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의 비평에 승길은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2026-10-26     의약뉴스 이순 기자

[의약뉴스]

육. 낮 동안 희미하던 대남 방송은 밤이 되면 시끄럽게 울어댔다.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그렇게 들렸다. 어떤 병사에게는 달리 들릴수 있지만 귀찮은 잡음인 것은 동일했다.

밤이 깊을수록 웅웅대던 육성은 선명해지고 비난의 강도는 세졌다. 남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화공작전처럼 저쪽에서 불을 지르면 이쪽에서도 맞불을 놓았다.

그러면 양쪽 비무장지대에서 지뢰가 펑펑 연달아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전쟁은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이었다. 날이가고 해가 가면서 무덤덤해 질만도 하지만 승길은 짜증을 냈다.

익숙해 지지 않는 소리였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소음에 대고 화풀이를 한바탕하고 나면 그만큼 시간은 간다. 어떤 날은 양쪽 방송을 비교한다. 그리고 판단한다.

저쪽보다는 우리의 공격이 세련됐다. 수령 운운이 아니라 최신 유행가를 틀어줬다. 가령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같은 노랫말을. 스피커 대결에서 우리가 앞서나가고 있다, 는 것은 분명했다.

승길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이 어떤 시대냐? 수령 타령이냐, 어쭙잖은 것들. 제 아무리 집중사격을 한다 해도 다 빗나갈 걸. 오합지졸들이야. 대북방송을 들어보라. 어느 쪽이 젊음을 즐기지도 못하고 푸른 군복 속에 갇힌 청춘의 심금을 울리는지. 바닥에 가라앉은 청춘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지.'

승길은 여기까지 쓰고 나서 백아에게 말했다. 초반전이라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은 없어도 더 읽을까 말까 망설이는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흥미를 끌만한 중요한 일을 아내가 대신해 주기를 바랐다. 쓰는 것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하는 백아는 승길의 그런대로 괜찮은 평론가였다.

교열이나 교정에는 나늠대로 실력있는 편집자였다. 승길이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백아가 없었다면 주춤 거렸을 일이었다. 더구나 백아는 비평보다는 칭찬을 많이 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독성인간, 다시 말해 독을 퍼트리는 인간조차도 좋게 말하니까.

그가 한 번도 타인을 지적한 적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삼십년 넘게 살면서도. 그러니 대충 써도 좋다고 할게 뻔한 것. 칭찬이 필요하다, 이 나이에는. 고래는 아니더라도 우쭐한 기분으로 춤을 추고 싶다. 승길은 그래서 백아에게 보고를(윗사람에게 하는 보고라고 해도 좋다.) 첫 보고를 올렸던 것이다. 소설의 서두 부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 부뚜막에 있는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듯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도 글로 적어야 소설이 될 수 있다. 백아는 그 점을 승길에게 지적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이렇게 커다란 솥에 국을 끊여 먹던 땅고마 시절이 간혹 그립다. ( 사진은 쳇 지피티 이미지.)


“이거 말이야, 몇 자 끄적거린 거야. 완성은 멀었지만. 놓친 부분은 없어?”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백아가 말했다.

“시작은 그런대로, 소설은 첫 몇 페이지에서 결정 나거든.”

과연 위대한 평론가 다웠다.

“이렇게만 쓰면, 완성만 하면 대박은 아니더라도 신문 서평란에 올라올지도 몰라.”

완성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소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 순간 승길은 당장 당선이라도 된 듯한 강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것도 그냥 소설가가 아니다. 등단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 아니면 작품 하나로 길이 남을 고전의 대가로 등극한 기분이었다.

터무니 없는 욕심은 아니다. 육십 넘어서 빛을 발한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다. 어디 세어 볼까. 그 누구더라. 하지만 승길은 생각을 멈췄다. 분명 있겠지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떠오른다고 해서 그 작가를 모델로 삼을 생각은 없다. 잘해야 본전인 것을 굳이 시간과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이제 내 이야기를 쓸 것이다. 초반이 좋다고 했으니 빈말이라도 더 써볼 용기가 생겼다. 그런대로라고 한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고 나쁘지 않은 것은 좋은 것이다. 승길은 꿈보다 해몽인 것처럼 백아의 한 마디에 굳은살을 붙였다.

몇 자 쓰고 엎어지고 어느 날 다시 쓰고 또 엎어지고. 한동안 푹 쉬고 돌아온 탕아처럼 소설에 다시 가슴을 파묻고 꺼이 꺼이 우는 전철을 이번엔 되밟지 않을 것이다,

다짐, 주먹 꾹 쥐고. 이번엔 엎어지지 않을거야. 백아가 읽어주고 훈수 두는 소설이라면 분명히 마침표를 찍을거거든. 독자들도 기억해 두시길. 이 시점에서 승길의 결의에 짝 각오를. 

무려 삼십년 넘도록 간직한 열망. 미끄러지고 미끄러져도 오를 것이다. 실내 알피니스트처럼,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줄을 잡을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아무리 급해도.

'가만, 이젠 굶어 죽을 리는 없잖아.' 순간 미래에 대한 설계도가 번개처럼 승길의 온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굶지 않는다면, 하루 8시간을 투자해 볼까. 더 낼수도 있지만 체력도 있고 노동권이라는 것도 있으니. 

“퇴직금하고 국민연금받고 사보험도 좀 있고. 그럭저럭 살겠어, 낭비만 없으면.”

백아는 이런 말을 했었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그 말은 이제 돈 걱정말고 작품에 매진하라는 채찍질 아닌가. 해설이 필요없는 말이다. 다른 주석은 필요없다. '해보지 뭐, 남들도 하는데.' 

그러다 곧 승길은 ‘개나 소나 소설가 아닌가? 떠올렸다가 이내 이 말은 취소다, 라고 정정했다. 소설가를 그런 식으로 낮출 이유는 없다. 아무리 같잖아도 그들의 노력은 가히 가상하고 보상받을 만한 가치다 있는 것이니까.

승길은 콧노래를 흥흥 정말로 흥흥하는 소리를 냈다. 쾌재를 불렀다. '그럼 그렇지.' 예상이 맞아 떨어질 때 나오는 감탄사. 만약에 완성된다면 작품의 일부는 백아의 몫이 될 터였다.

그녀는 승길보다 두 살 어린 말띠. 하지만 어른 스럽다, 두 살 정도는 승길보다. 연애때 읽어 보라고 준 책이 오늘의 승길을 만들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가 준 책은 지금도 책상 어딘가에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걸 읽고 승길은 자신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었다. 그 꿈이 지금 막 이뤄지려고 한다. 백아, 오 마이 럽. 

좀 더 설명을 붙이자면 이건 소설과는 상관없지만 말 띠인 백아는 말처럼 이리저리 뛰어놀기를 좋아한다. 집보다는 밖을 잘 아는 서울보다는 모르는 지방을. 허락만 된다면 외국도.

김여사가 한 말이 있다.

"백아는 집에 가만히 있을 상이 아냐. 가둬두면 화병이 생겨. 돈 벌어서 실컷 놀러다녀야 해."

"그러죠. 뭐? 노는 건 나도 잘하니까."

처음 소개한 날 저녁 김여사는 백아가 돌아가고 없는 자리에서 승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승길은 나중에, 한 참이 지난 나중에 백아에게 시어머니가 한 말을 전해줬다.

"당신은 여행하는 걸 좋아하니 니가 돈 많이 벌어서 여행 좀 많이 시켜주라던데."

"또 멍때린다. 정신 좀 차려."

백아가 다가와 살짝 꼬집는다. 

“들어봐. 앞으론 이렇게 전개돼.”

승길은 되는대로 지껄인다. 그래도 얼개가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백아의 한 마디.

“꾸준히 한 줄로 가, 마라톤처럼.”

가지가 많으면 수습이 어렵다고도 했다. 

쓰다가 자빠지지 말라는 말을 백아는 하지 않았다. 대신 요즘 승길이 주구장창 뛰고 있는 달리기에 빗댔다. 그 말은 분명 응원의 말이다. 비수처럼 심장에 꽂히지 않는다.

꾸준하게 가지 못한다는 전제가 걸릴 뿐.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칭찬만 바랄 수는 없다. '꾸준하게 게으름 피우지 말고 중간에 쉬지 말고 목표점 까지 가면 된다는 말이군.' 승길은 자신의 해석에 만족했다. 

“정 안되면 자비출판 해줄게.”

너그럽게 나오는 백아. 남들이 못알아보는 천재성을 발견한 것처럼 나직이 말한다. 

“돈 들일 필요없어. 달라, 이번엔 다르다고.”

“알았어 오빠, 어쨌든 완성만 해. 그러면 당선이야.”

백아가 언젠가 들은 마리아의 말을 흉내 내면서 말했다. 비꼬지 않는 어투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백아는 어느 정도 승길을 믿고 있었다. 아니 그의 문장을.

다른 소설가와는 달리 묘한 끌림을 받고 있다고나 할까. 어렵지도 않으면서 무언가 생각거리가 있는. 팔이 안으로 굽는 남편이기에 가능한 기대이기는 하지만.

그런 그녀였기에 저 나이에 무언가를 한다는, 그것도 소설을 쓴다는 남편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다. 그래서 다짐을 받듯이 한 번더 쐐기를 박는다. 흡연사실을 알리듯이 주변에 알리겠다고.

"그건 노. 아냐, 이건 흡연하고는 달라. 책으로 주는 건 몰라도 미리 알릴 건 아냐."

"노발대발 하기는. 나도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

“어쨌든 완성만 해봐. 완성이라고 책상에 써 붙여 놓고. 수험생처럼.”

백아가 등을 민다. 사족에 사족을 단다. '아직도 미심쩍어 한다는 말씀? 그 의심을 이번엔 박살내 주마.' 승길은 두 주먹을 쥐고 연단에 선 연사처럼 이번엔 다르다고 힘주어 외쳤다. '어쨌은 이번에는 완성해 주겠다고 이 연사 힘주어 외치고 또 외칩니다. 짝짞짝.'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아내의 말이 아니다, 어쨌든 완성만 하면은. 승길이 자주 써서 인이 박힌 것을 백아가 옮겼을 뿐이다. 주입식 교육이랄까. 자주 듣다 보면 마치 자신의 것이 되는 것처럼.

“어쨌든 완성만 하면.”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실내 자전거의 안장에 올라타 바퀴를 돌리며 승길은 중얼거렸다.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리던 백아가 또 한마디 한다. 요새 부쩍 말이 많아진 백아. 호르몬이 거꾸로 돌고 있나보다. 목소리도 세고 거침이 없다. 

“좀 더 참신한 거 없어. 완성만 하면 말고 하다못해 응모만 하면 이라든가.”

쏘아붙인다기보다는 위로하는 말투다.

"말의 표현이나 글의 표현이나 같은 단어의 중복은 재미가 없거든. 재미 없는 소설이란 다른 말로 가치가 없다는 뜻이지. 그런 작품은 당선과는 멀어지는 거고."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승길은 곧바로 인정하고 수정했다.

"응모하는 작품치고 미완성 작품은 없거든. 완성이든 응모든 그게 그거니까."

"그래 응모만 하면."

"그건 그렇고. 소설 제목도 없고 초반이기는 하지만 주제가 뭔지 모르겠는데. 경험인 건 알겠는데. 뭐, 삼대에 관한 이야기? 삼대라면 글을 관통하는 핵심은?"

승길은 뜨끔했다. 아직 그걸 정하지 못했다. 주제가 뭐지?

"쓰기만 하면 뭐해. 중간 중간에 임펙트가 있어야지. 그게 없으니 완성을 못하는 거야. 갈래가 많으면 모으는 게 쉽게 않아. 이번엔 단순하게 가자고. 근데 일제 강점기부터 육이오까지. 시작부터 너무 넓지 않아? 어떻게 주워 담으려고. 자판만 두드리다가 바구니에 담지 못하면.”

백아의 비판이 매섭다. 칭찬한다고 칭찬해줬더니 남보다 못하다. 

“이거 왜 이래, 이래봬도 구력이 삼십년이 넘어.”

“결론은? 먼저 내보는게 어때? 어떤 작가는 아, 그래 카뮈는 ‘소송’을 쓸 때 서두와 마무리를 먼저 썼댔잖아. 중간은 채워 넣는 식으로 하고. 머릿속에 있는 건 흩어지거든. 부뚜막에 소금 있으면 뭐해. 국물에 집어넣어서 짜게 만들어야지.”

“있어.”

“있다고? 말해봐.”

“생이야, 생.”

“생이라니?”

“아 생도 몰라. 태어나는 거.”

“그거 참, 참신한 결말이네. 그럼 처음은 죽는 거고.”

“아싸, 됐다. 그럼 된 거지? 아니 글렀다고?”

백아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승길.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고는 쉽게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