부러진 것 고친다고 돈 달라는 말은 못하겠지요."
그가 웃었다. 두 사람은 산 쪽으로 조금 들어가 자루를 풀고 자루 끝을 들어 올렸다. 황구렁이의 몸통이 빠져나왔다. 얼마나 긴지 자루에서 나오는데 한 참이나 걸렸다.
"영물이다, 영물."
조병장이 말했다.
"이걸 팔면 제때 제대 하지 못할지 몰라. 잘가라. 인사계 같은 놈에게 잡히지 말고."
"5천원은요?"
승길이 말했다.
"그건 막걸리 먹자. 앨범 판 돈은 라면 사먹고. 돈까지 잃어버렸다고 하지 뭐. 제깐 놈이 뭐 어쩌겠어. 잃어버렸다는데."
"뭘, 그렇게 멍때리냐. 술 먹다 말고."
금은 세공업자가 승길의 옆구리를 찔렀다.
"잔 받어 어서. 소대장님 팔 아프겠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승길이 잔을 내밀었다. 이건 황구렁이가 들어간 뱀술인가.
"뱀술이라니? 너 뱀 좋아해? 다음에 먹으러 갈까?"
소대장이 말했다. 아니라고 급하게 변명했다.
"그냥 여기 오는데 트럭에서 뱀술 파는 걸 봤거든요."
"싱겁기는. 자 마시자."
소대장이 병을 들었으나 빈 병이었다. 가져온 더덕주가 바닥이 났다. 병을 거꾸로 들자 노란 액체가 한 두 방울 떨어졌다.
"이병장 바쁜가, 김병장은? 안 바쁘면 술 좀 시켜."
강중위가 술병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옅은 웃음이 지나갔다.
"여기 맥주하고 소주 좀 줘요, 마담."
강중령이 홀 쪽을 향해 소리쳤다.
"부관이 오늘따라 바빠. 상관 모실 생각은 않고 먼저 사라지다니."
강중령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안주 하나 더 시키자."
승길이 김병장을 쳐다봤다.
"왜 날봐.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매운탕 어때요?"
"그거 좋지."
강중령은 건성으로 말하지 않았다. 상대 눈을 보면서 똑바로 말했다. 그만큼 술 자리에 진심이었다.
“이런 편한 기분 처음이다. 군복들 하고 마시면 술맛 떨어져. 그래도 남자끼리라도 민간인하고 먹어야 제맛이지.”
강중령은 굳이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지 않아도 되는데 정말 친동생처럼 대했고 그런 분위기를 승길이나 정수도 느꼈다.
“승길아, 아니 이병장, 아니 이 기자, 너도 의원들 만나고 다니지?”
뜬금없다 싶은 말은 강중령 입에서 나왔다. 수사관이 엉뚱한 이야기로 범죄자를 안심시킨 후 기습공격을 하는 것처럼.
“아직 초짜라 많이는 모르고요. 사수 뒤를 따라서 너댓 차례 만나기는 했어요.”
승길은 처음에 다까로 쓰다가 그냥 사제 말을 계속 썼다. 강중령이 요자를 쓰는데 민간인이 그럴 필요가 없어 곧 수정했다. 나름대로 상관이었던 군인에 대한 예우를 잊어서가 아니었다. 그러지 않아도 됐다.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구나. 그럼 박봉길 의원을 알겠네. 만나는 봤어?”
“이름은 들어 알고 있지만 인터뷰 한적은 없어요.”
“그럼 모른다는 말이지? 개가 너, 너를 기억을 해, 잘 더듬어 봐. 6통문 지나서 9지피서 불침번 설 때 너, 개에게 더덕 줬다며? 개가 다 불었다. 아니라고 시치미 떼지 마. 개가 지금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자유민주공화정당에 있어. 한 번 인터뷰 해봐라. 내 이름 팔고. 널 보면 무척 반가워할 거야. 무슨 너를 영웅시 하던데. 네 연설 때문에 자신이 여기까지 왔다고.”
승길은 어안이 벙벙하다기 보다는 놀랐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이 자리에서 그 상황이 연출 될 줄은 몰랐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기억은 살아 있었다. 승길은 뒷머리를 긁적 거렸다.
“잘 생각할 것도 없어. 만나면 알 거야. 그건 그렇고 자자, 먹자 먹어.”
대화가 잠시 끊기고 술잔이 거푸 비워졌다.
“아 그 학생? 알다가도 잘 모르겠어요.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입가를 다시며 승길이 배우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술취한 듯이 몸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었다.
“얘 봐라, 너 사제인간 되려면 멀었다. 부탁드립니다가 뭐냐. 부탁해요~, 해야지.”
강중령이 쇼프로그램의 사회자 흉내를 내면서 손을 앞으로 뻗는 시늉을 했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더듬으라니까. 서울대 법대 애들 받았잖아. 시위 엄청하고 온 날. 그리고.”
거기서 강중령이 말을 끊었다.
“거기서 왜, 자살도 있었고.”
설명이 귀찮아 쐐기를 박듯이 강중령이 말했다.
“아, 그, 그 학생였군요. 그 학생의 친한 친구. 그 친구가 출세 했군요.”
남을 고자질 하면 출세하던 시절이었나? 승길은 또 샛길로 빠져들었다. 제대 후 복학한 학교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양키용병교육 결사반대는 여전했고 철권통치는 그런 학생들을 가차 없이 끌고 갔다.
대학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데모가 이어졌고 주동자들은 바로 군대로 사라졌다. 언젠가 언급한 녹화사업은 승길이 제대한 후에도 한동안 계속됐다. 학생들은 전방 입소 교육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양키 고홈’은 서울을 떠나지 않고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 2026년의 상황은 어떤가? 진보든 보수든 모두 그들 소위 양키들이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양키고홈의 구호는 전설 속으로 묻힌지 오래됐다. 양키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그걸 꺼내면 그런 일이 있었나? 고개를 갸우뚱하는 당시 양키 고홈의 전사들도 분명 있을터.)
전방 입소 교육을 마치 일제 식민 군대의 참전만큼이나 거부했고 그래서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학생들은 격렬한 시위를 하기도 했다.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을 태우고 전방으로 향하려던 버스들이 일정을 늦추는 일들도 벌어졌다는 사실은 앞서도 이야기 해서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시위 소식은 곧바로 전방의 교육대 조교들에게 전해졌다. ‘지금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이번 기수 학생들은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뭐 이런 메시지들. 조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최루탄에 젖은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은 나름대로 고욕이었다. 조교들 가운데 일부는 입소만 하면 일주일 내내 뺑뺑이 돌리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학생들이 탄 버스는 늦어도 한두 시간 정도였지 월요일 오전을 넘기는 법은 없었다.
13초소를 통과해 5번 도로에 뿌연 먼지를 뿌리면서 전초대 연병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보면서 조교들은 박수로 그들을 환영했다는 사실도 이야기 했다. 한 번 한 것을 되풀이 하는 것은 그 기억을 오래 두고 싶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행렬, 먼지 행렬은 마치 사막에서 불어오는 폭풍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연병장에 대기하고 있던 조교들에게는 또 일주일을 보내는 이유가 됐다.
“늦었지만 조금 더 마시자.”
그러면서 강중령이 안주머니에서 작은 지갑을 꺼냈다. 명함이었다.
“나 전방에서 이곳으로 왔다. 비밀로 해.”
그는 교육대의 대령처럼 비밀로 하라고 했다. 누구한테라는 주어가 빠져 있어 승길은 그냥 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전방에서 뺑이 치다 나왔을 때 기뻤다. 육사 선배 빽도 있었지만 국방위 소속 박봉길 의원이 힘을 썼다. 내내 고마운 존재야. 승길이 네 이야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어. 그러니 우리 김병장도 내 은인인 셈이지. 김정수 병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정도 되는 위치면 금이 좀 필요 하거든. 제때 잘 보급해주니 얼마나 든든한데.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이다.”
승길은 명함을 바로 주머니에 넣지 않고 거기에 적힌 내용을 읽어 보았다. 육군본부 사령관실 강성중 중령. 육본 마크 아래에 간단한 이력이 적혀 있었다.
“이 명함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야. 특히 승길이 너에게.”
“나보다도 김병장이 도움을 받겠지요. 금 좀 많이 팔아 주세요.”
대화에서 소외돼 침울했던 정수의 눈이 금이라는 말에 반짝 빛났다.
“아, 참 인사가 늦었다. 네 선물이 최고였다. 정말 그거 니가 만들었냐? 말똥 두 개 말이다.”
“그럼 저 말고 누가 만들 사람 있나요?”
정수가 되물었다.
“여기 종로 바닥에서 얘가 최고에요. 종3 금은방의 왕두꺼비, 황금 돼지는 다 얘 작품이거든요.”
승길이 추어올렸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다 김병장 작품이었고. 소대장님 기억하지요?"
만드는 거라면 뭐든지 솜씨가 좋았던 김정수 병장. 성탄절에 내무반에 다는 장식품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펄펄 눈이 내리던 날, 그야말로 함박눈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종일 쓸고 밤새 쓸고 그 다음 날에도 쓸고 무려 이틀간 꼬박 눈을 쓸고 들어 온 날에도 그는 다음 달에 제대하는 고참을 위해 코르크 참나무로 조각품을 다듬었다.
그 솜씨로 중령의 말똥 두 개를 금으로 만들었다. 소대장과의 인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소대장님 잔 받으세요.”
“야, 아직도 내가 소대장이냐? 대대장 된 지 언젠데.”
중령은 정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많이 팔아 줄게. 군인들은 현금보다 금을 좋아해. 선물하기도 좋고. 연락할 일이 생길 거야. 넌 그냥 만들기만 해. 돈은 바로바로 입금해 줄게. 지금까지 빵구난 적 없지?”
김병장의 얼굴이 훤하게 펴졌다.
“네 다리를 생각하면 약과다. 미안하다 김병장.”
“그렇잖아도 이 다리를 보여줄 참이었어요.”
김병장이 바지단을 걷어 올렸다.
“됐어, 됐다고. 내가 다 알지. 너, 내가 잘 되기만 빌어라. 어느 정도 위치되면 너 하나는 내가 분명히 챙길게. 승길이 너도.”
잠시 침묵 뒤에 강중령이 시계를 보더니 더 늦으면 안된다며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도 정수와 승길은 술을 한 병 더 먹었다. 안주가 많이 남아 있기도 했지만 정수가 못 가게 막았다.
“야, 나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학생이 무슨 죄냐. 근데 정말 자살이야. 나처럼 지뢰 사고 아니고?”
“응 자살.”
“나 같은 놈도 사는데 청춘이 구만리 같은 학생이 뭐가 부족해서 그런 짓을.”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오죽하면 그랬겠니. 자,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