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는 진돗개, 돼지는 시츄, 쁨이는 몰티즈
[의약뉴스]
27. 동일한 장소서 근무한 삼대라, 설정은 아니지? 소설이라고 마구 거짓말하기 없기. 진실이 사라지면 죽은 소설이거든. 나를 뭘로 보고.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나를 몰라?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열을 내는 승길. 거짓이 아니라는 걸 거듭 강조한다. 알았어, 그만 뚝. 백아가 아이 달래듯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댄다. 하선은 전쟁을 했네. 누구의 전쟁인지도 모르고. 조국을 위해서라고 나와 있잖아. 알았어, 알았으니 조용. 평을 듣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침묵하는 승길. 삼대라면, 더구나 그들의 마지막 여행이라, 그곳에서. 너무 감상적인가? 흔한 맬로 대본에 어울일까. 마라톤 사망자도 나오고. 백아가 출력한 에이포 용지를 흔든다. 왜 안 죽나 했어. 죽음에 죽음이 덮어지면 생명인가. 그런 깊은 뜻은 없어. 사고사 같은 거지. 그래서 소감은? 승길이 손 마이크를 들이댄다. 어어, 이러지 마. 난 인터뷰라면 질색이야, 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 참 내, 웃겨 웃긴다고. 누구나 다 처음은 처음이지. 일단 하면 유경험자가 되거든. 당신은 늘 웃겨. 뭐가 웃긴대? 그 웃기는 이야기 좀 써보지 그래. 독자들도 웃고 살자, 그리고 나도. 지금은 웃음이 필요한 시대야. 쁨이 간 뒤로 웃을 일이 없어. 쁨이가 난데없이 나왔다. 이처럼 쁨이는 어디 숨어 있다 불쑥불쑥 아무 때나 나온다. 그때마다 백아의 눈가가 촉촉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일 년이 다 된다. 그래도 백아는 쁨이를 잊지 못해 생일 때마다 사들인 쁨이 옷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20년을 살았으니 20벌의 옷. 거기에 크리스마스에 집에 처음 온 날에 이쁜짓 한 날에 무슨 기념일 등등에 사들인 옷까지 더하면 셀 수 없다. 치워야 하는데. 거실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쁨이의 사계절 옷장. 승길은 치워질 때까지 모른 척한다. 백아가 눈가를 수습한다. 그리고 웃음에 대한 소신을 또 강조한다. 지금은 웃음이 필요해. 그런 시대라니까. 화내는 시대는 지났어.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난 웃기고 싶어. 방법을 모를 뿐이지. 나도 몰라, 그건. 나한테 물어보지 마. 됐고. 웃기는 건 다른 작가에게 맡기고.
“구성은 그런대로. 아직 우린 종전이 아닌 정전 중이고. 전방에서 북쪽을 보고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은 영화라면 꼭 필요하지. 소설이라서 안 된다는 말은 아니고. 문장을 좀 더 공들여. 왜 그 있잖아, 소름 돋는 표현들, 그런 게 안 보여.”
“알았어. 그건 다듬으면 되고, 나중에.”
“그놈의 나중에. 나중에가 언제인데? 처음부터 잘 써야지. 대충 써 놓고 손 볼 생각하면 완성은 언제 할래. 이번엔 꼭 한다며? 하기만 하면 대박 터진다며?”
새겨 들겠다는 표정을 짓는 승길.
“돌격 앞으로? 그게 뭔대? 웃기는 건가?”
“ 그런 거 있어. 묻지 말고 다음으로 넘어가.”
“ 알고 가야지, 중요한 거 같은데.”
“어, 그건 지금은 아니지만, 아니 지금도 그래. 러우 전쟁을 보니 참호 속에서 격돌하던데. 말하자면 진흙땅 싸움 같은 거야. 싸움은 잘 안 죽지만 돌격 앞으로는 많이 죽어, 그 차이야. 현대전도 그런데 육이오 때는 어땠겠어? 참혹한 현장이지. 제일 무섭기도 하고. 총에 땅하고 맞아 죽으면 끝나잖아. 하지만 칼에 찔리고 베이면.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공포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
“ 마치 돌격전을 해본 사람처럼 말하네.”
“ 꼭 경험해야만 아는 건 아니거든. 착검이라는 말 들어는 봤지? 오월 광주에서도 있었잖아. 공수부대가 총에 대검을 꽂고 시민들을 찔렀잖아, 임산부까지. 그날의 붉은 피가 금남로를 흥건하게 적셨어.”
“그거와는 다른 거 아냐?”
“그렇지. 그땐 총을 쏠 만큼 여유가 없는 상황은 아니었으니. 그런대도 칼로 찔렀어. 이야기가 옆길로 새네. 오월 이야기는 따로 할 기회가 있을 거니 여기선 생략하고.”
“참혹 속 돌격 앞으로는 그만큼 긴박하다는 거지?”
“단 일 초 차이로 삶과 죽음이 결정되거든. 누가 먼저 찌르고 빼느냐에 따라 달라져. 육박전은 전쟁에서 제일 참혹한 거야.”
“ 정말 무서워, 난 전쟁 싫어, 무조건.”
백아가 인상을 찌푸린다.
“어떤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나쁘다고 하잖아.”
“누군하고 싶어서 하나?”
“그런 사람도 있잖아. 전쟁으로 이득 보는 자들, 전쟁광들.”
그래 맞다. 전쟁광들이 다시 설치고 있다. 미국과 이란 전쟁도 그런 광신자가 벌인 전쟁 아닌가. 러우 전쟁 당시만 해도 설마 전쟁? 했었다. 21세기에 과연 전쟁이? 그런데 이젠 전쟁이 일상이 된 상황이다. 이러다 3차 대전 일어나나? 이야기가 다시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백아는 끝맺지 않고 일어 선다.
“오늘 월요일이지? 영어반 늦겠다.”
영어반이 무슨 전가의 보도가 되는 모양이다. 영어반 하는 순간 모든 게 용서된다. 공부한다는데, 그 나이에 그것도 영어라는데, 봐주자.
서둘러 떠나는 백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의 승길. 그래 쁨이 이야기로 이어가자. 아직 사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니. 승길은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린다.
그때마다 검은 커서 사이로 쁨이가 달려온다, 꼬리를 흔들며. 거의 다 와서는 몸통까지 흔든다. 가을날 누렇게 익은 곡식처럼 묵직하게. 온몸으로 환영하는 쁨이.
이기쁨 줄여서 쁨이는 하얀 솜뭉치 하나로 우리 곁에 왔다. 몰티즈 견종 중에도 작은 축에 속해 손아귀에 들어갈 정도였다. 자식 태어난 듯 모두가 모여 축하했던 기억. 쁨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두 어차례 큰 수술로 위험한 순간이 왔으나 잘 이겨냈다. 그때는 목돈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직 생명 그리고 건강. 과연 쁨이는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엄청난 기쁨을 순간 순간 안겨 줬다.
수술 후 쁨이는 예전보다 더 튼튼해 졌다. 더 빠르기도 했다. 들판을 달렸고 언덕길을 치고 올라갔다. 힘이 넘쳐났다. 한번은 집에 검침원이 온 적이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는 무지막지하게 짖는 쁨이가 열린 문틈 사이로 번개같이 달려 나왔다. 손 쓸 틈이 없었다. 바짓단을 물었다. 발목에 선명한 이빨 자국 두 개와 피 두 줄기. 백배사죄하고 치료비까지 물어줬다.
백아는 말했다.
"짐승한테 물렸다고 그 사람이 한탄하데. 짐승이라니? 우리 쁨이한테."
"우리한테는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는 짐승이 맞지."
노려보는 백아.
"짐승이라니 우리 식구한테."
그만큼 쁨이는 승길의 확실한 식구였다. 아이들이 자라고 쁨이도 나이를 먹었다. 짐승에게도 자연스럽게 생로병사가 찾아왔다. '병들로'의 단계는 힘겨웠다, 사람처럼. 나중에는 눈도 멀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걷는 것도 힘겨워 몸을 질질 끌었다. 사람이 벽에 똥칠 하듯이 짐승은 거실에 똥을 뿌렸다. 먹지도 못했다. 나오는 것도 나중에는 없었다. 마지막 일주일은 영주가 휴가를 내고 돌봤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가 시월 어느 날 승길에게 왔다.
"쁨이가 죽었나 봐."
그리고 흐느낌. 곧이어 백아의 전화.
"영주 혼자 있으니 어서 집에 가봐. 나도 신촌에서 막 차를 탔어."
급하게 검색 돌입. 막 죽은 반려견은 사람처럼 뉘어놓고, 한 며칠은 집에 있어도 괜찮다는 답변. 삼일후 쁨이는 경기도의 개 전용 아니 애완견 화장터로 행했고 거기서 정말 한 줌 만한 재로 돌아왔다, 종이에 싸서.
그 재를 평소 다녔던 좋아했던 곳에 묻어 주었다. 딱지처럼 접힌 종이를 들었을 때 승길은 무게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작은 스푼 하나 정도나 됐을까. 하선의 죽음보다도 백아는 더 슬퍼했다.
그걸 하선이 알면 퍽 서운하겠지만 사실이니 숨길 필요는 없다. 팻로스 증후군이 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자리에서 우연히 쁨이 이야기가 나오면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사람도 동감한다.
그리고 어떤 분의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그 사모님은 석달을 앓아 누었다고 전해줬다. 그렇게 쁨이는 떠났다. 김여사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백아에게는 아니고 승길에게 물었다. 아직도 쁨이 살아 있니? 적어도 스무 번은 물었을 것이다.
죽은 뒤로 김여사는 어떻게 알았는지 일 년이 되는 시점에서도 살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사람도, 짐승도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 백아가 영어반에서 돌아오면 일주년 되는 날 쁨이 옷을 보내주자고 먼저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승길은 그만두기로 했다.
백아에게는 다 계획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 온 하선은 쁨이를 보면 멍멍이, 멍멍이 했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멍멍이 멍멍이 하니 시골에 있던 돼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영리한 돼지였던 시추.
승길의 친척이 서울서 키우지 못하고 고민하자 승길이 시골로 가져왔다. 김여사가 밥만 챙겨 주면 된다.
"어머니 먹다 남은 밥만 주세요."
너무 버거워하고 고사하자 승길은 애원하듯이 매달렸다. 그렇게 떠맡긴 돼지는 시골 생활에 곧 적응했다. 사료 대신 밥을 먹었다. 영리한 돼지. 한 달에 한 번 만나도 알아보고 달려든다. 애교는 쁨이보다 더했다. 기억력도.
백아는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승길은 그렇다고 지금도 믿는다. 방안에 들어오면 안 되는 것으로 안다. 돼지는 쉽게 야생견이 됐다. 눈 뜨면 밖으로 돌았다, 쏘다녔다. 그리고 끼니때 되면 들어왔다.
밥챙겨 주는 게 일이라고 불평하던 김여사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이쁜 짓을 하는 돼지를 반겼다, 처음과는 달리. 백아는 말했다. 돼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라고. 왜 쁨이 아니고? 묻지 않는 승길. 그만한 눈치는 있다.
그 돼지가 어느 날 피부병에 걸렸다. 한 달에 한 번 내려갈 때가 목욕하는 날이고 털 깎는 날인데 그때를 놓친 적이 있다. 그 길로 읍내로 데려갔다. 애견 동물 병원이 없는 곳이었다.
수의사는 돼지를 보고는 소에게 놓는 커다란 주사기를 꺼냈다. 백아가 질겁했다.
"죽지 않아요. 안 죽는다고요."
늙은 수의사는 그 말과 동시에 손가락 굵기의 주사기를 돼지에게 찔렀다. 돼지의 비명. 큰 눈망울에 눈물이 고였다. 받아 들고 농협 마트에 들러 개사료를 사고 개껌도 샀다. 운전하면서 오는 내내 돼지는 축 늘어졌다.
눈앞의 간식을 보고도 왜 먹지를 못하니? 백아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돼지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제 몸 겨누기도 힘든 김여사가 승길이 온다는 말을 듣고 목욕을 시켰다.
밥 먹을 때는 김여사의 친구로 논으로, 밭으로 갈 때는 하선의 멍멍이가 됐다. 한 번은 하선을 따라 산으로 갔다 덩굴에 걸려 죽을 뻔 하기도 했다.
뒤따라 오는 기색이 없자 하선은 다시 산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끙끙대는 멍멍이를 꺼내 왔다.
돼지도 오래 살았다. 내려올 때 2살 정도였는데 17년 정도 살았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20년 정도를 살고 떠났다. 어느 날 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차가 오는 소리만 들어도 누구 차인지 아는 돼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가서 안 들어오네, 멍멍이가."
하선이 말했다.
"짐승들은 자기가 죽을 때 되면 나가서 안 들어와."
김여사가 설명했다. 돼지는 그렇게 떠났다. 승길로 따지면 돼지는 두 번째 애완견 이었다. 첫 번째는 럭키. 승길이 8살쯤 됐을 터. 진돗개 잡종이었다. 어디서 영어를 주워들었던지 잡종은 럭키가 됐고 럭키는 승길의 달리기 친구였다. 말하자면 두 명 뿐인 러닝 크루.
집 앞의 황토배기 언덕까지 질주 또 질주. 허리만큼 큰 키로 승길을 저 멀리 따돌리고 뒤돌아서 승길을 기다렸던 럭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럭키가 사라지고 없었다. 누가 잡아먹으려고 훔쳐 갔다고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김여사가 말했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잊었던 럭키가 돌아왔다. 보름 후쯤 ‘컹 컹 컹’ 짖는 소리와 함께. 하지만 그 럭키는 한 달도 못돼 죽었다. 나무에 매달려서.
그 날 저녁 승길은 보았다. 저녁 식탁의 기름기 있는 국을. 울었다. 눈물이 났다. 눈물을 흘리면서 승길은 수저를 들었다. 첫 번째 애완견 럭키는 그렇게 갔다. 춥고 배고프던 6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