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냄새에 끌려 벌들이 날아왔다
[의약뉴스]
십일. 그 기분은 어떨까. 땅속에서 30년 만에 세상에 나온 기분은. 더구나 시원한 바람까지 불고 있다. 몸에 붙은 흙을 털어내 목욕을 한 기분이다. 상쾌할까. 아니면 부끄러울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황골도 말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누운채로 하늘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인부는 황골 아래에 어깨와 갈비뼈, 팔과 다리를 가지런히 놓았다. 교과서에 보았던 인체 모습이 완성됐다.
살이 빠지고 뼈만 남은 모형도가 실물 그대로 승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가족들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그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런 시간이 반복적으로 흘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길게 느껴졌다. 다 봤으니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도 되겠다는 신호를 받은 인부는 조심스럽게 뼈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보자기에 묶어서 차에 실었다.
그리고 3시간 후에 풀린 보자기의 뼈들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나온 지 불과 한나절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산자들은 잠깐 동안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했다.
승길은 무덤덤했다. 세월이 하도 지난 일이었기에 삶과 죽음에 초월한 사람처럼 작은 마음의 동요도 없었다. 다만 다시 묻힌 그곳이 그전과 같은 명당이어서 오래도록 황골의 상태로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죽은 자에게도 그것이 좋은 것은 인부가 말해서 아는 것이 아니었다. 본능적이 느낌이랄까. 하지만 모든 시체가 다 황골의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승길은 또다른 이장 작업에 참여했다.
장인의 이장 후 1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두 번째는 보다 생생했다. 생생했다는 표현은 황골과는 생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나 두 번째 당사자와는 긴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바로 승길의 친형이었다.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부족했던 그의 형은 45세를 넘기지 못하고 저승 사람이 됐다. 다른 기억들도 많지만 뚜렷한 기억 하나는 은행도 먹고 살아야 하니 돈을 빌려서 예대마진을 남겨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었다.
시쳇말로 형은 부자걱정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전에 부자들 걱정을 한 원조 부자 걱정쟁이였다. 그런 사람인데 생활력은 없었다. 너무나 허약한 존재가 형이었고 세상은 그런 허약한 자를 먹이 사냥으로 이용했다.
이용당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경제적 궁핍은 극에 달했고 결국 암으로 사망했다. 암 덩어리를 잘라낸 의사는 손으로 축구공만한 크기를 표시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수술 후 2년 후 재발한 암은 뼈까지 전이돼 아주 깡마른 상태로 병원에 실려갔고 보름 만에 사망했다. 형수가 출근하고 없는 빈집에 승길은 자주 방문했다. 그날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러더니 승길을 보자 바닥으로 주저 앉듯이 쓰러졌다.
"병원에 가볼까?"
"그래 가자. 더는 못견디겠어."
밖으로 부축하면서 나오자 연립 주택의 한 구석에 형의 낡은 소나타 승용차가 주인을 잃은채 먼지에 쌓여 있었다.
"저 차좀 저쪽으로 편하게 대줘. 다른 사람도 주차하게."
그게 형과 나눈 거의 마지막 대화였다.
사망한 형도 장인처럼 이사를 가야할 상황에 맞딱뜨렸다. 갑작스런 형수의 사망이었다. 합장을 위해 파묘가 진행됐다. 봉분을 드러내자 인부가 삽을 던지고 뒤로 물러났다.
승길도 덩달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묘 앞에 다가갔을 때 묘지는 웅덩이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뼈들이 흙탕물 속에서 떠다녔다. 정말로 낙엽처럼 떠다녔다.
당연히 황골을 기대했었는데 물찬 묘를 보고는 경악했다.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황골을 보았을 때와는 달랐다. 마음이 무겁게 짓누르르는 걸 승길은 참아냈다. 그리고 곧 묫자리를 잡은 하선을 탓했다.
그 많은 자리 중에 하필 물이 나는 곳을 선택했을까. 그렇게 보는 눈이 없나. 경황이 없다기로서니 나쁜 곳을 먼저 파는 묘지 담당자에게 속은 것이 분했다. 하지만 그걸 탓한들 어떤 이득이 있을까. 회한.
장인처럼 형의 뼈도 황골이었다면. 그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다. 승길은 어서 준비된 모든 절차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침울한 이장 작업이 진행됐다. 인부들도 말이 없었다.
물에 젖은 뼈를 추스르는 일은 정말 극한 직업일터. 이보다 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굳이 구겨진 인상을 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뼈들이 펼쳐진 천위에 올려졌을 때 천들은 비에 젖은 것처럼 곧 축축해졌다.
차마 그 상태는 다시 기억에 떠올리고 싶지 않다. 너무 놀라 다들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하선은 오죽 했을까. 먼저 간 자식의 이장을 보는 것만도 애간장이 녹을 텐데 이런 모습까지 보다니.
광산 김씨는 곡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거의 혼절 상태에 있었다. 산 사람이 중하다 보니 승길은 김여사가 마음에 쓰였다. 잘 버텨 주었으면 싶었다, 지난번 처럼 이번도.
술도 봉투도 준비하지 못한 승길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는 인부들에게 미안했다. 인부들은 서둘렀다. 이런 일은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빨리 끝내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들은 거침없이 일을 처리했다. 황골 대신 검은 뼈들을 추려내는 손길이 거칠었다. 그럴 때마다 물 묻은 천들이 뼈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가라 앉았다. 비에 맞은 것처럼 천들은 흥건하게 젖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들이 사람 형태를 갖추었을 때 해골은 마침 불어온 바람에 말라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늦게 나온 아랫부분의 뼈들도 척척한 상태를 벗어나 곧 마를 기세였다.
하지만 인부들은 기다리지 않고 곧 두 명이서 나눠 들고 위쪽으로 향했다. 묘지 관리실이 급하게 마련한 새로운 묘지로 이동하고 있었고 승길은 그 뒤를 따랐다. 뒤를 따르면서 승길은 저렇게 들고 가면 뼈들이 서로 엉키겠는데, 조심해야지 생각했다.
조심해서 들고 가라고 말하려다 승길은 그만두었다. 그들에게 무엇을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잠깐이니 괜찮을 거라는 편한 생각을 했고 뼈들은 어차피 가지런히 맞추니 상관 없겠다 싶었다.
형의 묘가 들어갈 자리 옆에 형수의 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수는 그때 나이 50을 갓 넘긴 상태였다. 둘 다 평균 나이는커녕 단명했다. 어린 조카들이 불쌍했다. 그런 상태를 예상하지 못한 관리실이나 인부들은 급하게 마련한 땅을 파는 데 시간이 걸렸다.
뼈들은 기다리는 것이 잘 됐다 싶었다. 땅을 파는 사이 젖은 뼈들은 다 마를 것이다. 마를 상태로 땅속에 묻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승길은 작업이 좀 더 지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인부들의 생각은 달랐다. 다시 맞춰진 뼈가 들어갈 자리를 어서 만들기 위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작업하는 모습을 그저 승길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땅은 생각보다 쉽게 파졌다. 마사토로 복토한 땅인지 원래 그런 땅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삽질이 더해질수록 삽자루 깊이보다 더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이제 관이 들어가기에 적당한 깊이가 됐다.
아래쪽의 인부가 손을 뻗자 위쪽의 인부가 아래쪽의 인부를 지상으로 끌어 올렸다. 구덩이도 완성됐으니 이제 묻기만 하면 된다. 흙은 말라 있었고 날씨는 좋았다. 승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치가 아주 끝내줬다. 원래 형의 묘가 있던 아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형수가 죽어서 형은 묘지의 맨 위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한 것이다. 애초에 왜 이 자리를 정하지 못했는지 승길은 또 하선을 탓했지만 그건 곧 마음속에서 녹아 내렸다.
대신 이 높은 곳이라면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비가 와서 홍수가 나도 고일 일이 없이 모두 아래로 쓸려 간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승길은 검은 뼈들도 시간이 지나면 황골이 될지 궁금해졌다.
그걸 인부들에게 물어 볼 수 있어 궁금증이 해소 됐으면 싶었으나 좋은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황골로 변한다는. 그래서 쭈그리고 앉아 땅에서 퍼 올려진 흙은 만져 보았다.
보송보송한 느낌이 들었다. 장인의 황골이 있던 곳도 이런 상태였지. 이런 흙이라면 형의 뼈도 30년 후에는 황골로 변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순간 승길은 장인의 황골을 들어 올렸던 순간을 떠올렸다. 작고 가볍고 약간 온기가 있었던.
그리고 형의 검은 뼈. 해골 역시 검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움뿍 들어간 두 눈 사이로 빛이 이나 싶더니 승길은 해골과 눈이 마주쳤다. 구멍 뚫린 두 개의 구멍 사이로 동공이 크게 파여 있었는데 그 눈이 살아서 움직이는 착각이 들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내려는 듯이 보였다. 승길은 일어섰다. 두 구의 시체를 한꺼번에 묻는 장면은 낯설었다. 형의 죽음은 그렇다 쳐도 형수의 죽음은 큰 사고였다.
멀쩡한 사람이 제 발로 병원에 들어가 죽은 것이다. 그것도 차를 운전해서 갔는데. 피로 회복 주사를 동시에 여러대 맞고 바로 혼수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한 달만에 사망했다. 쇼크사가 분명했으나 병원은 당연히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카들만 불쌍했다.
형수는 형 사망 후 그 긴 세월 동안 재가하지 않고 승길네 며느리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명절에는 당연히 시부모가 있는 보령에 와서 같이 지냈다. 그해 추석 차례도 지냈다.
먼저 조상 묘를 찾았고 남편 묘에 들렀다. 승길은 그날따라 차려온 것이 많아 보였다. 각종 나물과 전과 고기 산적까지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 해온 것이다. 딱 봐도 대갓집 상차림이었다. 승길은 참 정성 들여 제삿상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승길은 형수를 칭찬했다.
“언제 자주 오겠어요?”
형수는 반문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말이 이게 마지막 제사상이다,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다, 라는 말로 들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런 기분, 그런 느낌이었다. 형의 마지막 제삿상을 형수는 그날 그렇게 푸짐하게 준비했던 것이다.
제수 용품을 챙기고 나자 형수가 할 일을 했다는 듯이 허리를 펴면서 편한 얼굴로 말했다. 근처 편백 나무숲에서 쉬었다 가자고. 승길은 고생한 형수를 위해 우주선 모양의 카페가 있는 천연동굴 쪽을 제의할 생각이었으나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다. 거기는 나오면서 들러도 될 듯 싶었다.
숲속의 평상에서 하선의 식구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과일을 먹었다. 그 해는 유난히 포도가 달고 맛있었다. 한참을 먹고 있는데 벌들이 날아들었다. 쏘이면 붓고 아픈 말벌류였다.
녀석들은 포도 껍질에 달라붙었다. 먹고 살려고 쫓아도 떠나지 않았다. 형수는 부채로 쓰고 있던 근처 여행지 안내 책자로 벌을 내리쳤다. 벌은 죽었고 죽은 벌을 형수는 쓸어내렸다. 벌들은 그래도 계속 날아왔고 형수는 계속 벌들을 잡았다. 한 번 칠 때마다 벌 한 마리가 죽어나갔다.
“잘 잡네요.”
승길은 이런 실없는 농담을 했다.
벌은 그 뒤로도 계속 왔고 형수는 그때마다 또 내리쳤고 또 쓸어내렸다. 승길은 그걸 지켜보았고 식구들도 보았으나 그러지 말라고 누구도 만류하거나 벌들을 피해 자리를 뜨자고 하지 않았다. 벌들의 시체가 쌓여 갔다.
그날 오후 늦게 형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떠났고 승길은 다음날 새벽에 올라왔다. 생각 같아서는 하선과 점심을 같이 하고 싶었으나 서해안고속도로는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붐볐다.
조금만 지체해도 두세 시간 서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쉬움은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름쯤 후 조카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의식이 없다고.
벌들 때문인가. 벌들의 저주인가.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형수가 죽었으니 형과 합장해야 한다고 했다. 부득이 형의 묘를 팔 수밖에 없었다. 파묘는 앞서 말한 그대로다. 문제도 앞서 말했다.
봉분을 제거하자마자 물이 가득 차 있었던 것. 빈 공간에 넘칠 듯이 출렁이는 물. 승길은 보았다. 검은 뼈들이 둥둥 파도에 밀려 떠다니는 것을. 미처 다 삭지 못한 형의 육신이었다. 은행을 걱정했던 형. 지하방에서 연립까지는 올라왔으나 거기가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