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비해 10년은 젊어 보였다
[의약뉴스]
일. 종로구 숭인동의 점집. 전화로 대충 위치를 확인했으나 막상 전철에서 내리니 허둥대는 승길. 네이버 지도를 꺼내 놓고 이리저리 돌다가 겨우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대왕도령의 간판을 확인한 것은 오전 10시가 못 돼서였다. 그 시간을 기억한다. 깃발을 보고 그러니까 원하는 장소를 찾고 나서 핸드폰을 봤기 때문이다. 왜 시계를 봤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안도감과 함께 온 습관일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승길의 요즘 취미라면 취미였다. '오전이 겨우 두 시간 밖에 남지 않았군. 이렇게 또 시간이 가네. 남은 시간은 뭘 하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기우 같은 심정이랄까. 그날 승길이 점집을 찾은 것은 이런 심정과 맞물려 있었다. 뭐 급한 용무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씀. 그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초조함 같은 것이 거기로 자신을 끌고 갔던 것이다. 이대로 하루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이유라면 가장 큰 이유였다. '점집을 찾았던 것이 언제였더라.' 계절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을이었을 것이다?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세월이 많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승길의 기억력은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보통명사 어느 날인 것만은 확실하다. 점집은 여느 점집과 비슷했고 질문과 답변도 그저 그랬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복채를 받고 나서 점집의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한 번 더 말했기 때문이다, 다짐을 받듯이.
“십 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대왕도령의 간판과는 달리 점을 봐준 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점잖은 남자라는 판단이 어긋났을 때 승길은 약간 언짢았고 그래서 점이고 뭐고 그냥 나갈까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보기로 한 거 끝까지 보기로 했다, 찜찜한 기분을 안은 채. 그런데 점이 끝나고 나서 문을 나서려는데 점집의 주인장의 한 마디 말에 승길은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웃음. 들어올 때는 불상이 공간에 비해 너무 커 조금 놀랐으나 지금은 친숙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부처님은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그 옆에서 그녀는 웃고 있었다. 마치 부처님을 따라 하듯이.
대체 어쩌자고 그런 말을. 불안한 현재와 닥쳐올 미래가 궁금한 사람에게. 선무당의 장삿속이라니, 젠장. 승길은 대답 없이 신발을 신었다. 분노가 치솟다 꺼질 무렵 “승길 오라버니 또 오세요", 라는 말이 귓가를 가을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라버니? 이건 또 뭐지?’ 승길은 마지 못해 안녕히 계세요, 하고 돌아섰다. 두 번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다짐과 함께. 하지만 승길의 입은 도 닦는 사람처럼 내내 10년과 오라버니라는 말을 중얼중얼 되풀이하고 있었다. 전철 안에서도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난 도림천의 털 수염풀을 매만지면서도.
남의 말에 별 신경 쓰지 않던 승길도 두 단어 앞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화가 나다니? 제정신인가. 감사에 감사를 더해도 부족할 판에. 이제 하나 생겼네. 풀어야 할 숙제. 불교 용어로 화두.’ 점 보기를 잘했다 싶었다.
점 집을 찾는 자를 증오는 아니더라도 웃긴 사람으로 여겼던 승길은 자신이 어느새 간혹 점도 필요하다는 옹호론자로 바뀐 것을 알았다. 이 정도의 립 서비스는 받아도 충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승길. 하하하. '공치사면 좀 어때. 나는 젊은 사람이다.'
“승길 오라버니. 10년은 젊어 보이신다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환갑 넘은 중늙은이 신세? 아닌가? 정말로 그렇게 보이나. 느닷없이 뇌에서 무언가 번쩍 일어나는 것을 느끼는 승길. 정말로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지 궁금했다. 동안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의문은 더해갔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무릎을 치는 것과 동시에 승길은 일어나 앉았다. 복채 값이 빈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승길은 사진을 기계에 집어넣었다.
“몇 살로 보이는지 말해줘. 이 사람 얼굴이.”
스케치하고 다듬고 마무리하는 작업이 30초도 안되 끝났다.
“1978년 생쯤으로 생각되네요. 이마도 멀쩡하고 웃을 때 생긴 눈꼬리의 엷은 주름은 아직 50세를 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볼이 팽팽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잘 봐, 다시 한번 잘 봐줘. 정말 그렇게 보여?”
“그렇습니다. 임자년 2026년 8월 현재 49살 정도로 보면 사진의 주인공 나이에 적합합니다. 필요하면 관상도 봐 드릴까요. 이목구비, 세부별로 가능합니다.”
“그건 됐고요. 와우, 정말로? 그렇군요. 고마워요. 제대로 알아맞춰서 마이 파트너 탱큐.”
승길은 파트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기계를 파트너라고 한 것은 생의 파트너처럼 필요한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 파트너에게 오늘은 제대로 된 마무리 답변을 했다. 존댓말을 쓰거나 인사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탱큐. 탱큐 써.
승길은 그만큼 흥분하고 있었다. 무당의 말은 '확실히, 뚜렷하고 정확하게' 증명됐다. 그제서야 승길은 자신이 정말로 10년은 젊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런 일은 어떤 과학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돈도 마찬가지다. 무려 강산이 변한다는 그 세월을 거꾸로 돌려세웠다. 아니 정확히는 13년이다. 아부의 말이 아니다. 파트너는 지금까지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적이 없었다,고 느끼는 승길.
'이를 어째.'
승길은 환호성을 질러야 마땅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일에 마가 낄 것을 염려했다. 속으로만 만세 삼창을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그러고 보니 오늘이 광복절 아닌가. 세상 참 묘하다.
그래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 승길은 이런 썅, 이런썅, 이런썅 세 번을 만세 삼창처럼 더 지르고도 온갖 쌍욕을 마구 퍼부었다. 그리고 방안을 돌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우리에 갇힌 미친 사자가 된 것이다.
'좋았어. 13살이 어린 나. 아직 불혹에 머물러 있는 나이. 그렇다면.' 승길은 종로구 숭인동 무당집 그 사장님을 추앙하기로 했다, 일단은, 명함을 찾았다. 불화산 강화길(대종사). 종이 쪼가리에 박힌 이름에 대고 감사 인사를 꾸벅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런 말씀도 큰 스승은 하셨다.
“사주팔자는 저보다 에이아이가 더 정확해요.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의 기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신점은 감히 저를 따로 오지 못하지요. 기계에 영혼이 실릴 수는 없으니까요.”
신점도 확인했고 사주팔자도 봤다, 그렇다면. 젊은 승길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만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하루를 보낼 수 없다. 일은 더 하고 싶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했으면 됐다. 남들은 욕할지 모르지만, 젊은 놈이 집에서 빈둥댄다고.
하지만 남들의 말에 흔들릴 승길이 아니었다. 이순이 지나고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남의 말은 말 그대로 들으나 마나한 남의 말일뿐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승길보다 겨우 한 살이 어렸으나 말끝마다 오빠, 오빠 했다. 생일로 따지면 불과 석 달 차이였다.
“오빠 근데 말이지. 생로병사라고 있잖아. 오빠 사자성어 잘하지? 생로에서 로가 무슨 뜻이야.”
이런저런 안부 말들이 오가기도 전에 마리아가 물었다. 승길은 짐작했다. 괜히 전화하기 뭐해서 일부러 무언가 물어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습공격이라고 해도 생로병사의 로를 모르다니. 로, 로라니? 순간 승길은 답답했다.
복장이 터지겠다. 로라? 로라가 뭐지? 로로 로자로 끝나는 말은? 그래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승길은 생은 태어나는 것이고 사는 죽는 것이고 병은 병이고, 하면서 손가락을 꼽았다. 그러나 잘 나가던 손가락 꼽기는 약지 손가락에서 멈췄다. 로는? 로가 뭐지? 정말 마리아가 몰라서 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어 오빠. 내가 찾아보고 알려줄게. 힘들게 해서 미안해.”
전화를 끊고 나서 승길은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세게, 세 번씩이나. 로가 뭐긴 뭐야 '늙을 로'지. 이 등신. 그는 자책했다. 모처럼 마리아에게 지식 자랑할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외삼촌이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안부도 전하지 못했다.
승길은 바로 외삼촌이 계신 요양원 주소를 물었고 다음 주 시간이 되면 가보겠다고 했다. 자식이 여덟 명이나 되지만 다섯째인 마리아가 도맡다시피한 외삼촌의 주된 간병인이기 때문에 승길은 그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또 그편이 편하기도 했다. 윗사람 대하는 것은 이 나이에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