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형광등 처럼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2026-10-27     의약뉴스 이순 기자

[의약뉴스]

칠. 전방의 겨울은 빨리 왔다. 낙엽이 진다 싶으면 곧 눈발이 휘날렸다. 분대별로 할당된 싸리 작업도 마쳤다. 창고에는 족히 2미터가 넘는 싸리비가 가득찼다. 눈만 오기를 기다리면 됐다. 첫눈이 오면 준비한 빗자루가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아직 승길은 첫 겨울을, 강원도 철원의 첫 겨울을 보지 못했다. 눈이 산처럼 쌓인다는 그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 승길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 것을, 미리 지레짐작해서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고참들은 말했다. "눈이 온다 싶으면 모든 작업도 그 어떤 훈련도 끝. 빗자루 들고 연병장 집합이다. 그렇게 중요해, 제설 작업이. 5번 도로를 치워야 하거든. 그래야 보급품을 전달할 수 있어. 트럭이 눈 때문에 막히면 다 굶어 죽는 거야.” 군대서 보급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작전에 실패한 장교는 용서해도 보급에 실패한 장교는 처형이란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13초소를 통과한 트럭이 중간에서 헛바퀴를 돌면 승길 중대는 그날 모두 남한산성행이다. 남한산성. 이름만으로도 한여름에도 오싹 소름이 돋는다.

자식은 (나보다) 고생을 덜 하리라. 그게 부모 마음이고 하선의 마음이었다.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내가 옥선이와 결혼해 자식을 낳는다면 말이야. 그러면 말이야. 이런 생고생은 안 시켜야지.’

수류탄이 터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감각 상태. 그 상태에서 하선은 이런 생각을 했다. 참 웃기지 않는가. 대열의 앞쪽에서 날아온 머리통. 그걸 정통으로 얻어맞고 귀가 먹은 하선.

그 와중에, 결혼도 하기 전에, 자식 걱정이라니. 앞서 나가도 한 참 앞섰다. 더구나 전쟁터로 끌고 가는 건 국가가 하는 일이다. 개인이 그걸 어떻게 바꿔. 마음은 이해못할 것도 없었다. 얼마나 자신의 상태가 심했으면 그런 생각이 들까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우선 나부터 살아야지. 없는 자식 걱정이라니. 그만큼 하선은 전쟁을 증오했고 전쟁터에 치를 떨었다. 그런게 쌓일수록 '내 자식만큼은' 곱씹었다. 사는 게 우선이지. 살고 나서야 자식도 있는 거야. 하선은 그때 그럴 겨늘이 없었는데도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이건 내 전쟁이지 자식 전쟁은 아냐.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 생각은 더는 앞서 가지 못했다. 귀가 들리지 않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들리고 말할 수 없는 상태. 죽음은 서서히 하선을 옥죄어 왔다.

이건 내 전쟁이다, 라고 크게 외쳤으나 이번에도 소리로 새어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고 귀에서 욍윙 거리기만 했다. 이번에는 옥선아, 옥선아 하고 불렀다. 하지만 매한가지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은 어떻게든 소리치고 싶은 모양이다. 무슨 소리라도 듣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자 정마로 귓속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말벌 수십마리가 귀의 깊은 안쪽에서 욍욍거리며 날갯짓 하는 소리였다. 이런 상항에서 어떻게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하선은 어떻게든 버티려 했으나 그만 맥이 풀렸다.

쓰러진 하선위로 인민군들의 군홧발이 밟고 지나갔다. 총알이 쉬지 않고 날아 들었다. 거센 격랑이 지나가면 파도가 잠잠해 진다. 그건 시간만이 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선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눈에 흙이 들어갔는지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도 앞은 깜깜했다. 떠도 안 보이는 세상이니 도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막혔던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반대편 귀는 살아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윙윙 거리는 벌소리였다. 그 날갯짓하는 벌소리 때문에 이번에도 주변에서 나는 다른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또 한 동안 시간이 흘렀고 조금 더 정신을 차린 하선이 손을 바닥에 짚고 일어 설 수 있게 되자 이제서야 소리의 분간이 가능해졌다.

가까운 시야도 확보됐다. 화약연기 사이로 비병소리가 들려왔다. 외마디로 외치는. 다리 잘린 사람이 자신이 처음이라는 듯이. 

“다리가 잘렸다. 내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간 다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던 입대 동기가 간간히 소리를 내어 말했다.

"그나마 대열의 중간에 있어 목은 붙어 있다."

"그래 넌 다리는 없어도 머리는 있다. 조금만 힘내자. 난 귀가 멀었다. 너도 살고 나도 살았다."

살아 있다는 말을 하고 나서 하선은 옥선이를 아니 정확히는 옥선이와 사이에서 낳을 자식을 떠올렸다. 참말로 하선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목이 붙어 있을 때 장가 가야 한다. 목이 떨어지면 장가가도 소용없다.'

다리를 외치는 것처럼 하선은 옥선이를 외쳤다. 그리고 기억이 끊어졌다. 다시 떠오른다. 다시 끊어졌다. 여관방의 깜박이는 형광등처럼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성한 다리가 필요해, 그땐 정말 그랬다니까. 그게 가장 중요했어. 잘린 다리 아닌 성한 다리. 중공군은 새까맣게 몰려오지, 비는 주룩주룩 내리지. 달리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그 친구는 달릴 수 없으니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어. 생사는 당연히 모르지.”

승길은 멍하니 하선을 바라봤다. 왜 그 애길 지금. 난 배고프거든. 라면을 두 개 삶아 먹고 달걀에 치킨을 먹었어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면회온 하선은 승길에게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두서 없는 말과는 달리 하선의 눈망울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난 달렸어. 달리고 또 달렸지. 잘린 병사는 어떻게 됐냐고? 그건 나도 모르지. 모른다고 했지? 달릴 수 없는 사람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으니까. 적들의 함성이 바로 코 앞에서 났거든. 우리말이 아니었어. 중공군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지. 그걸 알기전에 난 달려서, 자꾸 달려서 산 중턱에서 맨 아래 개울까지 단번에 내려왔어. 물을 무진장 먹었지. 이제야 생각하니 맑은 시냇물이 아니고 핏물이 섞여 있었던 기억이 나.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은 거야. 잃으면서도 두 다리가 있어 다행이야. 이렇게 달릴 두 다리가 있어서 다행이야. 말도 못하고 아프면서도 그 생각을 했던 거야."

지금도 그때의 일이 난다는 듯이 하선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양반다리에 얹은 두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저 손으로 찌르고 빼고 방아쇠를 당겼겠지. 수류탄은? 갑자기 생각난 듯이 아버지는 수류탄을 던져 본 적 있어요? 하고 승길은 물었다.

"당연히 던졌지? 던지고 나면 자동적으로 몸이 땅에 붙어. 생존 본능이지. 하지만 많이는 못 던졌다. 던질 수류탄이 없었거든."

괜히 물었다. 고요했던 하선의 눈이 반짝 거리기 시작한다. 전쟁 이야기는 그만. 승길은 실감나지 않는 전쟁 이야기를 여기서 멈추고 싶었다. 하선은 더 하고 싶어했고 승길은 그런 아버지가 불쌍했다.

▲ 면회온 하선과 함께 여관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승길. 이때를 승길은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진은 쳇 지피티 이미지.)


라면 두개를 더 끓여 먹었고 소주도 한 잔 했다. 졸음이 쏟아진다.

"아버지 낼 아침은 깨우지 마세요. 불침번도 없어요. 알아서 일어날게요."

군대와서 가장 괴로운 것이 잠인 것을 승길은 알았다. 자다 말고 깨어서 불침번을 서는 것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불침번만 없어도 말뚝 박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수면부족은 승길에게 군대의 추억을 질리게 만들었다. 

"아버지 눕겠습니다. 내일 늦은 아침까지 푹 자겠습니다."

이불을 정리하고 있는데 하선이 바닥에 놓인 승길의 이등병 모자를 집어 들고 잠깐 보더니 자기 머리에 썼다. 거울 앞에 서더니 '충성'하고 거수 경례를 올려 붙였다. 

“아버지, 충성 아니고 필승입니다.”

“필승.”

하선이 필승이라는 말과 동시에 손을 들어 올려 머리에 갖다 댔다. 하옇게 센 머리, 안 어울린다, 진짜.

“이리 주세요 아버지, 그거 제꺼입니다.”

승길은 모자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 머리의 이등병 배지가 보기 싫었다.

입대 5개월 만의 첫 면회. 하선은 상봉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철원에서 한 참 들어간 곳에서 내렸다. 승길이 편지에서 알려준 그대로. 그리고 면회초소에서 승길을 인계받았다. 이곳은 육담리의 한 여관.

“비는 주룩주룩 내리지, 깔린 건 중공군이지. 나에 비하면 니 군대생활은?”

하선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드는지 마치 노랫말 처럼 비는 주룩주룩 내리지는 반복했다. 

"제 군생활은 약과라고요?" 

하지만 지금이 누구에게나 가장 힘겨운 법.

“아버지.”

“왜?”

“저도 아버지처럼 피비린내를 맡았습니다.”

순간 하선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여관방 벽에 들러붙은 연예인의 눈동자도 그만큼 커졌다.

“들어보세요.”

하선처럼 양반다리를 한 승길이 전우의 몸통에서 분리된 머리통에 맞아 귀가 멀은 아버지의 반대쪽 귓가에 대고 또박또박 말했다. 승길은 잠을 뒤로 미뤘고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못할 말이라는 듯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팔병 네 명은 동시에 총소리를 들었다. 순간 모두는 동시에 이건 사고다, 라고 판단했다. 이 시간에 야간사격 훈련도 아니고 막 점호가 시작되려는 저녁 9시 50분 경.

단발의 총소리. 대대 언덕의 바위위에 있던 승길은 냅다 아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가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소리가 났던 곳으로.

“너, 너, 달려가 봐.”

나머지 두 명은 남아서 점호 나팔을 불어야 했다. 화기중대 상병이 명령했다. 승길은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김정수 이병과 함께 내달렸다. 그리고 관제탑에 도착했을 때 다리를 부여잡고 괴성을 지르는 병사를 보았다.

그는 자기 발에 총을 쐈다. 죽기는 어렵고 군 생활은 더 연장할 수 없고. 자해 총상. 그가 다리를 잡은 손을 놓고 총을 잡았다.

“꼼짝 마.”

“아닙니다. 헌병 아닙니다.”

“가까이 오지 마.”

그가 식스틴 총구를 승길에게 겨눴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합니다. 피가 납니다.”

계급장을 볼 필요가 없었다. 이등병보다 낮은 계급은 없었다. 존칭이 효과를 발휘한 걸까. 상대가 주춤하자 승길은 과감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가까이 가자 일병 계급장이 보였다. 

"일병님, 피가 납니다. 막아야 합니다."

그가 총구를 보던 눈을 자기 다리로 돌렸다. 보름달 아래 검은 군화 사이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발의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그래서 어쨌는데?”

하선이 다급하게 물었다. 승길은 침착했다. '군대 짬밥은 이런 것이다. 곧 일병을 달게 되거든. 이런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나직하게 승길은 말했다. 마치 간난 아기를 안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김여사처럼.

“아버지, 전 정기 휴가 대신 포상휴가 받을뻔 했어요.”

“그래서 어찌 됐는데?”

“앰블런스가 싣고 갔습니다. 죽지는 않았어요. 치료하고 나서 영창 갔다가 제대하겠지요." 

승길은 덤덤했다.

“너도 조심해라.”

놀란 하선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미안한 마음에 승길은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건강하게 제대 할테니.”

이렇게 아들은 아버지를 달랬다. 

승길은 그 일로 사단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강원도에서 첫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사령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승길은 싸리비를 생각했다.

창고의 싸리비가 지금 비상 걸린 5분 대기조의 소총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싸리비 전달, 구호와 함께.’ 눈을 쓸어야 한다. 내가 없어 한 명이 두 명분을 해야 한다. 욕하겠지. 그 승길이 이 개자식, 쫄다구 놈 또 파견이야, 조사는 무슨 조사야. 복귀하면 싸대기를 날려야지. 안 봐도 비디오. 고참들의 짜증이 들려온다. 

펑펑 눈이 내린다. 기다리던 눈. 눈을 기다렸다고? 그럴 리가 없다. 눈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 기다리는, 오지 않는 애인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쯤 뺑이를 치고 있겠군.’ 이런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승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파견보다 확실한. 그래서 겁먹지 않았다. 아무리 헌병대라고 해도 무작정 설치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다.

헌병대는 입구부터가 무시무시했다. 포승줄을 어깨부터 드러낸 두 명의 헌병이 눈을 부라렸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었다. 잘못이 없는데. 그래도 괜히 승길은 위축됐다. 조심하자, 조심해서 나쁠건 없거든. 최대한 협조하는 표정을 짓자. 그런 표정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진지하게 대답하자. 

관등성명을 대고 서류에 사인하고 곧바로 조사가 시작됐다. 어두컴컴한 취소실은 아니었다. 고문 기구가 늘어선 지하 벙커도 아니고. 하지만 지상은 아니었다. 나선형으로 이뤄진 몇 계단 내려간 지하 3층으로 기억한다. 한시간 정도 조사를 받고 잠시 휴식했다.

승길은 홀로 조사를 받았고 같은 자리에서 김정수 이병과 동시에 조사를 받았다. 서로 아귀가 딱딱 맞았다. 거짓말을 하거나 둘러댈 이유가 없었다. 다만 점호 시간에 나팔을 부는 것에 대해 헌병 중사가 물었다. 삐딱한 자세로, 담배를 물고서.

이런 자세는 사병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영관급이라면 몰라도. 나팔병 제도는 중대장도 아니고 대대장 허가 사항이다. 그 말을 승길은 할 참이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차분해 지려고 작은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도 조용하게.

그보다 더 차분하게 헌병 중사가 생각보다 다르게 물었다.

“사회서 나팔 불었니?”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차출됐어?”

“자원했습니다.”

승길은 소대에서 지원병을 모집하면 무조건 자원했다. 작업조도 지원하고 행정반 심부름도 자원했다. 어차피 궂은 일은 쫄따구 신세였다. 지목당하느니 그게 더 나았다.

그러다 보니 중대 파견병 문제가 나오면 승길부터 찾았다. 가방끈이 길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의식화 교육 병교관이나 차트병, 암호병, 심지어 그것과는 상관없는 대대 대항 축구 선수까지. 고참 눈에 안 띄는 것이 좋아 시작한 자원병이 어느 순간 나팔병까지 왔다.

나팔병은 점호를 받지 않았다. 점호 삼십분 전에 대대가 내려다보이는 민둥산 돌덩이 위로 올라가 있어야 했다. 내무반은 그야말로 10시 점호 준비에 한창 바쁜 시간에.

‘룰루 랄라 나팔 하나로 신세 핀 사나이.’ 점호 불량으로 피 터지게 깨지고 막 잠자리에 소대원들이 들 무렵 승길은 나팔부터 막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때리려면 나팔을 때리라는 듯이. 그리고 죽을 듯이 미안한듯한 표정.

“어디 갔다 슬금슬금 기어들어와? 이등병 놈. 혼자 점호를 피한 놈.”

화난 고참의 분노에 찬 눈빛.

“네, 점호 나팔 불고 왔습니다.”

“나팔을 불고 있었다? 나팔을 그 시간에.”

헌병 중사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이유를 물었다. 시소를 타듯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야릇한 미소와 함께. 이해한다는 듯이, 아니면 나팔 분다는 어떤 비유적 표현을 떠올려서인지. 어쨌든 승길은 정말 나팔 하나로 풀린 이등병이 맞다.

“나팔 불다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이등병이라?”

”네, 그렇습니다.”

“나팔은 불 줄 알고.”

“여기 피스 있습니다.”

개인화기처럼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피스를 승길은 헌병 중사에게 내보였다.

“됐어, 됐고. 너도?”

“아닙니다. 저는 달무리에서 섹스폰 불었습니다.”

“달무리?”

“영등포에 있는 술집입니다.”

“허허. 그러셔. 나팔이 주특기군.”

그렇게 조사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애초 말했던 포상휴가는 주어지지 않았다. 포상을 받을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 이유를 대면 없는 이유보다 있는 이유가 많을 것이지만. 승길은 그걸 따질 수 없었다. 총구를 내려놓게 설득했고 발등으로 흘러내리는 피를 막았다, 신상 전투복을 벗어서. 이 정도면 일주일 휴가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더는 맡지 말아라. 산자든 죽은 자 것이든. 피비린내는 좋은 게 아니다.”

하선이 말했다.

“알았어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