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백마강을 따라 승길은 달리고 또 달린다
[의약뉴스]
56. 바지 호주머니에 억지로 쑤셔 넣는다. 무게보다는 불룩하게 솟은 것이 걸린다. 팔을 휘두르는데 장애물이다. 별개 다 거슬린다. 빼서 다시 손에 쥔다. 핸드폰을 들고 달리는 러너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손에 쥔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것에 집중한다,마치 핸드폰 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손가락에 힘을 준다. 신경이 손에 쏠리니 왼쪽 무릎의 통증이 사라진다.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잊은 것이다. 그것이나 그것이나 피차 매일반. 승길은 피차 매일반, 매일반 하면서 쭉쭉 발을 뻗는다. 날은 달리기에 최적이다. 무엇보다 덥지 않다. 출발할 때는 최악이군, 했으나 뛸수록 좋다. 땀에 젖는 것보다 비에 젖는 것이 좋다는 걸 처음 느낀다. 부족한 무엇이 몸속에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이것도 러닝 하이의 일종인가. 아무렴 어떤가. 이런 기분으로 힘차게 밀어보자.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를 느낀다. 볼을 타고 내리던 빗물이 벌린 입으로 살짝 들어온다. 맛이 없는 맛이다. 땀과는 다르다. 짠 내가 전혀 없다. 수분 보충은 필요 없다. 이마의 땀이 땀구멍으로 나올 없다. 바람이 신선하다 못해 서늘하다.
한기가 온다 싶으면 속도를 조금 높인다. 그래도 추월하는 러너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들은 대체 어떤 힘으로 아홉 마리 말이 끄는 것처럼 질주하나.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진다. 덩달아 줄어든 속도에 추월자들은 늘어난다.
몸이 으스스하다. 감기 때문에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 빠르게 달릴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그때 갑자기 돌풍이 분다. 낙엽이 회오리 바람속에 모인다. 은행잎이다. 노란 것이 과연 가을 잎의 제왕답다,고 승길은 생각한다.
이걸 밟고 가야 하나. 처음에는 비켜서 달렸다. 미안했다. 하지만 비켜 갈 재간이 없다. 바닥이 온통 은행잎 천지다. 이 좋은 걸 그까짓 냄새 운운하면서 베어버리다니. 그런 자들은 욕도 아깝다. 베어진 은행나무를 승길은 생각한다.
한 자리에서 백년을 자랐는데.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순식간에 베어 버렸다. 화가 난다. 밟히는 은행잎에 신경 쓰다 보니 탄력이 붙는다. 다시 모자를 꺼내 쓴다. 속도를 조금 높인다. 센 바람이 눈으로 들어온다. 눈물이 난다. 감정 때문이 아니라 병적 징후라는 걸 승길은 안다.
'기온이 내려가는 날 바람이 불 때면 언제나 그랬었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빗물과 섞인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울고 싶다. 별명이 울보였다고 말했던가. 성인이 된 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것은 땅꼬마 시절 너무 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승길은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 곧 그런 감정은 더는 올라오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운다니 그건 아니다. 코미디를 연출할 이유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안다. '자뻑 코미디는 사절.'
곧게 뻗은 직선 길이 이어진다. 강물은 흐르고 수면에 부딪치는 물방울이 가볍게 튕긴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승길은 그러거나 말거나 날씨에 무감각하다. 집중, 집중. 달리기에 집중한다.
계속 추월자들이 생긴다. 그들을 따라갈까 하다 이내 포기한다. 이건 내 마라톤이지 그들의 마라톤이 아니다. 내 페이스를 유지하자. 그렇게 다짐하자 다리 힘이 붙는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몸에 생기가 돈다. 앗싸, 이 기세 이어가자.
더는 추월자가 없다. 많이 따라 붙은 모양이다. 어느 순간 앞쪽에 응급상황에 대비한 십자가 풍선이 보이고 4시간 30분 풍선이 흔들린다. 저것만 따라가면 되겠다 싶었다. 페이스 메이커가 새삼 고맙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지금 페이스를 알 수 있다.
조금 떨어진 반대쪽에서는 사이클 대회가 열리는지 똑같이 차려입은 레이스 선수들의 질주가 무섭다. 등을 새우처럼 굽히고 있는데 금방 곡선 주로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진다.
부드럽다. 나도 저렇게 부드럽게 달리고 싶다. 하얀 풍선이 멀어진다. 따라잡아야 한다. 뒤로 처진 몸을 앞으로 당긴다. 여유가 생겼던 마음이 갑자기 두렵게 다가온다.
저걸 놓치면 어쩌나. 잠을 푹 자지 못했다. 자다 깨는 것이 일상이지만 세번이면 과했다. 4시간 이상 통잠을 자지 못하고 쪽잠을 잔 것이 오늘 페이스에 치명적 약점이다. 잠이 보약인데 그러지 못했다. 누굴 탓할 수 없다.
공터가 나타난다. 코스모스가 장관이다. 노랑 코스모스가 일품이다. 그 옆에 포크레인이 멈춰 서 있고 운전자가 빼꼼히 달리는 주자들을 내려다본다. ‘너희만 바쁜 게 아냐, 나도 바쁘거든.’
그가 말을 건네온다. 하지만 그는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마라톤의 시간이다. '삽질할 시간 아니거든.' 하필 그 시간에 거기에 서 있는 것을 탓해야 한다. 일진이 나쁜 자신의 운을 탓해야 한다.
이왕 기다린 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그룹의 후미이니 곧 끝날 것이다. ‘안전할 때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축복을.’ 승길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제 폐가 서서히 살아난다, 는 느낌이 든다.
움츠러들었던 폐가 살아난다. 호흡엔 문제가 없다. 심장도 제 역할을 한다. 펌프질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다. 속도를 내 볼까. 그만둔다. '오버하면 완주하지 못하거든.' 지켜야 한다, 원칙을. 내 나이 60이지 않은가.
이 나이에 풀코스 도전이면 장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러니 기죽지 말자. 러너 중에 몇 명이나 있겠나. 다 2,30대 젊은이들이다. 펄펄날고 있는 그들. 무슨 정신으로 그들과 대결하나. 도전정신, 제정신 혹은 무도정신? 아니다. 나란히 선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하지만 무거운 다리. 들어올릴 힘이 없다. 운동화는 지면과 붙었다. 떼어내는 것이 어렵다. 마치 강력 본드로 붙인 것처럼. 땅과 운동화의 간격이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간격을 이어지지 않고 더 벌어진다. 시야가 흐리다. 잠깐 졸 것 같다.
'이를 어째.' 30킬로 표시 구간을 통과한다. 십자가도 페이스 메이커도 보이지 않는다. 하얀 풍선은 어디로 갔지. 안 보인다. 앞서가는 자들과 걷는 자들과 그 속 어딘가에 섞인 승길.
400킬로 완전군장 행군 중에 고랑창에 자빠진 기분이다. 그랬었지.
"너 졸았지?"
"아닙니다. 발을 헛디뎠을 뿐입니다."
그 대화가 지금 이 순간에 왜 기억이 나지. 모를 일이다. 졸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 아닌가. 잠을 설친 것이 치명적이다. 이제화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는가. 포기할까. 다른 대회 참여할까. 의지력까지 바닥이다.
'니들 먼저가라. 나이 먹은 내가 양보하마.' 승길은 추월자들에게 양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같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혼자서만 갈 수 있는 길이니 누군가는 양보해야 맞다.
승길은 자신의 판단에 씩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과 동시에 멈춘다.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완주후에 하려던 말은 이제 쓸모없게 됐다. 급하게 다리를 주무르고 펴고 앉고 흔들고 골을 때리고 떤다.
잠이 원수다. 그 와중에 꿈까지 꿨다. 똥자루라고 하는 말 들어는 봤을 것이다. 30센티미터가 넘는 긴 똥을 꿈속에서 꿨다. 뒤치닥거리를 하는둥 마는둥 했으니 그 잠이 온전할리 없었다.
승길은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난다. 핑 돈다. 얼른 수습하고 허리를 돌린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더 멈출수는 없다. 달린다. 조금 더 가보자. 코너를 돈다. 파이팅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다. 배에 붙은 표식판을 보고 이름을 불러준다. 이승길 파이팅. 반사적으로 손을 든다.
이승길 오라버니 파이팅. 이건 뭐지? 오라버니라니. 화길이 왔나. 화길인가. 그래 좋다, 파이팅이다. 고맙습니다. 젖먹던 힘을 짜낸다. 끌고 가더라도 돛에 묶어서라도 달려야지 하는 각오를 다진다.
겨우 5시간이다. 하루 24시간이라고 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겨우 그 시간을 참지 못하는가. 지금부터는 나와의 투쟁이다, 위대한 투쟁. 하이 히틀러. 승길은 응원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도 손을 들고 파이팅을 외친다.
이날을 꿈꿔 오지 않았던가. 평생동안 꿔온 꿈이 이제 막 실현 단계에 있다. 막상 그 날이 오니 포기하겠다고. 나약한 인간.나머지 30분이다. 그걸 해야지 못하니? 가자, 가자. 승길은 최면을 건다.
지금은 차가 빌려준 시간. 버스가 전용차로를 양보한 시간. 어서 빠져 나가야 한다. 그들에게 길을 내줘야 한다. 그런데 몸은 몸은 왜 이러는데. 감기약에 들어있는 빨간약을 세알은 먹은 기분이다.
졸리다, 휘청인다. 눈을 크게 뜨려고 안간힘을 쓰는 승길. 빗물로 세수를 한다. 안경이 걸린다. 한손에 안경을 다른 손으로 얼굴을 비빈다. 마지막 고비다. 지금까지 잘해왔다. 이것만 넘기자. 주먹은 쥔다. 승길은 외친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답하는 승길. 나는 승길 여기는 도로. 이제부터는 환각의 힘이다. 고통을 즐기자.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 고통이든 희열이든 무엇이라도 좋으니 즐기자. 끝나고 나서 더 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는 사람은 아니다.
더 달리지 못해서 안달하는 사람 아니다. 결승선은 결승선일 뿐이다. 또다른 시작이라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난 아냐, 아냐 승길은 머리를 돌린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 했다. 겨우 수습하고 다시 달린다.
멀리 마지막 구간이 보인다. 저기가 끝이다. 하지만 거기가 아니다. 더 가야 한다. 인도의 환호 인파가 늘어난다. 다 왔다, 힘내라 힘. 응원 소리가 들린다. 이건 환청이 아니다. 승길은 웃는다. 우는 것 같은 웃음.
그 순간 백제의 미소가 떠오른다. 기대와 달리 엄청나게 감동 받았던 기억. 그 얘기 동자 같은 부처를 보기 위해 승길은 무려 다섯 번이나 서산을 찾았다. 거길 가야지. 이번에는 보원사지 옛터에서 걸어서 개심사까지 가야지.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승길은 지어본다. 입술을 열고 이가 살짝 드러나도록. 약간 감기도록 눈은 가볍게 깜박인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렇게 표정을 짓는다, 아니 지었다고 승길은 생각한다.
38킬로미터 표지판이 보인다. 32킬로 완주 때와 기분이 확연히 다르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다리를 주무르고 파스를 뿌린다. 다독이고 격려한다. 보기좋다. 서로는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이 순간에는.
승길도 멈추고 싶다. 하지만 더 간다. 갈 수 없을 때 가서 멈추어야 한다. 지금 멈추면 영원히 멈출 것 같다. 처음와본 미지의 땅. 40킬로를 지났다. 그런데 몸은. 내 몸은. 이제 얼마 남았지? 계산이 안 된다. 간난아이처럼 어기적 거리며 걷는다.
다 왔다가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절망. 처음 부터 다시,라고 외치고 싶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목표 지점은 점점 줄고 있으나 이 속도라면 제 시간에 도달하기 어렵다. 물건너 갔다. 보도로 올라갈까. 아냐 아직은. 승길은 두 발을 지면에서 동시에 뗀다. 다시 달린다.
더 달리지 않기 위해 달린다고 했던 마라톤에 관한 어느 작가의 에세이를 떠올린다. 승길도 더 달리지 않기 위해 지금 달린다. 양수가 터졌다고 급한 전화를 받았던 기억.
놀란 백아.
"뭐하고 있니? 병원으로 가야지."
"지금 가고 있어요."
서두르는 백아. 월차를 냈다는 영주. 달리는 승길. 얼마 남지 않았다. 완주가 코앞이다. 어쨌든 완주다, 제 시간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종대를 보러 가려면 달려야 한다.
하지만 힘이 없다. 종대를 백번 생각한다고 없던 힘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간절해도 없는 힘은 없는 힘이다. 승길은 기력을 다 짜낸다. 한 발 한 발.
몸이 천근이라면 다리는 만근이다. 만근의 다리를 한 발씩 옮겨 놓는다. 발목에 30킬로짜리 모래주머니를 찬 느낌보다 더하다. 헉헉,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식단도 필요없다. 되레 고기 먹은 것이 체한 듯 더부룩하다. 몸이 무거운 것은 고기 때문이다, 승길은 고기를, 영양학자를 탓한다. 내탓을 하다 지치면 남의 탓을 한다. 누구라도 도마위에 올려야 한다, 무엇이라도.
이제는 도마도 생선도 없다. 정신이 혼미하다. 살짝 휘청인다. 잠깐 쓰러졌나. 아니다,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니다. 정신을 차리자, 승길아. 외쳐보는 승길. 잠깐 놓쳤던 정신줄을 다시 잡는다.
내기를 하고 싶다. 무언가 걸고 싶다. 완주를 놓고. '한다 VS 못한다.' 확률 50%에 승길은 반반씩 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승자는 승길. 하하하. 웃음이 나오지만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사이렌 소리 뒤따라 온다. 남은 거리는 대략 3킬로 정도. 다섯 시간에서 20분 정도 남았다. 들어갈 것이다. 버스를 타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더 가까이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인도로 올라가세요. 곧 차들이 다닙니다."
마이크 소리 점점 커진다. 이젠 귓속이 쨍쨍하다. 승길은 버틴다. 뉴스 전광판이 보인다. 잘못 봤나. 언뜻 비친 화면에 가득찬 탱크. '저건 탱크다. 광화문인가. 서너 시간 전에 내가 저기 있었는데.'
속보가 뜬다. '속보라고?'
하지만 별 느낌이 없다. 느낌이 있는 건 머리를, 정확히는 정수리를 치는 빗방울이다. '그렇지, 머리 가운데가 비었지. 세찬 비가 올 때면 느끼는 것인데.' 그래도 그렇지 이건 심하다.
딱딱 소리까지 난다. 우박이다. 정수리의 통증. 아프다. 우박은 금새 싸락 눈으로 바뀐다. 10월 말에 우박에 눈이라니. 승길은 기상이변을 떠올린다. 이러다 지구 종말?
일어서야 한다. 다시 앞으로 가야 한다. 온 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고개를 든다. 전광판의 속보 아래로 화면이 빠르게 움직인다. 군중들이다. 탱크는 보이지 않고 군중들만 보인다.
탱크는 어디로 갔지? 더 잘 보기 위해 앞으로 고개를 세운다. 그 때 발에 아니 목에 올가미 처럼 무언가 걸린 듯 하다. 숨이 막힌다. 휘청인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차들처럼 앞뒤로 몸이 흔들린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승길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식은 아스팔트 냄새가 올라온다. 일어서고 걷고 다시 달린다. 아니 그대로 멈추어 있다. 어디인지 가늠이 안 된다. 여긴 어디인가.
승길은 누운 채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그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