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 다우트(2009)-끝낼 수 없는 숙제
[의약뉴스]
거짓말을 한다. 나쁜 짓이지만 뚜렷한 명문이 있다. 진실을 위해. 그리고 의구심이 사실로 확인됐다. 그러면 그 거짓말은 용서받을 수 있나. 하지만 무너져 내린다. 거짓말의 당사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수녀이기 때문.
도덕과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평생 구도자의 길을 걸었던 알로이시스 수녀( 메릴 스트립)는 거짓을 실토하고 제임스 수녀( 에이미 아담스)에 기대 흐느낀다.
존 패트릭 샌리 감독의 ‘다우트’는 의구심을 사실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신앙과 양심과 진실에 대한 싸움이다. 싸움의 대상은 하필 신부님이다.
약자에 관대하고 성령을 누구보다도 실천하는 명망가 플린 신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흑인 학생에 관심을 갖는다. 교구 학교 설립 처음으로 흑인 학생을 받아들일 만큼 신세대적 사고를 갖고 있다.
여기에 교장인 알로이시스 수녀와 충돌이 벌어진다. 수업 중에 흑인 학생을 호출했던 것. 제임스 수녀는 그 사실을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알리고 그 전부터 의구심을 갖고 있는 교장 수녀는 플린 신부를 몰아세운다.
왜 미사주를 주었느냐는 것. 거기에 학생 어머니와 면담을 통해 학생의 성 정체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부모는 애가 원하는 것이고 6개월만 참고 졸업을 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니 플린 신부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
이쯤 되면 영화는 영혼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도덕으로 무장한 교장 수녀와 노련한 플린 신부.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와 보면 교장 신부가 왜 풋내기 제임스 신부에게 눈물을 보였는지 이해가 조금은 된다.
한편 플린 신부는 사직한다. 표면적으로는 교장 수녀의 승. 하지만 교구는 그를 휴직시키거나 한직으로 쫓기 보다는 되레 영전시킨다. 플린 신부의 부정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식의 가톨릭 모순에 교장 신부는 절망한다.
제임스 신부는 옳은 것이 항상 옳다는 신념의 변화를 감지한다. 놀란 눈동자에서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있다는. 하나님의 신앙에도 균열이 간다. 제임스 수녀도 이제 더는 순진한 수녀가 아니다.
노련한 교장 수녀처럼 변화로 가는 첫발을 뗐다. 제임스 수녀는 앞으로 학생들을 대할 때 좀 더 사려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수천 년부터 있어 왔던 가톨릭의 모순. 그리고 수천 년 후에도 여전히 벌어질 모순에 대해 제임스 수녀는 교장 수녀 이상의 고뇌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임스 수녀에게 던져진 숙명이다. 플린 신부를 뺨치고도 남을 노련하고 세련되고 음흉한 신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1964년 미 케네디 대통령 암살 당시가 배경이다.
당시에 엄청난 수의 가톨릭 사제들이 어린 아동들을 성추행했다는 보도로 미국 전역이 끓기 시작했다. 참고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이 주제를 다뤘다. ( 이 코너에서도 소개한 바 있다.)
감독: 존 패트릭 샌리
출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평점:
팁: 외관으로 압도한다. 화려함의 끝판왕이다. 좌우 대칭이 완벽하다. 조각은 하나하나가 국보급이다. 일단 유명 성당들은 수 십 미터 밖에서부터 신자들을 아니 사람들을 제압한다.
기가 죽고 오금이 저린다. 이런 상태로 안으로 들어간다. 곧이어 또 다른 규모에 압도당한다. 목을 구 십도로 꺾어야만 볼 수 있는 높이를 알 수 없는 천장과 그 천장 주위를 둘러싼 신비한 그림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어둠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찬란한 빛.
그 어떤 전제 군주도 그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세인들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의 압박을 뚫고 잠시 평정이 찾아오면 이런 의문이 든다. 이런 공간에서 신부와 수녀님들이 그런 일을 했구나.
까마득한 옛날부터 해왔고 현재도 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어떤 행동들. 고해소 안의 음습함, 음흉함. 그리고 그 와중에 참된 신앙이 부닥친다. 내면은 붕괴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고 거짓이 승리한다.
추문의 확산을 막으려는 자들과 이에 맞선 참 신앙과의 처절한 싸움. 그리고 상처뿐인 승리. 하지만 관객들은 제임스 수녀를 통해 어둠을 이겨내는 빛과 바람을 본다. 제임스 수녀 없이 교장 수녀와 플린 신부의 대결만 있었다면 영화는 싱거웠을 것이다.
제임스 수녀는 앞으로 가톨릭이, 교회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밝혀줄 것이기에.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질 것이기에.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을 양손에 든 제임스 수녀 선생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2편 안 나오나.)
이제 남은 건 제임스 수녀가 플린 신부를 용서할 수 있을까로 모아진다.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둘까, 아니면 끝까지 단죄의 회초리를 때릴까. 용서는 할 수 있지만 잊지는 않을 것.
그리고 가짜 구원자 플린 신부 스스로 참회하게 만들 것. 그리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지게 만들 것. 결코 끝나지 않을 숙제인 교회의 비극을 막는 것, 그것이 제임스 수녀의 사명이고 갈 길이라면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