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AI 처방전 들고 오는 시대 “AI, 의사의 강력한 우군 돼야”

경상북도의사회 정다은 의무이사..."인간의 직관과 AI 결합한 켄타우로스형 의사 필요"

2026-02-23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의약뉴스] “제가 챗GPT에 물어봤는데 이런 약이 필요하다던데요? 왜 이 검사는 안 해주시나요?”

진료실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환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스스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법을 검색해 의사에게 되묻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너지면서 의료진은 환자를 진단하는 동시에 그들이 가져온 AI 정보의 진위까지 검증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러한 의료 환경의 격변 속에서, AI를 위협이 아닌 진료 효율을 높이는 ‘강력한 보조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이목을 끌고 있다.

경상북도의사회 정다은 의무이사(경산중앙병원 내과 주임과장)는 21일 ‘경상북도의사회 창립 8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미래 진료실의 동반자, 생성형 AI’를 주제로 실제 임상 현장에서 AI 활용법과 미래 의료인의 자세를 제시했다.

정 이사는 “최근 의료 환경은 고령화, 만성질환 급증, 짧은 진료 시간 등으로 인해 의료진에게 매 순간 고도의 판단력을 요구한다”며 “여기에 환자들의 의료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의료진의 인지적 부담이 크게 가중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 이유로 “생성형 AI는 의사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정보 검색과 정리 과정을 효율적으로 지원해 의사가 ‘임상적 판단’과 ‘환자와의 소통’이라는 본질적 업무에 집중하도록 돕는 강력한 우군”이라고 강조했다.

▲ 정다은 의무이사.

 

◆진료실 속 AI, 1초 만에 KCD 코드 찾고 약물 상호작용 걸러내
정 이사는 본인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챗GPT와 제미나이(Gemini) 등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그는 “이미 생성형 AI는 진료실 내 다양한 영역에서 그 실용성을 증명하고 있다”며 “KCD-ICD 코드 검색, 약물의 간독성ㆍ신독성 확인, 임신부 및 수유부의 약제 사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등 처방 및 약물 검토에 활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실례로 “내과 분과 전문의로서 놓치기 쉬운 타 과 약물의 부작용을 AI가 짚어준 덕분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며 “과거에는 두꺼운 약전을 뒤적여야 했던 간독성ㆍ신독성 약물 확인도 이제는 AI를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복잡한 계산 및 기준 역시 확인할 수 있는데, 환자의 신기능에 따른 정밀한 용량 조절은 물론, 약물 간 상호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며 “피부 병변이나 내시경 소견, 영상검사 결과의 초안 정리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대한 이의신청서나 법원 제출용 문서의 기초 구성 등 문서 작업의 효율화에도 AI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 설득의 무기 된 AI “혈압약 왜 먹어야 하냐고요? 챗GPT에 물어볼까요”
환자와의 소통 과정에서도 AI가 유용한 도구가 된다는 전언이다.

정 이사는 “혈압약을 꼭 먹어야 하느냐고 묻는 환자에게 과거에는 장기 보호의 중요성을 길게 설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환자 앞에서 챗GPT에 질문을 입력해 보여준다”며 “AI가 ‘즉시 약물치료 시작 또는 증량에 필요한 단계’라고 명확하게 답변하면 대다수 환자가 수긍하고 처방에 따른다”고 전했다.

즉, AI의 객관적인 답변이 환자 설득에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정 이사는 "심혈관 질환 예방을 위한 ASCVD(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 위험도 예측에서도 AI가 환자의 위험도를 신속하게 분류하고 치료 방향을 제안함으로써,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는 훌륭한 설명 도구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의학 지식과 AI의 시너지 “할루시네이션 주의해야”
방대한 연구 결과와 통계적 근거에 기반한 근거 중심 의학(EBM)의 특성상, 데이터 처리 능력이 뛰어난 생성형 AI가 의학 영역에서 탁월한 성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빠르고 방대하게 근거를 취합하기도 한다.

하지만 AI의 한계점도 분명하다는 것이 정 이사의 지적이다. 가장 큰 문제로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꼽았다.

정 이사는 “AI가 제시하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일 뿐, 그 자체가 진단이나 치료의 절대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AI가 내놓은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고 의학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의사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범위를 지정하고, 전문가 페르소나를 부여하며, 단계적 사고를 유도하는 등 정교한 ‘프롬프트(명령어)’ 입력 기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정 이사는 ‘트렌드 코리아 2026’가 제시한 키워드 중 하나인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 AI를 다루는 인간)’와 ‘켄타우로스(인간과 AI의 결합)’를 언급하며 “미래의 의료는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의사와 사용하지 않는 의사로 나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핵심은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디까지 신뢰할 것인지 결정하는 '비판적 사고 능력'에 있다”고 역설했다.

인간 고유의 임상적 직관과 공감 능력, 그리고 AI의 압도적인 정보 처리 능력이 조화를 이룰 때 의료의 질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생성형 AI는 기술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기술을 통제하고 활용해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는 켄타우로스형 의사에게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며 “의료진이 AI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법을 익혀 다가오는 의료 환경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