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 미드 나잇 인 파리(2012)- 그때 그 시절
[의약뉴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언제나 흥미롭다. 가령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는 세종 때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집현전 학자들이 모여 한글 창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정인지 최만리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등등. 불꽃 뛰는 학자들의 논쟁과 드디어 완성된 한글 자음과 모음 24글자.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 시대에 살아서 그들과 새로운 문자 만들기에 동참하고 싶은 언어학자도 있을 터.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 공간을 넓혀 조선 땅이 아니고 프랑스라고 생각해보자. 멀리 갈 것도 없고 1920년대쯤. 1차 대전이 끝나고 바야흐로 문화가 활짝 꽃피우던 시기. 미국인들이 동경해 대거 몰려오고 거기에 작가 헤밍웨이도 끼어있다.
마초 가득한 그가 우수 어린 눈빛으로 비에 젖은 고지, 깔린 게 독일군 운운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란. 거기다 그림 천재 피카소의 애인을 낚아채서 밀월여행을 떠나고서 일주일도 못 되 끝장내버리는 남자.
로트렉과 마네 드가 고갱 모딜리아니 여기에 초현실주의자 살바드로 달리가 등장한다. 마크 트웨인, 스콧 피트 제랄드, 거트루트 스타인 등이 장 콕토가 주선한 파티에 참석한다. 깡깡 춤을 추고 와인을 마시며 밤은 짧으니 인생을 즐기자고 재촉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장소를 옮긴다. 막심 카페에서 한 잔 더. 밤새 술과 문학과 미술과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찬양한다. 그야말로 파리는 예술로 불타고 있다. 이런 시대를 동경하는 현대의 사람 길(오웬 윌슨)은 말그대로 파리가 지상 천국이다.
파리가 있는데 다른 곳에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미국에 돌아갈 수 없다. 우주에서 가장 열정적인 곳, 어떤 도시도 비교불가인 곳. 더구나 그는 시나리오 작가에서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
헤밍웨이와 술을 먹는다는 것은 예비 소설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거투르드 스타인으로부터 원고가 마음에 든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하지만 현실은 공화당 부시 지지자 예비 장인과 돈 안 쓰고 좋은 거 구할 수 없다는 큰 손 장모, 예술보다는 쇼핑과 춤에 빠진 약혼녀 이네스(레이첼 맥아담스).
이들과 길은 조합이 안 맞는다. 해서 그는 밤마다 파리의 밤거리로 나선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구형 푸조에서 헤밍웨이가 어서 타라고 손짓한다. 야~타, 졸지에 야타족의 일원이 된 길.
그리고 술집 순례. 문학과 예술과 사랑이 범벅된 파리의 밤은 그렇게 또 깊어 간다. 그럴수록 이네스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이네스는 모르는게 없는 떠벌이 지식인 행세를 하는 대학 친구 폴(마이클 쉰)과 정분을 실토한다.
길은 그녀와 헤어지고 정처 없이 센 강가를 걷는다. 잠시 불꽃 같은 마음을 주고 받다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피카소의 여자 아드리아나(마리옹 코티야르)와도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난 후. 아드리아는 길이 원하는 시대와 맞지 않았다.
시대를 함께 이해하는 여자, 비오는 파리의 밤길이 편한 여자. 그런 여자는 콜 포터의 음악을 틀어주는 재즈 가게 여주인. 길과 여자는 빗속을 우산도 없이 둘이서 걸어간다.
사람은 누구나 동경하는 세계가 있다. 어떤 이는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또 어떤 이는 다른 이유로 더 그 이전을 그리워하고 조선 세종 때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물론 있을 터. 그런가하면 또 누군가는 부대껴도 현재를 사랑한다.
감독: 우디 알렌
출연: 오웬 윌슨, 레이첼 맥아담스, 마리옹 코티야르
평점:
팁: 그 시절로 가고 싶은 일인이다. 지금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었을 듯.
하지만 소매치만 생각하면 무섭다. 그 시대도 소매치는 악명을 떨쳤을 것이다. 길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무런 제지 없이 아무런 털림 없이 야밤에 낯선 차량을 탈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그때의 파리를 생각하면 길이 참 운 좋은 놈, 아니 운 좋은 남자다.
사람은 대개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현재보다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어 미래로의 시간 여행은 사절이다.
한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안내 가이드로 나온 이가 카를라 브루니라고 하니 놀랍다. (가이드와 폴이 논쟁하고 폴과 길이 서로 자신이 맞다고 따지는 장면은 코믹 요소 가득하고 신선하다. )
전직도 아닌 당시 현직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부인이었기 때문. 연기도 잘해 가이드 역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좀 더 비중있는 역이었어도 무난했을 듯.
어쨌든 영화는 1920년대라고 하지만 배경으로 나오는 파리 거리는 100년 후의 지금도 여전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매치기 걱정없는 안전한 프랑스라면, 현재가 불만인 사람이라면 그래서 현재보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투덜대는 사람이라면 비 내리는 파리 밤거리를 거닐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