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연설이 귀가 박혔다
[의약뉴스]
십오. 세뇌 교육이 달리 세뇌 교육이 아니다. 계속해서 주입하고 틈나면 떠들어 대면 그게 세뇌교육이었다.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위하기도 한 그런 것, 딱히 어느 쪽으로도 균형추가 기울지 않는. 그건 입소 첫날 학생들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
누구에게서 배운 게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됐다. 그래야 편하다. 조교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그렇다. 느리면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면 다음 교육에 차질이 생긴다. 빨리빨리 하기 위해서는 세뇌가 필수다.
이제 일주일 교육 중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지피 견학을 마치면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간다. 말년 병장이 지는 낙엽도 조심하는 것과는 달리 마지막 날이면 학생들은 어지간히 군기가 빠지기 마련이다.
그 사이 정이 든 조교들도 될 수 있으면 잔소리 안 하는 쪽으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의 임펙트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승길의 생각이었다. 왜 여행도 마지막 날에 가장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지 않는가.
그만큼 마지막은 중요한 것이고 사실 지피 견학은 교육대 일주일 중 하이라이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야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그래서 승길은 일장 연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을 모아놓고 떠드는 것은 비록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조교의 재량에 관한 사항이었다. 승길은 첫날부터 지피 탐방에 대한 설을 풀었고 귀가 닳을 지경이라는 핀잔이 오더라도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이런 식이었다.
“통문을 통과하기 전 우리는 손발톱을 깎는다. 머리털 하나씩도 뽑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한군데로 모은다. 이런 행위는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심어준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말은 꼭 해야 한다.
“조교의 지시가 있으면 그 즉시 엎드려야 합니다. 바닥을 골라 엎드려서는 안 됩니다. 설령 그곳이 물이 있거나 돌덩이가 있고 움푹 패인 지형이라도 즉시 그 자리에서 엎어져야 합니다. 알겠죠?”
"정말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거든. 초속 990미터로 날아 오거든. 피할 수 없고 맞으면 죽거든."
이러면 학생들은 쫄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엄청나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건 군대서 고참들이 자기 편하려고 하급병들에게 떠드는 것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승길은 그것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비교 대상이 될 수도 없다. 민간인과 군인을 어찌 비교하나. 통문을 통과하면 아주 빠른 시간안에 지피에 도착해야 한다. 거기가 그나마 안전한 곳이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능선을 무리지어 이동하면 적의 눈에 아니 띌 수가 없다.
“사격장의 피가 나고 알이 배는 피알 군기가 센 이유를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동료를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이만하면 됐다 싶었지만 승길은 입이 열리자 할 말은 다해야 한다는 듯이 연설을 이어갔다. 생명를 핑계 삼아 심한 얼차려로 부하를 괴롭히고 자신을 과시하는 악질 고참 같은 태도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길로 승길은 가고 있다.
이건 잘 따르고 안 따르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필수 조건으로 승길은 이해하고 있다. 군대는 그런 곳이다. 아니꼬우면 당장 학교로 돌아가도 된다, 는 말은 당일 한 번 한 후로 더는 하지 않았다.
협박이 분명하기 때문이고 하루가 지나면 학생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교육대 교육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만큼 짜임새도 있었다. 언제 하루가 가는지 모르는 일과가 난행 처음 온 해외여행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는 말은 학생 중 하나가 했다.
교육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군대 와서 놀고 가면 그게 어디 피가 되고 살이 되겠는가. 사회서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긍정으로 받아들인 몸과 부정으로 보는 시각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승길은 학생들이 모두 좋은 경험과 추억을 안고 가기를 바랐다. 군대를 보는 시각, 특히 양키용병교육으로 지탄 받는 대학생교육대 일주 입소 교육만큼은 그러기를 바랐다.
그건 진심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보고 나서 떠드는 것과 보지도 않고 떠드는 것은 다르다.
“자 주목하세요.”
다들 귀 쫑긋. 모이 앞에 있는 토끼들 같다.
“여러분은 떠나고 조교는 남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떠나고 남는다는 말은 멋지다. 시적 표현을 남길 때 승길은 학생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바라봤다. 이번엔 몰이 견 앞에선 순한 양떼들.
'돌아가서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어떤 것이 조국 통일에 도움이 되는 지도. 철책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155마일 휴전선에서 보낸 일주일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기회일지 아닐지는 순전히 각자 판단의 몫이죠. 대결을 원하기도 할 것이고 대화가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쯤되면 자아 도취의 순간이다. 순하면서도 독한 마음, 당겼다 밀었다. 그게 승길이 학생들을 제압하는 통제의 기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고 지피 견학. 앞서 말한 세뇌교육은 틈나는 대로, 기름 떨어진 차에 주유하듯이 또 주입한다. 가령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통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바로 비무장 지대다. 디엠젯. 여러분도 수없이 들어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에서 총알이 날아와도 이상할 게 없는 곳. 말이 비무장 지대지 남북 양쪽 모두 중무장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은 곧 목격하게 될 겁니다. 이 조교가 신호를 보내면 어떤 식으로든 눈치채기 바랍니다. 호각을 불 수도 있고 휘파람을 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런 시간조차 없어 엎드리면서 소릴 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제식 훈련 때 배운 대로 바로 그 자리에서 엎드려야 합니다. 알았죠? 엎드릴 장소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누울 자리 보고 기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 다행히 그 전날에 비가 왔다. 다행이라고 한 것은 학생들에게 잊지 못한 기억을 각인해 주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비는 소나기로 그쳤지만 제법 양이 많았다.
그래서 지피로 가는 500미터 남짓한 지그재그로 파인 길에는 흙탕물이 고여 있었다. 그걸 알고 승길은 이렇게 주문했었다.
“돌이 있든 물이 있든 피할 생각 말고 바로 엎드려야 살 수 있다고.”
어느 정도 군인 티가 나는 학생들은 바짝 긴장했다. 그 새 민간인이 군인 티를 내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대 전까지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여러분은 군인으로 치면 제대 말년. 내일 무사히 지피 근무를 마치면 학교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싫은 학생 있으면 지금 손드세요.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학생들이 일제히 웃는다.
'유종의 미를 거둡시다.'
승길은 만족했다, 이른바 자뻑. 자기가 편하려면 다른 도리가 없었다. 책임감이 앞섰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겁주지 않고는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피에 늦게 도착하거나 낙오자가 생기면 책임은 전부 조교가 져야 한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긴장과 공포의 순간이 지나고 나서 피우는 담배의 맛. 여러 달 내왕으로 친해진 지피장 중위가 수통에서 몰래 따라 주는 더덕주 한 잔도 꿀맛이다.
그건 그냥 얻어먹는 것이 아니다. 승길은 군장에서 한라산 한 갑을 챙겼다. 더덕주 대신 주는 페바의 선물이다. 자, 준비는 끝났다. 점호와 아침 식사를 번갯불에 밥 지어 먹듯이 하고 연병장에 집합.
지피는 좁아서 학생들 전체가 한 지피로 모이지 않는다. 각기 다른 지피를 향해 소대별로 조교를 따라 학생들이 이동하기 위해 정렬해 있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수통에 물을 가득 채웠다. 판초의도 챙겼다. 소총을 매고 철모를 썼다. 단독 군장이다. 맨몸도 힘겨운데 단독군장에 빠른 보폭으로 걷는다. 거의 달리는 수준으로.
승길은 지형도 알고 수통은 텅 비어 있고 판초의도 달지 않았다. 소총도 들지 않고 철모 대신 전투모처럼 가벼운 초록색 조교 모자를 썼다. 이쯤되면 체육복 입고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복장으로 승길은 대열의 앞에 섰다. 그리고 낙오하면 챙기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앞 학생과 거리는 최대 1미터 이상 벗어나면 안 됩니다. 자, 1분대부터 출발.”
처음 10분 간은 그야말로 달리기나 다름없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학생과 떨어트리려는 조교의 싸움. 씩씩 거리는 숨소리와 흠뻑 젖은 군복 사이로 낙오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기세.
세 개의 능선 중 첫 번째 능선에 다다랐다. 승길을 뒤를 돌아봤다. 열심히 따라 왔지만 줄이 늘어진다. 맞지 않는 전투화와 복장과 무게감. 그래도 다들 열심이다.
“다 왔으니 조그만 힘 냅시다.”
물 먹을 시간도 주지 않는다. 배가 부르면 걷는데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시 앞장 선다. 북녘 땅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작은 능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처럼 물결친다. 아름다운 강산이다.
얼핏 적 지피가 보인다. 무시하고 계속 걷는다. 사전에 교육한 대로, 미리 언질을 준 대로 승길은 통문을 지나 지피로 이동하면서 적당한 장소다 싶은 곳에서 휘파람을 불 작정이었다.
똑바로 앞을 보는 척 하지만 눈동자는 사방으로 굴러 다닌다. 여기다. 물 웅덩이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대부분 학생들이 빠질 만하다. 휙 휙휘익 휙. 세 번의 휘파람 소리. 그리고 승길은 물웅덩이를 피해 잽싸게 엎드렸다.
그리고 고개만 빼꼼히 들고 뒤로 돌아봤다. 여기저기서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고생 좀 해봐라.' 승길은 한참을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몸을 비스듬히 세운채 손을 위로 들어 일어나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후의 행군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학생들의 허리는 땅에 붙을 정도로 기역 자로 꺾어졌다. 조교를 따라 바짝 구부린 상태. 마치 월남전 밀림 지대를 수색하는 청룡부대처럼 제법 그럴싸한 티가 났다. 빈총을 옆구리에 끼고 전진 또 전진. 이런 건 찍어도 엔지 하나 없다. 다들 전문 배우 못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지피 견학은 한편의 코미디이면서 비극이었다. 지피장은 3분 정도 환영의 짧은 연설을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상은 강렬했다. 마치 전방 견학 나온 박통처럼 선글라스를 쓰고 지휘봉을 든 모습은 승길과는 달리 보였다.
‘군대 체질이야, 말뚝 박아야지.’
어느 순간 사람 목숨보다 비싼 독일산 군견 검은 세퍼트가 끙끙거리면서 지피장 옆에서 가볍게 꼬리를 흔들었다. 녀석은 이런 경험에 익숙한 듯 짖기보다는 냄새를 맡았다.
한 시간 정도의 지하 벙커 등 짧은 견학과 철수.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지오피로 돌아왔다. 마지막 교육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막사에 돌아오니 더덕 냄새가 배어 있는 듯 싶었다.
문을 열고 바로 막사 앞 공터에 집합했다. 식당은 배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식당도 막사에서 진행됐는데 승길의 소대 막사인 영등포 막사(전방 초소들은 영등포나 명동, 충무로 같은 익숙한 서울 지명을 소대 이름으로 썼다. 향수도 불러일으키고 사제 분위기도 느끼라는 뜻인가.) 바로 앞에 있어 이동 중에 군가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식당앞에는 짬밥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에 어느 정도 익숙한 학생들은 저녁 메뉴를 궁금해 했고 식판을 들고 지시도 안 했는데 미리 줄을 섰다. 일찍 서야 일찍 먹는다는 법칙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일부는 수저나 젓갈로 식판을 두드려 댔다.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먹는 밥그릇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도 군기가 빠졌다. 승길은 못 들은 척 내버려 뒀다.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닦고 시키는 대로 학생들이 이를 닦았다. 그리고 집합.
전방 입소의 마지막 밤, 지오피 근무. 날은 어두워 졌고 대남 방송은 크게 들렸다. 승길은 두 줄 횡대로 선 학생들에게 군가 대신 사가를 부르게 했다. 조교 재량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양쪽 허리에 손을 댄 학생들은 좌우로 반동을 시작했다. 전방 깊숙한 밤하늘에 꿈에도 소원이 퍼져 나갔다.
노래가 끝나고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결국 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뭐 그런 연설을 또 승길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는 행동이었다. 삼중 철책 아래서, 군부 정권 아래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았을 터.
하지만 승길은 운이 좋았다. 그를 거쳐 간 수백 명의 학생 가운데 어느 누구도 소원 수리함에 그런 내용을 적은 쪽지를 넣지 않고 학교로 돌아갔다. 순진한 녀석들. 그 가운데 박봉길도 있었다.
어찌 우리 그날을 잊을 수 있는가. 6.25처럼 박봉길을 잊을 수는 없다. 그날 새벽 승길은 설핏 잠이 들었고 누군가 급하게 흔드는 걸 느꼈다. 학생이라면 이렇게까지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발로 침상을 차는 듯한. 조심조심 조교님 어쩌고 저쩌고 할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순간 그는 이건 학생이 아닌 군인의 발길질이라는 걸 느꼈다. 비상이라고 했다. 비상, 비상. 중대 상황실에 도착했다, 허겁지겁. 하얀 포승줄을 몸에 감은 헌병도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가. 상황은 곧 밝혀졌다. 학생 하나가 자살했다.
“자살했어, 자살. 죽은 게 아니라 자살. 너네 소대다.”
함께 따라온 구대장이 말했다. 승길은 남한산성을 먼저 떠올렸다. 민간인이 군대서 죽었다. 그것도 학생이 철책에서. 중대장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거나 전화를 걸었다.
“자살이야 자살. 하필 내 구역에서.”
그는 구대장처럼 자살을 입에 달았다. 화가 난 표정이 얼굴 가득 담겨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