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파리넬리(1995)- 누구의 목소리인가
[의약뉴스]
뭐든 나누는 형제가 있다. 피를 나눴다고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파리넬리’를 보면 아니다, 라고 부정하기 어렵다.
형제는 그야말로 모든 걸 나눈다. 혈서로 맹세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됐다. 동생 파리넬리(스테파로 디오니시)와 형 리카르도(엔리코 로 베르소)는 부모가 죽고 나서 그야말로 단짝이 됐다.
곡을 쓰는 리카르도와 노래하는 파리넬리는 어느 순간 나폴리의 유명인사로 활약이 대단하다. 둘이 하모니를 이루면 제아무리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라도 당해내기 어렵다.
버스킹으로 달아오를 광장은 열기로 가득 차고 청중 가운데 한 여인은 기꺼이 파리넬리의 여자가 된다. 천막 안에서 펼쳐지는 뜨거움. 하지만 파리넬리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릴레이 주자처럼 형에게 바톤 터치를 하는데.
하여튼 형제의 주가는 날로 우상향하고 이제는 베니치아, 볼로냐, 빈, 드레스덴을 넘어 급기야 영국까지 퍼져 나간다. 유럽 전체가 형제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그 시기 헨델은 바로크 음악의 거장답게 마에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형제의 등장으로 어려움에 처한다. 그의 극장 손님마저 형제에게 뺏기고 청중들은 온통 파리넬리만 외친다.
그 정도로 파리넬리의 노래 솜씨는 그야말로 천상의 화음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 목소리, 남성의 굵은 바리톤도 여성의 낮은 소프라노도 아닌 그 어중간한 지점의 제3의 목소리는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런 목소리는 과연 타고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고 어린 시절의 그 목소리를 성인이 되어서도 간직하게 된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말을 타다 넘어졌을까. 아니면 강제로 거세됐을까. 강제로 그렇게 됐다면 강제한 사람은 형일까. 한편 무엇이든 나누는 형제의 우정은 끝까지 이어졌을까. 합의는 지켜지고 배신은 없었을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국가: 이탈리아, 벨기에
감독: 제라르 코르비오
출연: 스테파노 디오니시, 엔리코 로 베르소
평점:
팁: 거세된 남자는 자식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헨델의 악보를 훔칠 만큼 파리넬리를 사랑했던 여자는 임신을 했다. 무엇이든 나누는 형의 아이일 것이다. 동생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거세된 천재 이야기는 ‘사기’를 쓴 사마천의 이야기처럼 호기심과 애잔함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관객은 그가 부르는 노래 하나만으로 이미 만족을 하고 있다. 깃털 달린 화려한 투구를 쓰고 진한 화장을 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천사라도 흉내 내기 어려운 목소리에 홀린 것이다.
헨델의 울게 하소소( 사라방드를 듣는 느낌, 사실 두 곡은 쌍둥이 곡이다. 이전 곡을 헨델이 재활용 했는데 당시는 같은 곡을 다른 작품에 재활용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와 어우러진 하모니는 파리넬리가 아니면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장쾌함을 선사한다.
러닝 타임이 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눈과 귀가 감탄을 멈출 새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