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의 거친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 요란함을
[의약뉴스]
54. 그래서 걸었다. 젊은 청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젊은이 충고도 필요해. 더구나 지금은 걷는 것조차 겨우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최악이야. 젊은 친구 핑계 대고 걸어 보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같은 말은 듣기엔 좋지만 실제하고는 달라. 걷다 보면 좋아질 수 있어.’
그런 생각으로 승길은 달리기를 멈추고 조금씩 앞으로 걸어 나아갔다. 아기 걸음마 걸음처럼 어색하다. 어그적거리면서도 눈은 주변의 탐색을 놓지 않는다. 아직 여분의 체력이 있다는 증거다.
걸으면 계절의 변화를 달릴 때보다 더 잘 느낀다.
왜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승길은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본다. 달리지 못하는 대신 이런 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작은 것들의 움직임도 살핀다.
다행히 개미떼를 밟지 않고 피한다. 그러다가 풀잎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사마귀를 보았다. 갈색이다. 갈색이든 청색이든 사마귀는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앞발을 들고 하는 공격 자세는 과연 곤충계의 제왕이다.
풀잎은 가벼워 그를 버텨주기가 버겁다. 바람이 불면 땅에 닿을 듯이 크게 휘어진다. ‘놈은 풀까지 괴롭히는구나. 잔인한 놈, 야생의 포식자.’ 그러면서도 경탄을 풀지 못한다.
허리에 맨 지퍼를 열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그러기 위해 숨을 멈춘다. 여러 컷 따다닥 찍는다. 한 장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멈춘 호흡이 제자리로 오는데 숨이 벅차다. 가쁜 시간도 흐른다. 달리기 친구인 나이키 앱도 계속 돌아간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간다는 국방부 시계처럼.
무작정 걸을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길어진다. 더 늦으면 달릴 수 없을 것이다. 시멘트처럼 종아리가 굳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도착지점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이 떠오른다. 넷 타임을 확인하는 것. 아직도 미련은 남아있다.
서둘러 허리를 세우고 앞을 본다. 허리가 섰으니 달릴 수 있겠다. 허비한 1분의 시간. 그 정도는 물 마신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 힘을 주기 위해 하체에 집중한다.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자빠지지는 않고.
몸의 균형은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달려본다. 천천히. 그러면서 햇살을 느낀다. 부드러운 강바람에 실려 오는 감촉이 좋다. 얼굴부터 어깨, 허리를 타고 다리로 내려오는 빛의 온기.
그 기운으로 밀고 간다. 맞바람이지만 세지 않다. 억지로 좋다, 좋다를 외친다. 바람은 내 몸의 처진 기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 ‘가자, 고고씽.’
하지만 속도는 붙지 않는다. 아니 내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그러자 다시 하나의 생각. 이번에는 박봉길 의원. 여당 대표가 떠오른다.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먼저 연락하면 무슨 부탁이나 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같은 오해의 소지도 있다. 정치인의 약속을 믿었던 승길은 허허 웃는다.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는 것을 보면 아직 맛을 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연락못할 것도 없다. 이번 주는 내내 여의도 근처에서 일정이 있다고 핑계를 댈 수 있다. 아무리 바쁜 그도 한 시간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라도 상관없다.
승길은 디데이가 정해진 이상 여당 대표에게도 어떤 언질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아무래도 법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 생길 것이다. 그 법들은 전통성을 인정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디데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것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당연히. 승길은 집에 도착하면 연락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확인해 보는 것이다. 직감이라는 것이 있고 직업적인 감각도 녹슬지 않았다.
박봉길 의원도 현역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승길의 이력을 알고 있으니 이용가치가 완전히 없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보좌관에게 아는체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한 다리 건널 필요가 뭐 있나 싶었다. 박봉길 대표도 그걸 원하지 않을지 모른다. 내 편이라고는 해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변심하는 것이 정치권의 생리가 아닌가. 디데이의 내막을 안다고 해도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고 싶다는 단순한 논리가 승길을 압박했다.
하나의 생각이 다시 디데이로 몰리고 있다. 연락해야지,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거절한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다. 기분만 나쁠 뿐이다. 그보다 더한 굴욕을 얼마나 겪었나.
승길은 은퇴자의 자존심 같은 건 아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순간 박봉길 대표와 만남을 뒤로 미루고 싶은 마음도 일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왜 그런 이중의 마음이 드는지. 만나려고 했다가 아니 만나려고 하고.
온갖 생각에 사로잡힌 승길. 누군가는 생각에 치인다고 하지만 승길은 아니다. 생각이 없다면 그는 지금 한순간도 전진할 수 없다. 생각의 힘으로 승길은 달려나간다.
그것은 지루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달려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가 아니다. 생각할수록 몸은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십 킬로 남았네.' 하프의 반환점을 돌았을 때는 아이구 죽었구나 하는 느낌보다는 십킬로라, 십킬로, 아니 구킬로 남았네.'
이런 식이다. 턴 했으니 앞으로 구간은 점점 더 쉬워진다. 쉬워질 리 없는데 생각은 그렇게 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조금만 더 가자고. 조금만 더는 조금만 더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외친다.
남은 구킬로는 얼마나 긴가? 알고 있는 승길. 막히는 차 안에서 구킬로는 두 시간도 걸릴 수 있는 거리다. 그래도 절반을 돌았다. 갈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아닌 현실, 현실이다, 현실.
현실을 떠올리자 박봉길 대표와 디데이가 동시에 눈앞에 어른 거린다. 박봉길과 디데이. 이제 이 단 두 단어만이 승길의 머릿속을 꽉채운다. 그리고 더 진전되지 않는다. 생각은 거기서 멈춘다. 이럴 때는 죽을 맛이다.
다른 생각거리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분노를 폭발할 만한 것. 이제 생각은 필요없다. 바닥의 힘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분노만이 해답이다. 분노할 일이 뭐가 있을까. 분노, 분노.
입속으로 박자를 맞추는 승길. 아무리해도 나타나지 않는다. 분노는 잠시 기운을 세우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고 승길은 생각한다. '마라톤에서 분노는 치명적이다.' 대상이 없을 때는 이런 정신승리로 해치운다.
그리고는 곧 그 반대의 것. 뭐지? 분노의 반대말. 생각나지 않는다. 분노가 뭔지부터 생각해 보자. 분노, 분노. 그렇지, 승길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딱 소리나게 손을 흔들었다. 경쾌하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분노다. 그렇다면 반대는 기쁨이나 희열, 맞다. 그렇다면 나의 기쁨은? 나의 투쟁. 갑자기 히틀러가 떠오른다. ‘난 놈은 난 놈이다.’ 하이 히틀러. 이번에는 똑소리 대신 손을 번쩍 든다.
기운이 위로 뻗친다, 순간. 나쁜 놈 좋은 놈 이상한 놈, 마구 입밖으로 단어들이 튀어나간다. 영화 제목인가? 사물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
제법 왔다. 여의도로 갈지, 아니면 방향을 우로 틀어 집으로 갈지. 답은 정해졌으나 승길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그 사이 화장실이 보인다. 아차, 그냥 지나질 뻔했다.
몸의 수분을 빼면 그만큼 몸무게가 줄어 좀 낫다. 손 씻은 물로 종아리를 만진다. 여러 번 두드린다. 수초에 걸쳐 급하게 문지른다. 계단을 돌아 내려오는데 무릎이 꺾인다. 휘청인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자세를 곧바로 세운다. 좁아지는 차선 때문에 엉거주춤했던 차가 자리를 잡듯이 승길이 다시 인도로 접어들었다. 희열이야, 희열. 뭐가 있을까.
마리아, 아베 마리아. 마리아는 지금쯤. 승길은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마리아는 깡그리 잊었다. 두고 온 것도 잊었다. 마리아는? 마리아는 어찌 됐을까. 하지만 곧 생각을 거둔다.
마리아는 자기 길을 갔다. 그 길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운 길을 간 마리아를 위해 따로 곡을 할 필요는 없다. 나중 일이다. 한 참 지난 나중 일이다. 일년 후 쯤. 아니 그 보다 더 먼 미래다.
승길은 그게 마리아를 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곧 마리아는 전두엽 속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쉽게 사라진 것은 금강굴 때문이었다. 금강굴의 스님이 발견했고 그래서 온갖 치료법을 동원, 아니 죽는 그날까지 법문을 외우고, 아니 이건 소설치고도 재미 없는 일.
그냥 금강굴에서 끝내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겨울 금강굴이나 가볼까. 마리아 있는 곳 말고. 설악산에서 빠져나왔으나 승길은 다시 마리아로 생각이 옮겨갔다. 생각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순간이동이 가능하다. 양평교를 지났고 축구경기를 하는 아마추어 동호회의 응원 소리도 들었다. 목동교를 통과해 오목교에 도달했다. 러닝 크루들이 떼를 지어 다가온다. 유난히 귀에 하얀 마개가 보인다.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 흥미롭다.
속도가 빠르다. 4분대 초반. 꿈의 기록에 도전하는 중인가. 서브 쓰리. 하하. 여유가 생긴 승길. 그들이 지나고 나자 갑자기 이어폰을 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번.
음악이 힘이 되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은 아니다. 굳이 경험해보지 않아도 아는 것이 있으니까. '일어나 일어나 한 번 해보는 거야', 같은 가사가 힘이 될까. 자빠진 몸을 일으켜 세워줄까.
생각을 한시도 비워둘 수 없다. 난 머릿속을 비울 수 없다. 비우는 건 욕심이지 생각이 아니다. 이어폰. 한 번 해보자.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달릴 때 귓속의 음악은 소음이다.
자연을 즐기자. 자동차의 경적음, 구급자 소리, 전기 자전거의 욍욍거림, 까마귀의 울부짖음이 낫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거친 숨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런 요란함, 순차적으로 들려오는 그런 요란함이 있어야 한다.
비리가 또 다른 비리로 덮이듯이 생각과 소리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소리로 매번 바뀐다. 그 즐거움이란? 이게 바로 희열이다. 나를 추월해 가는 운동화의 저벅거리는 발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이어폰은 그야말로 순간 사라졌다. 이제는 생각이 필요 없어도 된다. 남은 5킬로는 억지로라도 해낼 수 있다. 대신 속도는 금물. 욕심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늦지 않기를 바랄 뿐.
마의 구간에서 죽는다, 승길은 죽는다를 새긴다. 실제로 삼백 미터를 남기고 숨진 사고가 있었다고 승길은 기억해 냈다. '젊은 남자, 아 하늘도 무심하지. 달리는 데 데려가다니.' 하지만 곧 그럴 수도 있다, 마지막 스퍼트가 심장을 터지게 만든다, 과부하다, 승길은 과부하, 과부하를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