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김병장을 만나 술을 마셨다
[의약뉴스]
십이. 형수는 타고 왔던 대절 버스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떠날 때는 밖을 보고 손을 흔들었는데 승길도 따라 흔들었다. 이산가족 상봉 후 다시 못 볼 혈육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간절한 마음은 일지 않았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끝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승길은 하선과 광산김씨와 함께 시골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날은 곧 어두워졌고 마당 가의 130년 묵은 팽나무가 말없이 반겨줬다. 깊은 슬픔 같은 건 없었다. 되레 마음이 평온했다.
죽기만을 손꼽아 온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처럼 음산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광산김씨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인생을 달관할 만큼 살았으니 어떻게든 이겨낼 것이다. 더구나 그녀에게 자식의 죽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승길의 위로 두 형이 더 일찍 세상을 떴다. 하나는 생후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만하면 살게 됐다고 백일 떡을 준비할 무렵 아이는 밤새 자지 않고 보챘다.
종일 밭일로 지친 김여사는 젖을 물리고 잠이 들었다. 깨고 보니 등골이 싸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직감했다. 벌떡 일어난 김씨는 싸늘하게 식은 아이를 보고 기겁했다.
‘내가 죽일 년이다. 그깟 잠이 뭐라고.’ 대성통곡이었다.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김씨는 혼절했다. 첫 아이의 죽음. 하선은 다음 날 배냇저고리에 쌓인 아이를 안고 뒷산으로 올랐다.
산의 중턱쯤에서 하선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동네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고 어떤 집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큰 형님네가 밥을 짓고 있네.’ 그는 아이를 내려놓고 발에서부터 작은 돌부터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추고 쌈지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건 아이와의 작별 시간을 좀 연장하기 위해서였다. 농사일에 바빠 제대로 보지도 못한 그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그제서야 승길은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주먹만 한 얼굴에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는 아이를 안았다. 김여사와 사이에서 난 첫아들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듯 그는 그렇게 안은 아이를 한참 동안 얼렀다.
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도 어를 수 있구나, 아이를.' 승길은 그네를 밀고 당기듯이 한동안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입에 문 담배 연기가 아이의 얼굴에 닿았다 사라졌다. 사라지는 담배 연기 속에 아이의 얼굴도 사라졌다.
그리고 한 시간쯤 됐을까. 제법 봉분 모양의 돌탑이 나왔다. 애장이 완성됐다. 하선은 돌아서 내려왔다. 그냥 내려 오지 않고 지게 위에 나무를 한 다발 해왔다. 무거운 짐만이 그의 텅 빈 가슴을 채울 것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그는 한 발 두 발 옮기면서 이 아이가 첫 번째이면서 마지막 이별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불행은 연달아 왔다. 두 번째 아이는 다섯쯤 됐을 때였다. 며칠을 앓던 아이는 읍내 의사까지 와서 봤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첫째와는 다른 엄청난 충격이 김여사를 덮쳤다.
막았던 댐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 같은 충격. 너무나 커서 김여사는 울지도 못했다. 울음은 목에 걸려 ‘커이 커이’ 깨진 유리알처럼 갈라져 나왔다. 김여사는 달을 보고 빌고 빌었고 장독대에 매일 정안수 떠놓고 빌었다.
암흑 속에서 빛나는 별들에게는 목구멍이 닿도록 하소연했다. 하나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저렇게 별들이 많으니 둘째만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원하면 들어준다는 산신령님께도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김여사는 장독대를 미련없이 부셔버렸다. 그때 까지 있던 사발 그릇도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그녀는 하선이 받쳐둔 지게 작대기를 들고 사정없이 들이팼다.
실성한 그녀는 오후 늦게 깨어 나서 죽을 한 그릇 다 비웠다. 저녁에는 꽁보리밥 한그릇을 해치웠다. 하선은 다음날 김여사가 기침도 하기전에 일어나 다시 집 뒷산으로 올라갔다.
깜깜한 산길을 더듬어 산을 넘어 돌무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년 전 강보에 쌓였던 첫 아이. 하지만 첫 아이의 무덤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는 두리번거리다 포기했다.
형의 옆에 묻어 주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다시 새로운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전보다 크고 높은. 해가 떠올랐고 앞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선은 작대기에 꼽고 다니는 낫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를 잘라 자치기를 만들었다. 사촌들과 하면서 놀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자치기를 깎아 놓고 하선은 또 담배를 피워 물었다. 두 번째 아들과 하는 작별 의식은 첫째와 비슷했다.
며칠 뒤 하선의 손위 처남, 그러니까 김여사의 오빠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하선을 위로한다기보다는 자기 여동생 김씨를 보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마당가에 있던 하선을 보자마자 “이 사람 이게 웬일인가”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잘생긴 놈이었는데. 읽기도 잘했는데. 하늘 천 따지를 다 외웠는데.’ 나중에 승길은 늙은 외삼촌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아니 네 번째 며느리까지. 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김 여사는 꿋꿋하게 버텨왔다. 그러면서 하세월이 훌쩍 지났다. 내년이면 남편 하선과 같은 나이가 된다. 95세
승길은 아마 그때까지는 김여사가 살아 계실 걸로 봤다. 그 이상은 무리일 수도 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아무런 후유증 없이 쓰러진 지 두 시간 만에 논에서 온 하선에게 김여사는 발견됐다.
‘밥줘, 어서’ 라고 소리쳤는데도 반응이 없자 하선은 배가 고파 숨넘어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방문을 냅다 열어젖혔고 그때 거품을 물고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김씨를 발견했다. 기겁한 그는 구급차를 부르는 대신 나봐, 나봐 하고 외치면서 밥 달라고 소리치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나봐 나봐 정신차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냉수 한 그릇을 가져와 냅다 얼굴에 뿌렸다. 그리고 나서 젖은 얼굴을 때리듯이 주무르고 가슴을 눌렀다 뗐다 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을 무의식중에 실현했다.
그 직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김씨는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김여사의 생명력은 이런 끈질긴 면으로도 드러났다. 하지만 혈압 때문에 승길이 동네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영상 화면을 보면서 의사는 말했다.
“한 번 더 뇌출혈이 오면 위험합니다.”
위험하다는 말로 돌려 말했으나 그것은 회복 불가능하다는 비유적 표현이라는 것을 승길은 눈치챘다. 그래서 혈압에 특히 신경썼다. 어지럽다고 하면 바로 혈압약을 드렸다.
그러기를 서너 달에 한 번씩 반복하고 있다. 지금 김 여사는 승길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다. 하선이 사망하고 나서 홀로된 어머니를 두고 볼 수 없어 승길이 집 근처로 모셔왔다.
“같이 살 수는 없지. 간혹 가볼 수는 있지만.”
김여사의 서울행을 결정하고 나서 살 집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 백아는 말했다. 승길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게 옳았다. 늙은 시어머니와 60이된 며느리가 함께 살 수는 없었다.
돈이 들더라고 방 한 칸을 구했고 데이케어 센터에서 아침에 출근, 저녁에 퇴근하는 것이 김여사의 일과가 됐다. 그러기를 삼년 째.
승길은 김여사가 세상과 하직하면 하선이 있는 선산에 합장할 예정이다. 생전에 책 읽기를 즐겼다는 광산김씨에 대한 한 줄 내용이 있는 비석도 세워놨으니 달리 다른 갈 길은 따로 없었다.
가끔은 화장한 후 하선의 봉분 위에 뿌리면 어떤지 고민하기도 했다. 아직 확실한 결정은 내리지 못했다. 형이나 누나와 상의할 일이지만 돈 드는 일은 관여하지 않으므로 전적으로 승길이 결정하기 나름이었다.
매장은 여러모로 번거로울 것이다. 하선의 신체가 아직 황골의 상태가 아닐 것이고 그러면 작업 인부는 물론 승길도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에 부칠 터였다. 김 여사가 오래 살면 문제는 간단하다.
상석을 뜯고 하선 옆에 매장 하고 다시 상석을 이어 붙이면 된다. ‘아직은 아냐, 그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승길은 미리 걱정을 했다. 두 해만 더 사시면.
그건 효심의 발로라기보다는 하선이 더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흙의 일부로 완전히 녹아 들었으면 하는 뭐 일종의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현재는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황골 상태인지, 아니면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상태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업자도 그런 말을 했다.
“파보기 전에는 몰라요. 아무도 모르죠. 물이 찰 것 같은 곳이 깨끗하거나 말랐을 것 같은 곳이 젖어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하선은 생전에 물차지 않는 묘에 대한 대책을 해놨다. 자신이 묻힐 곳이니 신중을 기했다. 더구나 그곳은 승길의 증조부, 고조부가 함께 있는 선산 아닌가.
하선은 묘 주위로 둥그렇게 흙을 그러모은 후 그 밖으로 물길을 냈다. 그것을 포크레인을 쓰지 않고 삽으로 혼자서 해냈다. 벼 타작을 한 후 땅이 얼 때까지 석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삽질한 결과였다.
해 놓고 보니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작은 왕능 같은 형태였다. 잘 다듬어진 봉분과 봉분 주변이 깔끔하게 정비된 그런 모습을 보고 하선은 만족했다. ‘이젠 비가 와도 물이 고일 틈이 없네.’ 그게 제대로 먹혔는지 다행히도 하선을 매장할 때 땅속은 그야말로 맨송맨송했다.
하지만 매장 전과 후의 상황은 다를 수 있다. 업자의 말마따나 파보기는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승길은 아버지가 둥둥 떠 있는 상태를 원하지 않았다. 황골의 상태, 장인처럼. 사막에서 발견되는 바짝 마른 미이라는 아니어도 황골 상태여야 후손들에게 복이 들어온다.
그러니 어떤 자식이 둥둥 떠 있는 것을 원하겠는가. 그렇다고 확인하기 위해 파묘할 수도 없는 일. 승길이 생각해 낸 것은 점집을 찾는 일이었다. 숭인동의 대왕도령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물에 둘러싸인 조상 꿈을 꾼 자식이 여러 날 고민 끝에 파묘했다. 삼베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춥다고 자식 앞에서 난로를 달라는 시늉을 했다는 꿈, 물속에서 방금 나와 덜덜 떨고 있는 꿈 등, 꿈자리 사나운 자식들은 부모 묘의 상태가 궁금한 법이다.
승길은 아직 그런 꿈은 꾸지 않았다. 잘 있는 듯 평소처럼 단정한 자세로 농민신문을 소리 내서 읽는 모습으로 몇 차례 나타난 적이 있다. 에이아이에게 꿈의 해몽을 부탁한 적도 있다. 길몽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기계 아닌 사람에게 확인하고 싶었다.
승길은 종로행 전철에 몸을 실었다. 첫 방문 후 시간이 제법 지났으나 승길은 처음처럼 네이버 지도나 간판을 보지 않고도 쉽게 붉은 바탕의 대나무 깃발을 찾아냈다.
그 전처럼 승길은 생년월일과 태어난 일시를 대왕도령에게 알려줬다. 마치 처음 오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무리 용한 무당이라고 하더라고 3 년 전에 본 점을 기억할 수는 없을 터라는 선입견이었다.
그러나 괜히 용한 무당이겠는가. 방울을 흔들던 그녀가 오라버니 오셨네, 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이번에는 무엇이 궁금해서 왔어요. 십 년은 젊어 보이는 얼굴은 여전하고.”
승길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런 무당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가. 대왕도령은 말했다.
“아버지 묘가 궁금하지? 그렇지?”
존대말을 하다 갑자기 반말을 하는 무당. 전세가 바뀐 것을 알고 승길은 "네, 그래요", 하고 공손히 말했다. 대왕도령은 아버지는 잘 있다고 말했다. 보송보송한 담요를 덥고 있다는 것.
“왜? 물에 둥둥 떠 있을까봐요? 오라버니는 얼굴을 보면 그렇게는 안 되지.”
대왕도령은 다른 손님과는 다르게 승길을 대하고 있었다. 승길은 그렇게 느꼈다. 거래 관계가 아닌 일종의 오랜 신뢰가 있는 지인관계처럼.
승길이 일어날 때 그녀는 어느새 신에서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접신하는 동안 힘이 들었던지 얼굴의 화장기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승길의 눈길을 의식한 듯 “혼신을 다하면 힘이 쫙 빠져요. 그래서 나는 하루 세 명 이상은 안봐요, 오라버니가 마지막이니 오늘은 쉬려고요.”
그녀는 손으로 이마를 훔치며 웃었다.
“그렇군요. 어쩐지 피곤해 보인다 했지요. 푹 쉬시고 다음에 봐요.”
“오라버니 잘 가요.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지난번에 왔던 젊은 오라버니라고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하고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승길도 웃었다.
"이제 다음부터는 우리 오빠, 동생 해요. 뭘 물어 보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간혹 들러 차 한잔 하고 가요."
"그래도 된다면 그렇게 할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동생 잘 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승길이 내민 손을 잡고 흔들었다. 어느 순간 승길은 자신이 노련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동생으로 둘만했다. 승길은 점집을 나와 바로 큰길로 가지 않고 골목길로 돌았다. 느긋하게 낡은 주택들을 보면서 600년 도읍지를 구경했다.
그래도 아직 저녁은 일렀다. 집으로 갈까 하다 갑자기 김정수 병장이 떠올랐다. 전화했다. 그가 퇴근하기까지 두 어 시간 기다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처 교보문고에 들어가면 시간은 금세 간다.
아니면 광장을 거닐어도 좋고 광화문에 갔다 오면 딱 맞는 시간이기도 했다. 청계천에 내려가도 괜찮다. 요즘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 노랑머리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북은 강남과는 달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거든.’
전화기 너머로 승길을 확인한 김병장은 퍽이나 기뻐했다. 그렇잖아도 전화 한 번 하려고 했다고. 당장 갈 테니 어디냐고 했다. 둘은 술잔을 마주 놓고 앉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김병장은 더 좋아 보였다. 그 사이 제법 돈벌이가 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