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를 살면 정말로 산다는 것은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의약뉴스]
삼.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라는 말은 저주다. 원수에게 퍼붓는 말이다. 백세가 되고도 외삼촌은 다행히 그런 신세는 면했다. 가는날 까지 정신은 말짱했다. 따라서 자신이 싼 똥을 손에 똥을 묻힐 일은 없었다. 기저귀 갈아주는 일은 요양보호사의 몫이었다.
한 세기를 살면서 누군가를 사랑했고 욕했고 가르쳤다. 이제 생의 마지막 차례가 오고 있다. 당사자는 미루기를 원했으나 가족들은 서둘렀다. 죽음을 맞는 확연한 차이는 처한 상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승길은 외삼촌의 구원병이 아니었. 애초에 그런 목적의 방문이 아니었다. 구원하지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보내기 위해서 였다. 외삼촌은 그토록 원했던 전세를 뒤집을 수 없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원군이기를 바랐으나 패전 투수일뿐이었다.
노인은 감이 빨랐다. 바로 체념했고 화내지 않았다. 그럴 자리가 아니었다. 더는 집으로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걸 아는 승길은 안됐다 싶었다. 집으로 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외삼촌은 흘려듣고 대꾸하지 않을 것에 더는 힘을 쓰지 않았다.
마리아의 전략은 주효했다. 체념은 기대보다 빨랐다. 이제 외삼촌은 이곳이 집이었다. 여기서 생을 마쳐야 한다.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하는 임시 거주지. 갈 집이 없는데 집에 가자는 말은 부조리하다.
논리적으로 살았던 외삼촌이 마지막 생을 부조리하게 살아야서야 되겠는가. 늙었다고 봐주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도 아닐텐데. 우겨댄다고 자식들이 들어줄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해보는 말은 더 이상 필요없다. 할 말이 없어도 집에 가자는 말은 더는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이제 승길은 자신이 외삼촌에게 설교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별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
‘살기보다는 죽는 게 복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별 도리가 없어요. 이런 말도 있잖아요. 가야 할 길을 알고 가는 백세 노인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조금 전에 만졌던 그 얼굴, 마른 나무 같은 그 얼굴에 생기가 돌아올 리 만무해요. 이승에 어울리는 얼굴이 아니거든요. 저 얼굴은 저세상으로 가야해요. 알면서도 왜 그러세요. 이제 명줄을 놓아야 해요. 구차한 거 싫어하잖아요. 그런 사람 저주했잖아요.’
승길은 잔인한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외삼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랐다. 이른바 생각의 외주화. 그 생각 그대로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다. 일어서 섰으나 누구도 앞장 서지 않았다. 그리고 침묵. 그 고요의 바다를 깨고 마리아가 말했다.
“아버지, 하늘나라에 가고 싶어요? 다른 사람은 다 갔는데. 엄마도 큰 오빠도 저 하늘로 갔잖아, 알지? 가서 사랑하는 마누라 만나야지, 먼저 간 아들도 보고. 그래야지?”
마리아는 모질었다. 기어이 그 말을 꺼내고 말았다. 전화에서도 물었다고 승길에게 전했던 그 말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있다. 답을 미리 들었으므로 아직은 때가 아니다, 라는 말을 기대하고 한바탕 웃을 준비를 했으나 예상외의 답변이 외삼촌 입에서 나왔다.
“갈 때가 지났지. 나도 알아. 내가 바보도 아닌에.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슬펐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산자들이 보는 것만큼 애잔한 것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영화도 아닌데.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아이고 내가 죽고 못살아.”
마리아가 웃는지 아닌지 모를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산다는 게 뭐라고. 어떤 시인의 말마따나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도 아닌데.”
뒤이어 마리아의 긴 한숨.
“그러게 말이야, 아름답기는커녕 추하지.”
맞장구치다가도 추한 인물이 다른 누구도 아닌 마리아의 아빠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승길은 무안했다. 그것도 당사자가 누워있는 자리에서. 들리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승길은 머리를 긁적였다. 뒤늦의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지 말라고 낌새를 챈 마리아가 화제를 돌린다.
“오빠, 이광수가 그렇게 나쁜 놈이야 오빠. 친일한 다른 문인들도 많은데. 왜 이광수만 그래. 한 놈만 팬다는 뭐 그런 집단 이지메 심리?”
“아마도 반성했느냐 안 했으냐 그 차이 아닐까. 아, 나도 몰라. 이광수 마음을 어찌 알겠어. 말이 마음이라고는 하지만. 그 보다 더 나쁜 인간도 많은데, 이광수보다 더 지독한 왜놈들이 지금도 판치고 있잖아. 세상은 요지경 속이야.”
“그렇지. 21세기에 왜놈 타령이라니. 그건 소설 쓰는 오빠에게 맡기고.”
“내가 무슨 소설가라고.”
머쓱해진 승길의 손이 또 머리로 향했다. 관심을 끄는데는 연예인 만한 주제도 없었다. 마리아가 또 그걸 해냈다.
“하민수 집안도 만만치 않던데. 요즘 잘 뜨는 애 있잖아. 오빠는 드라마 안 봐서 모르지?”
“알지, 왜 몰라. 드라마는 안 봐도 그 여자 연예인은 알지.”
“그러게 오빠가 모를 수가 있나. 아니 4대째 의사가 뭐가 자랑이라고 자랑질이야.”
마리아가 핏대를 올렸다. 그럴 때는 꼭 외삼촌을 닮았다.
“내가 알아봤다니까.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끝까지 추적해서 재산 몰수해야지. 친일파 재산 환수법 같은 거 있지? 이번엔 팔아 치운 것까지 확인해서 다 받아 냈으면 싶어. 그 돈은 국고로 환수하는 대신 독립유공자 자녀한테 주고. 해방된 지 언제인데 아직도 친일파는 대대손손 잘 살고 독립군은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나와.”
“그만, 외삼촌이 웃고 계셔, 저것 봐. 정말로 그러네.”
'죽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가. 젊은 죽음이 아니고 백세 넘은 노인의 죽음은 그런 것이어야 하는가. 승길은 핏기없는 얼굴에 웃음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이런 자리에서 어울리는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작별 인사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저 웃음이 영정 사진을 볼 때 기억났으면 싶었다. 승길은 잡은 손을 놓았다. 손이 빠져나가는 느낌 대신 나무토막을 놓친 기분이었다.
“그런 나랏일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만 가봐야겠어, 라고 말하려다 승길은 말 대신 출입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 오빠, 고모가 피곤해하네.”
그때 무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디서 맡았더라. 외삼촌에 집중하다 보니 냄새를 잊어 먹었다.
"무슨 냄새지?"
마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승길이 작에 물었다.
"오빠, 저기 저 환자분. 욕창이 생겨 말이 아니야. 아빠는 냄새를 못 맡아 모르지만 다른 환자들이 아우성이냐. 못산다고 냄새 때문에. 거기다 치매가 있어. 가족들은 안 와. 유일하게 알아보는 가족을 보고는 떼를 쓰거든. 가족이 안 오니 요양보호사도 모른 척 하고. 욕창은 심해지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그 말을 듣자 냄새가 더 고약해졌다. 토할 지경이었다. 승길은 김여사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차라리 거실이 나았다, 창문을 열 수 없어도. 승길은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었다. 아니 찌는 듯한 더위라도 밖이 백배 낫다 싶었다. 서둘러 마리아에게 말했다.
“다음에 보자.”
"그래 다음에 봐, 오빠."
승길은 다음에 보자는 말이 부고장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 말고 마리아가 따로 연락할 일은 없을 듯싶었다. 과연 마리아는 그 일로 연락을 했다. 석달쯤 후 외삼촌은 돌아가셨다.
“백세하고 꼭 여덟달 만이네.”
마리아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마리아는 곧 흑흑하는 소리를 냈다. 정신을 수습한 것이다. 잘됐네, 라는 말을 했다가 승길도 곧 정신을 차렸다.
“알았어, 곧 갈게.”
장지는 아산공원묘지였다. 그곳은 외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정해논 곳이었다. 외삼촌이 오래 살면서 외숙모도, 오십도 못 넘기고 간 장남도 거기에 한께 모셔져 있었다.
공원묘지답게 단독묘도 있고 합장묘도 있고 납골묘도 있었는데 외삼촌은 납골묘에 들어갔다. 뚜껑을 열자 제법 큰 거미 하나가 제빨리 구석으로 도망쳤다.
“저놈의 새끼.”
마리아가 한마디했다. 손들이 납골묘 안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거미줄을 제거하고 항아리들을 손질한 다음 외할머니 아래에 외삼촌의 유골이 들어갔다. 그리고 뚜껑을 덮고 거미나 벌레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실리콘을 발랐다.
일정은 끝났다. 승길은 돌아서서 길게 뻗은 능선을 바라봤다. 능선과 눈높이가 맞을 만큼 높은 자리에 있었으나 해는 들지 않는 북향이었다. 외할머니 때문에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승길은 음침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몇 년에 한 번 갈 때마다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리가 없어서 아빠 제자가 마련해 준 거거든.”
마리아는 명당이라는 듯이 말했으나 승길은 아니라고 속으로 반박했다. 오늘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배우고 익힌 외삼촌이 후손에게 복을 불러오는 자리 대신 흉지를 허락했을 리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외삼촌은 한 세기를 살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