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봉분이 나타났다
[의약뉴스]
십. 승길에게도 외할머니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치고 외할머니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 하늘 아래. 어디선가 주워들은 표현. 누가 했는지 지금 써먹어도 멋진 문장이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니. 외할머니 때문에 내가 있었구나. 하선의 장모이면서 광산김씨의 어머니, 그리고 마리아의 할머니. 그러고 보니 한 다리만 건너도 촌수가 복잡해 진다.
백아의 어머니, 금성 나씨는 민혁의 외할머니다. 금성 나씨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다. 광산 김씨와 같은 고향 사람이라 승길은 백아와 결혼 초기 싸울 때가 생기면 이혼 대신 천생연분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고향이 서로 같은 사람끼리 그러면 못쓴다는 생각. 지금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황해도 해주가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두 가족은 전쟁통에 내려왔다. 광산 김씨는 가족 전체가 금성 나씨는 남매만. 금성 나씨는 평생은 이북에 남은 가족 생활을 했다, 했을 것이다.
그들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남북이산가족 상봉시 금성 나씨의 이모를 그 조카와 오빠 그러니까 백아의 오빠와, 그 오빠의 외삼촌이 금강산에서 만난 적이 있다. 딱한 번. 만나고 나서도 이모 외에 다른 가족 생사를 알아 오지 못했다. 금성 나씨는 그 후로 더는 북쪽의 가족을 그리워 하지 않았다, 아니 덜 했다.
승길도 금강산을 가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오랜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어느 해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운 좋게도 그 이후 승길은 또 한 번 그러니까 금강산을 찾는 행운을 얻었다.
첫번째는 광화문에서 새벽 버스를 탔고 두번째는 자가용으로 고성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북녘땅' 이라는 푯말을 볼 때 감회가 아니 새로울 수 없었다. 디엠지를 넘어 가면서 군생활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저기서 동기가 죽고 탈영했고 다리를 잃었다.
금강산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오갔던 시절이 있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다. 일만 이천 봉 금강산에 오를 때는 어린 민혁도 함께했다. 거기서 나뭇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린 폭포를 보았고 해금강 구경을 했고 단고기를 먹고 대동강 맥주를 마셨다.
심지어 북한 병사와 이야기 까지 했다. 어린 병사는 남한에서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고 그런 일은 없다고 승길은 잘라 말했다. 아마도 황우석 줄기세포 건이 잘못 알려진 모양이다.
어쨌든 선사 시대의 이야기 같은 일들은 겨우 30년도 채 안 됐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간 기간인 것을 감안하면 겨우가 아니라 그 긴세월 동안이라고 표현해야 옳다.
참고로 금강산 관광은 한국인 관광객이 북한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후 중단됐다. 그때가 2008년이다. 양쪽은 군사구역 침범과 정당한 관광이 맞서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중단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이었고 한국은 이명박 정부였다.
금성나씨의 이산가족 상봉 당시 백아의 외삼촌과 이모의 조카는 못사는 북한의 혈육을 위해 이불이며 이런 저런 선물과 약간의 현금 등을 챙겨갔다. 그리고 무사히 상봉한 후 내려왔고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고 그 이후로 생사를 모른다.
헤어질 때는 버스 창가에 기대서 손을 흔들었고 눈물을 보였다고 민혁의 외삼촌은 전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 풍경이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이 생각할수록 그립다.
광산 김씨는 그래도 순탄한 삶을 살았다. 직계가 모두 내려와 새로운 터전을 잡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금성 나씨는 달랐다. 남편을 두고 온 까닭이다. 어린 자식과도 먼저 가니 곧 따라 내려오라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그 간단한 한 마디가 마지막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금성나씨가 평생을 먼 산을 보고 산 이유를 승길은 알고 있다. 하지만 승길의 장모 금성 나씨는 살아생전 제 입으로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금성 나씨의 옆에 오빠가 있었다. 남매는 서로를 의지했으나 남한에는 일가붙이라고 할 만한 기댈터가 없어 죽을 고생을 했다, 고 승길은 생각했고 그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혈혈단신인 사람이 이들 뿐이 아니어서 불평보다는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고나 할까.
죽지 않고 산 것이 기적이다. 억척 같은 성품이 두 사람을 살렸다. 백아의 외삼촌 그러니까 금성나씨의 오빠가 발빠르게 움직였다. 시장통에서 포목점을 하는 강원도 사람과 결혼해 자리를 잡았고 금성 나씨 역시 결혼에 성공했다.
여자 혼자 사는 것은 호락호락 하지 않은 남한 살림에 새남편은 큰 힘이 됐다. 금성 나씨는 재혼이지만 재혼 사실을 혼전에 백아의 아버지에게 알렸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백아의 아버지 역시 재혼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승길은 장모와 장인의 사생활에 대해 묻지 않았다.
백아의 아버지 금성 나씨의 남편인 수원 백씨 역시 신혼 초에 그 말을 신부에게 묻지 않았다. 백아의 어머니 금성 나씨 역시 수원 백씨에게 우리의 결혼 전에 다른 여자와 결혼 한 적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결혼했다면 자식이 있는지도.
그래서 둘은 화목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것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줄줄이 사탕 이어지듯 자식이 태어나 백아는 4남내 중 막내가 됐다. 승길은 가끔 두 분 고향이 같고 우리 둘이 막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무슨 보물단지처럼 여겼다.
갈등과 번민이 오면 그때마다 천생연분을 내세웠다. 소중한 인연이라 깨질 수 없다는 신념. 승길은 힘들면 시장통에서 장사로 연명하면서 자식들을 키운 금성 나씨를 떠올렸다. 그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고단함 덕분인지 다행히 4남매는 엇나가지 않았다.
타고난 성품이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천성을 이기지는 못한다. 승길은 어느 날 누군가에게 인지는 모르지만 처가 식구들이 모인 술자리이에서 우리 장인은 어떤 분이었는지 백아의 외삼촌에게 물었다.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다.
남에게 나쁜 소리 못하는 사람, 술을 좋아했는데 한 번도 주정이 없었던 사람. 술 취해 집에 들어오면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던 사람. 마지막 말은 장모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등골 빠지게 닥치는 대로 일했던 착한 사람.
그 덕분에 식구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작은 집을 마련했다. 백아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대학까지 나왔다. 승길과 결혼할 무렵 잡지사 기자였던 백아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몇 번 추궁하고 아니다, 라는 답변 끝에 승길은 그런 질문은 참 어이없는 추궁이라고 여겼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알면 무얼 할 것인가. 끝내 부인한 백아의 현명한 처사에 되레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백아 역시 금성 나씨나 수원 백씨처럼 적절한 대답을 했다.
승길과 백아는 1993년 결혼했다. 그 당시 수원 백씨는 사망한 지 오래였다. 신부의 손은 큰 오빠가 잡았나? 그런 것 같다. 확실한 기억이 없는 것은 급하게 올린 식이 초라했기 때문이다. 당시 비디오 촬영도 했으나 지금껏 한 번도 돌려 보지 않았다.
다만 주례사 일부는 기억한다. 두 사람은 다르다는 것. 그것만 인정하면서 살라는. 세월은 흘러 백아에게도 첫 아이가 태어났다. 여자애였는데 그 아이를 본 외숙모가 인형처럼 예쁘다고 칭찬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덕담은 그렇게 하는 것이고 승길도 그런 칭찬을 처남댁이 두 번째 아들을 낳았을 때 받은 것의 세 배 이상으로 되돌려 줬다.
“그놈 참 잘 생겼다. 미남이야 미남. 대한민국 최고 미남.”
그 무렵 수원 백씨의 유골을 이장했다. 이천 못 미쳐 어딘가 야트막한 야산에는 늘 할미꽃이 피었다. 그 꽃을 보면서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승길 장인의 묘가 있었다. 이름 석자와 생몰 연대가 적힌 작은 나무 비석이 무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승길은 하선의 조상묘를 생각했다. 왕의 무덤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위용 있는. 상석도 비석도 있다. 둘래석은 정교했다. 벌초하려면 힘들었다. 잔디밭이 넓었다.
“갑자기 연락이 온 거야. 고모부가 죽었다고.”
백아 외숙모가 당시 상황을 말해 준 기억이 있다. 이 역시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등진 백아 아버지가 묻혀 있는 곳. 자기 땅이 아니다. 몰래는 아니지만 남들처럼 가난한 자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였다.
할미꽃을 구경하며 작은 산길을 올라가면 거기에 옹기종기 묘들이 비슷한 크기로 있었다. 자식이 돌보는 묘도 있고 그렇지 못한 묘는 허물어졌으나 사람들은 밟지 않고 피해 다녔다. 장인 묘는 그나마 관리되고 있었다.
자식들이 해마다 찾아와서 돌본 탓이다. 거기에 분묘 이장 공고가 났다. 몇 날 몇 시까지 옮기고 그 이후는 무연고 묘지로 처분 한다는 것. 작은 산은 거대한 물류센터 자리였다. 땅은 이미 팔렸고 측량도 끝났다.
자식들은 마지막 날을 기다리지 않고 일찌감치 이장을 결정했다. 양평이라고는 하지만 강원도에 붙은 경기도 끝자락이었다. 경치가 좋았다. 막 조성되기 시작한 공원묘지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돈은 자식들 각자가 갹출했다. 나중에 장사로 돈을 번 민혁 외삼촌이 다른 형제들에게 돈을 돌려주었으나 승길은 백아와 상의 끝에 받지 않았다. 아버지와 장인 묘역에 드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작은 비석도 미리 주문했다. 비문은 승길이 썼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 자식이고 싶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봄볕 따뜻한 3월 중순경이었다. 이장 날은 분주했다. 다들 새벽에 일어났다. 여섯 시부터 시작해야 저녁 전에 끝낼 수 있다고 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인부들은 삽을 들고 벌써 진을 치고 있었다. 인부들이라고 했지만 겨우 두 명이었다. 그들은 상주들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봉분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봉분이라고 해야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애장 정도의 크기였다.
어린 아이가 죽으면 그냥 부모가 묻는 작은 봉분 형태는 곧 평평해졌다. 삽은 쑥쑥 들어갔다. 양지바른 곳이었기에 물기 하나 없었다. 삽자루가 깊어갈수록 삽질은 조심스러워졌다. 곧 유골이 드러날 것이다. 시선은 모두 아래를 향했고 조금 긴장감이 돌았다. 이런 식의 작업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관은 없나요?"
작업자가 머리를 뒤로 쓸면서 물었다. 백아 외삼촌이 말했다.
"없는가 봅니다."
‘관 없는 시신이라.’ 당시 형편이 어땠는지 알만했다. 씁쓸했다. 하지만 유골을 온전히 챙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담배를 물고 있지 않은 인부의 다른 손에 승길은 미리 준비한 세 개의 봉투 중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감사의 의미로.
장손이나 손윗 동서들은 미쳐 생각지 못한 것을 승길이 챙긴 것이다. 어릴 때 승길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상여와 만장이 펄럭거렸던 땅꼬마 시절. 삼베를 입고 이마에 새끼줄을 동여맨 하선 뒤를 승길은 대나무 지팡이를 잡고 뒤따랐다.
상여꾼들은 방울을 흔들고 곡소리를 하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동아줄에 10원짜리 지폐가 걸렸다. 큰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지금처럼 일꾼들이 매장 전에 쉬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그러면 하선이 형수를 위해 인부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그러면 인부는 담뱃불을 끄고 일어섰다. 지금 인부도 담배를 끄고 꽁초를 멀리 던지면서 일어섰다. 이후 그의 행동은 더 조심해졌다.
봉투 때문이 아니라 삽질을 해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뼈가 드러났다. 먼저 머리 부분부터 인부는 흙을 털어냈다. 머리는 몸통에서 분리됐다. 그가 고고학자처럼 머리를 들어 올렸다. 해골에는 황토가 조금 묻어 있었다.
“황골이다, 황골.”
인부가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골이라는 말을 승길은 그때 처음 들었다.
“황골이 좋은 건가요?”
승길은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한다는 듯이 물었다.
“암, 좋다마다요. 제가 이 일을 30년 넘게 했어요. 그런데 이처럼 깨끗한 황골은 처음 봅니다. 물에 둥둥 떠 있는 해골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자식들이 효자인가 봅니다.”
인부는 선을 넘었으나 그런 선은 자주 넘어도 좋을 듯싶었다. 인부는 가족들이 황골을 잘 볼 수 있도록 이리 저리 돌렸다. 과연 황골이었다. 해를 받은 황골이 빛을 받아 반짝 빛나는 듯도 싶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인부는 황골의 골과 골 사이에 묻은 흙을 떼어냈다. 눈에 들어간 흙도, 입 속에 있는 흙도 손가락을 넣어 긁어 냈다. 흰 장갑에 황토흙이 묻어났다. 정교한 작업을 위해 인부는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흙을 털어 냈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다는 증표였다. 아무리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도 해골을 맨손으로 잡고 손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상태가 좋고 마음에 든다는 뜻을 것이다. 가져온 솔도 이용했다. 흙이 묻었던 해골은 이제 뼈만 남은 상태였다. 깨끗하니 보기 좋았다.
그리고 인부는 마지막 작업이라는 듯이 해골을 들고 위 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남은 먼지를 털어내는 동작이었다. 가루 흙이 바람에 조금 흩날렸다. 그 상태로 그는 펼쳐진 하얀 천의 맨 위에 황골을 내려 놓았다. 밖으로 나온 황골은 생각보다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