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상한가 청구 업무정지, “사후정산 절차 무시한 복지부 처분 위법”
행정법원, 구입약가 사후관리제도 취지 재확인...“심평원 검증 및 이의신청 기회 보장해야”
[의약뉴스] 약제비 청구 프로그램 오류 등으로 의약품을 약가 상한가로 청구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이유로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에 대해 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렸다.
구입약가 사후관리제도상 정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단순 과다 청구만을 이유로 곧바로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조치는 처분사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은 정신과의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복지부의 10일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판결 효력 발생에 따른 의료기관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항소심 판결 선고 후 30일까지 처분의 집행을 직권으로 정지하도록 명했다.
복지부는 정기 확인 과정에서 A씨가 운영하는 의원이 실제 구입한 약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약제비를 청구한 정황을 확인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복지부는 총 9개월의 조사 대상 기간 동안 약 490만 원의 약제비를 분기가중평균가격보다 높게 청구했다며 부당비율 0.5%를 적용해 10일간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A씨 측은 “약제비 청구 프로그램 업데이트 과정에서 발생한 전산 오류로 약가가 상한가로 자동 입력됐을 뿐 의도적인 부당청구가 아니다”고 맞섰다.
또한 “현행 구입약가 사후관리제도는 과다 청구를 확인했을 때 심사평가원의 검증 시스템을 통해 착오 여부를 점검하고 차액을 정산하는 절차를 예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생략한 채 곧바로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 조치는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요양기관이 분기가중평균가보다 약제비를 높게 청구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국민건강보험법이 정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구입약가 사후관리제도의 본래 취지와 세부 절차를 상세히 짚었다.
구체적으로 “해당 제도는 요양기관이 분기별로 의약품을 청구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급업체의 보고 내역과 비교해 상이한 건을 점검하고 최종 구입약가를 확정하는 구조를 취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구입약가 검증체계를 통해 선정된 요양기관에 점검 및 확인을 요청해야 하고, 요양기관은 검증시스템을 통해 공급신고 맞음, 공급신고 착오, 단가변경, 청구코드 착오 등의 원인을 직접 입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확인 결과, 요양기관의 착오로 과다 청구한 사실을 밝혀내면 확정단가보다 높은 청구단가의 차액을 정산 처리해야 한다”며 “요양기관이 정산심사 결정에 불복할 경우 국민건강보험법 제87조에 따라 이의신청을 제기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 역시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판부는 “심평원과 요양기관 사이의 점검과 확인을 거쳐 해당 의약품의 구입약가를 최종 확정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청구 금액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부당청구를 단정할 수 없다”며 “복지부가 이러한 사후정산 절차라는 전제 조건을 무시한 채 곧바로 업무정지 처분을 강행한 행위는 처분사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조사 대상 기간 중 일부 기간에 대해서만 정산 및 이의신청 절차를 거치고 나머지 기간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판단했다.
그러면서 “요양기관이 분기가중평균가보다 약제비를 높게 청구한 행위 자체가 부당청구에 해당하지 않아 처분사유가 부존재하는 이상, 사전정산 및 이의신청 절차를 실제로 거쳤는지 여부는 해당 행정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