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장은 부상당한 의족을 승길에게 내보였다

2026-11-04     의약뉴스 이순 기자

[의약뉴스]

십사. 강중령과 만날 약속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승길은 정수와 헤어졌다. 집에 오자 전화가 왔다. 11시는 안 됐어도 늦은 시각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지. 불길한 예감을 갖고 승길을 전화를 받았다.

마리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뭔가 걸리는 뒷맛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이식을 받은 이종사촌이 위독하다고 했다. 그 말 다음에는 죽기전에 한 번 면회 가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있을 터. 하지만 마리아는 그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부담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한 번 면회가자.”

승길이 먼저 말했다. 사십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참으로 안됐다 싶었다. 승길과 겨우 한 살 차이였다. 간암에 걸린 이종 사촌 동생 재정.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이식이 적합한지 검사를 받았다.

모두 부적격인데 며느리 그러니까 재정의 와이프만이 가능한 상태였다. 이식이 없다면 길어야 1년의 시한부 인생. 집도의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부작용이 왔고 이번에는 3개월. 의사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했다. 눈에는 황달이 오고 복수도 찼다.

“준비하라고 나한테 주치의가 말하는 거야. 직계만 면회가 되는데 내가 자주 갔잖아. 내가 개 부인인 줄 아나 봐."

어렵게 면회를 했다. 천안 순천향병원에서 본 재정은 누가 봐도 산 사람이 아니었다. 3개월도 못돼 재정이는 죽었다. 병사. 이모의 표정을 보는 것이 망자를 추모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곡을 하는 소리가 마치 김여사의 목소리를 뻬다 박은 것 같았다. 승길은 그 찢어지는 애간장을 더는 받아 들일 수 없어 서울로 가는 다른 일행들 틈에 끼어들었다. 그런 일이 있고 일주일 후에 승길은 강중령을 만났다.

필승, 하고 인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고개를 숙여야 할지 승길은 판단하지 못했다. 민간인이 직업 군인을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군인이 통치하는 시대에. 그 통치를 뒷받침 하는 영관급 장교는 특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이상 아니만날 이유가 없었다, 고 승길은 회상했다. 종로의 일식집에서 먼저 와서 기다리던 김병장은 상기돼 있었다. 맞선을 보는 노총각처럼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쫄지마라. 중령이 군대서나 대단하지 사회서는 니 쫄다구다 생각해.“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으나 승길도 직속상관에 조금은 위축됐다. 병장과 중령 사이란 그건 것이다.

“너나 잘해. 그나저나 너 이거 봤어?”

정수가 옆으로 다리를 뻗어 바지를 걷어 올렸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흰 쇳덩이 위에 검은 양말이 보였다. 발목 위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가짜 다리. 처음보는 장면이라 승길은 낯설었다.

"야, 내려라. 올 시간 됐다."

“오면 오는 거지. 이걸 강중령에게 보여 주려고."

"뭐하러?"

"그냥. 부하 관리 잘 하라고."

"너도 참. 어련히 알아서 하겠어? 괜히 중령까지 올라갔을까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 전방 초소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기분은 때에 따라서 다르다. 승길의 지금 기분은 안도감이었고 따라서 저 별을 환영하고 있다. ( 사진은 쳇 지피티 이미지.)

벽에 붙은 성철 스님의 법문을 정수가 따라 읽었다. 그 때 저쪽에서 "어이 김병장, 이병장" 하는 소리와 저벅 거리는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강중령이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부관인가? 부하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얼핏 본 강중령은 중년티가 나는 듯 했다. 이마도 조금 벗겨지고. 군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라서 그런가. 머리도 길어 군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대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그가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렸다. 막상 만나고 나니 어색한 분위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새도 없었다. 강중령이 마구몰아쳤기 때문이다.

“앉아 앉아. 야, 민간인을 만나니 기분 좋구나. 너희들.”

고개를 숙였는지 이마에 손을 대고 필승을 외쳤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다. 닥치면 다 한다니까, 그게 정답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강중령은 선물로 가져온 더덕주를 꺼내더니 맥주잔에 벌꺽벌꺽 붓기 시작했다.

룸이 있는 식당이고 주인장과 잘 아는 사이여서인지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주둥이가 좁은 유리병 안에는 사람 모양의 더덕이 딱 버티고 서서 술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마시자.”

그가 노란색으로 변한 유리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했다. 금으로 장식한 말똥 두 개에 대한 답례였다. 이곳이 단골인 듯 마담이 강중령에게 깎듯하게 대했다. 손님을 대접한다는 인상을 주는 그런 태도였다.

'특으로 가져오라'는 말에 마담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물러났다. 뭘 먹을지 물어보지 않는 시원시원한 주문이었다. 승길이 정수를 보며 말했다.

“너, 덕분에 비싼 거 먹는다. 아니 소대장님 덕분에.”

“요즘 군인들 돈 없다. 하지만 내가 옛 전우를 만나는데 이 정도는 써야지.”

강중령은 호탕했다. 부하라는 말대신 전우라고 했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던지 막히지 않았다. 자신감. 술이 여러 순배 돌았고 다들 취기가 왔다.

강중령과 같이 온 부관은 정수와 승길에게 번갈아 가면서 잔을 권했다. 강중령과 달리 군복 위에 걸친 사제복을 벗자 부관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대위 정명구. 어디선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런가 보다 했고 대위 역시 승길에게 존칭을 하면서 처음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이게 난 보약이다. 아무리 좋은 위스키도 이것만 못해. 내가 너희들 주려고 두 병 따로 준비했다. 그리고 이병장은 더덕과 연관이 깊지 아마.”

강중령은 기억하고 있었다. 괜히 중령까지 올라갔겠는가. 비상한 기억력.

더덕이라면 전방 근무자들은 다 할 말이 있다, 그때는. 1980년대 초 중반. 지금은 어떤지 모른다. 강중령이 승길과 눈을 마주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노련하다 싶었다.

그 곤란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내가 널 영창 안 보내고 구해줬다, 이 놈아’ 하는 승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그걸 다 기억하는구나. 승길은 멋쩍게 웃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승길과 더덕을 연결시킬 이유가 없었다.

교육대 시절 승길은 불침번을 서는 학생과 더덕을 함께 나눠 먹은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아프다는 학생 대신 두 시간 연달아 불침번을 서겠다고 자원했다.

"제가 저 친구 대신 서도 됩니까. 조교님."

그가 군인처럼 까로 끝나는 말로 물었을 때 승길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이렇게 생각했다. 다들 자기 편하려고 빠지려고 안달하는데 그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픈 친구를 위해 대신한다고? 눈물겹게 고마운 전우애가 아닌가.' 승길은 그 학생에게 작은 성의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여기 저기서 가쁜 호흡이 들리고 코를 고는 학생도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있는 학생들. 그럴만도 했다. 벌써 며칠 째 각잡힌 군대 교육을 체험하고 있으니 피곤할만도 했다. 승길은 조교 관물대를 열면서 학생을 손짓으로 불렀다. 희미한 전등 아래 하얀 물체가 보였다.

승길은 “학생만 알고 있어요. 이거 말하면 조교도 영창 갈지 모르니까.” 이렇게 말하고 더덕 하나를 꺼냈다.

"크지? 철원의 군인들은 이런 걸 먹고 겨울을 이겨내. 얼마나 좋은지 먹어 보면 알아."

학생이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 이게 그 대검 자루만 하다는 그 더덕이군요."

그리고 놀라움. 리액션을 제대로 했다.

"지뢰 지대 알지? 역삼각형의 함석에 붉은 글씨로 ‘지뢰 조심’이라고 쓴 거 많이 봤지? 거기 넘어가서 내가 직접 캐온 거다. 지뢰 탐침 하면서. 지뢰 지대를 넘을 땐 손발이 다 떨리더라. 그리고 마침내 지천으로 널린 더덕순을 발견했지. 굵은 대가 올라온 놈으로만 여러개 캤다. 정말 대단했지. 죽음을 이겨낸 더덕이다, 이게 말하자면. 그러니 이건 일급 비밀이다, 탑 시크리트."

승길이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입막음하는 시늉을 냈다. 실제로 그랬다.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승길은 학생들이 휴식할 잠시의 틈을 타 지뢰지대를 타고 넘었다. 사실은 타고 넘은 것이 아니라 군화로 세줄의 철조망을 위에서 아래로 눌렀다.

얼마나 오래 됐던지 철조망은 푸지직 소리를 내면서 아래로 가라 앉았다. 6.25전쟁 때 설치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뢰가 있어도 터지지 않겠네. 안심을 하면서 승길은 조심스럽게 한 발 씩 내디뎠다.

그리고 얼마 안가 더덕밭을 발견했다. 엄청난 양이었다. 승길은 그중 엄지 손가락만하게 올라온 놈으로만 줄기의 끝을 잡고 뽑았다. 배수가 잘 되는 지역의 경사로여서 더덕은 쉽게 뿌리채 뽑혔다.

그 순간의 희열이란. 그렇게 서너개를 캐서 양쪽 탄티에 억지로 쑤셔 넣고 이제 돌아서 갈 까 하다 승길은 기겁했다. 바로 앞에 삼각뿔 세 개가 보였다. 저기 개인용 엠 18 대인지뢰다.

배운 걸 바로 기억해 내자 등에서부터 식은 땀이 솟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움직임을 멈춘 승길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플라스틱 덩어리가 보였다. 개인용 발목지뢰. 이때 승길은 죽었다 복창했다.

여기서 소리를 지를까. 그러면 지뢰 제거반이와서 살수 있다. 하지만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학생을 인솔하고 온 조교가 지뢰지대에서 지뢰를 캐다 발견됐다면 이건 100프로 영창이다.

눈 앞이 깜깜했다. 승길은 시계를 봤다. 들어온지 10분 정도 지났고 10분 정도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허리에서 대검을 꺼낸 승길은 조심스럽게 탐침을 시작했다.

결과는? 부상당하지 않고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소설을 쓰고 있잖은가. 다른 증명이 필요없다.

"조교님 이거 먹으면 정말 밤에 잠을 못 자요?“

승길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어떻게 응수할지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건 눈감아 봐야 알지?"

더덕을 먹으며 학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픈 친구가 자신과 가장 가깝게 지낸다고. 그런데 그 친구가 운동권이라고 했다.

"조교님 재가 운동권 핵심이에요. 우리 학교에서."

이건 뭐지. 손가락으로 자고 있는 친구를 가리키는 학생을 보고 승길은 생각했다. 그리고 손가락 대신 전투복 상의에 있는 이름을 눈여겨봤다. 박봉길.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이건 고자질인가. 전방에서 운동권을 불다니. 여기 빨갱이가 있으니 잡아가라는 건가.

순간 승길은 씁쓸했다. 하지만 그 뒤의 말은 의외였다.

"저도 한통속이거든요. 버스에서 최루탄 냄새 많이 났지요. 학교에서 엄청 세게 시위했어요. 다친 얘도 있고 전경 방패도 뺏고요."

이건 뭐지? 고자질이 아닌가. 승길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먹는 방법에 대해 말했다.

“더덕 먹을 때는 조용히 하고 씹어해. 자근자근. 그래야 효과가 제대로 나거든. 냄새도 엄청나. 막사 밖 100미터에서도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이렇게 코를 막고 먹어야 겠어요. 말도 하지 말고요.”

박봉길 학생은 이제 완전히 민간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잘해 주면 빠진다니까. 다까는 어디로 갔어?”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가 이어졌고 더덕 시음은 곧 끝났다. 학생은 다음 근무자를 깨우고 침상에 올라갔고 승길은 어쨌든 저놈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탈이 난다는 격언을 상기하면서.

그 전에 조교 한 명이 학생과 정치적 얘기를 했는지 학생들 떠나고 나서 바로 남성산성으로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다. 조교는 바로 교체됐다.

“조심해야지.”

승길도 막 침구로 올라가려는 순간 하루 일정으로 전방에 와 있던 소대장이 승길을 보러 막사로 들렀다. 깜짝 놀란 승길은 처음엔 소대장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소대를 떠난지 3개월이 흘렀고 소대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탓이다. 소대장은 대뜸 “너 더덕 먹었니?” 하고 물었다.

“네.”

아니라고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학생이 달라고 해서 조금 줬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마라. 너, 학생들 교육 잘하는 우수 조교라고 구대장이 연락했더라. 그 구대장이 내 육사 1년 직속 선배거든.”

“네, 소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난 내일 부대로 복귀한다. 학생들 인솔 잘하고 구설수에 오르지 말고. 내년에 보자.”

승길은 막사 밖까지 따라 나갔다. 오금이 저렸다. 병장 정도면 몰라도 이등병이 아니 일병 막 달았을 신참이 내무반에서 더덕을 먹다니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대였다면? 헤어지고 나서 하늘을 보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이 돌았다. 별들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청명한 밤이었다.

다음 날 금요일 오후 지피로 향했다. 학생들은 길게 2열 종대로 퍼져 행군했다. 페바 안전지대서 지오피 통문을 통과하는 거리는 대략 3킬로미터 정도였다. 이날이 훈련 마지막 날이면서 가장 고된 날이었다. 그 전에 승길은 페바 이동시 주의 사항에 관한 세뇌교육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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