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소송(1925)- 인간이라는 사실이 죄
[의약뉴스]
사건은 어느 날 일어난다고 언젠가 말한적이 있다. 그 어느 날이 하필 서른 번째 생일이라고 하면 고약할 수밖에 없다. 요제프 K가 바로 그런 상황에 몰렸다.
누군가 그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잠옷 차림으로 느닷없이 체포될 리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는 당신은 체포됐다는 감시인의 말 한마디에 그렇게 됐다.
무슨 이유인지 물으면 자신들은 거기에 대해 말한 입장이 아니라는 해괴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것. 문제는 그때가 언제이냐는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요제프 K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분명히 알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은행 동료들이 꾸민 심한 장난이 아닌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포에 대해 당국의 행위에는 어떠한 착오가 없다는 감시인의 말에 그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체포됐다고는 하지만 포승줄이나 수갑을 차고 어디로 끌려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은행에 나가는 것까지는 막지 않겠다는 것. 이어서 법원에 출두하라는 간단한 전화가 그에게 걸려왔다. 건물의 위치를 알려주고 심리는 자주 열리며 가급적 빨리 끝내겠다는 것.
자, 상황이 이렇게 됐다. 요제프 K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가능한 한 빨리 진행 해야 한다. 그는 알려준 곳으로 갔다. 그리고 예심판사가 있는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무고한 시민이 체포됐다는 것.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새로운 통보를 기다렸으나 없자 다시 출두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그는 다시 법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날은 심리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K는 거기서 법원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지치고 수치스럽고 두려움에 떨면서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또 어느 날 은행창고에서 자신을 감시하던 프란츠와 빌렘이 옷이 벗겨진 채 태형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다. 태형리는 돈을 줘서라도 그들을 구제하려는 K의 제의를 거절하고 심한 매질을 가한다.
프란츠는 곧 약혼할 여자가 은행 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빌렘은 가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태형리의 매질은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이 매질을 당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발당했기 때문이고 태형리가 매질하는 것은 그가 고발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 앞에서 거만하던 감시인이 이제는 K에게 도움을 구하는 꼴이다. 프란츠는 둘을 구할 수 없다면 자신만이라고 구해 달라고 K에게 사정한다. 하지만 회초리는 계속된다.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은 K는 하지만 자신의 코가 석 자 인지라 여전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송이 멈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세주처럼 숙부가 등장한다. 자신의 학교 친구가 유명한 변호사이니 그에게 사건을 의뢰하라는 것.
늙고 병든 변호사는 K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변호사를 방문한 짧은 시간 동안 유혹하는 그녀의 비서와 놀아나는 K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간은 흘러 겨울이 왔고 소송은 여전히 진전이 없다.
그 사이 제조업자가 등장하고 법원 근처에서 기생하면서 약자의 등을 치는 화가와 어린아이들이 등장한다. 모두 정상적인 인간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더 기괴한 것은 여전히 요제프 K가 무슨 이유로 기소됐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은행에 찾아오는 고객도 만나야 하고 그와 라이벌 관계인 부행장과의 관계도 정리해야 한다. 거기에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 전부, 즉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 적어야 하는 청원서도 써야 한다.
무죄판결을 받거나 사건을 영원히 잡아두는 판결 지연을 위해서도 K는 움직여야 한다. 그러는 사이 K는 심신이 피폐 상태에 이른다. 피고인의 입술 상태를 보고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상인의 미신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소변호사아닌 대변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귀동냥한다.
그러는 와중에 이탈리아에서 온 은행 고객을 상대로 대성당을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성당의 신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죄가 되느냐고. 이 땅에서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인간이라고. 신부의 대답은 어떤가. 죄 있는 사람은 늘 그런 식의 말을 한다고 맞받는다.
성당까지 나왔으니 이제 결말만 남았다. 독자들은 초조하다. 도대체 K의 죄명이 무언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 년이 됐어도 그는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끝장을 봐야 한다.
서른 한 번째 생일 하루 전 두 명의 신사가 그의 하숙집에 나타났다. 두 명은 그를 한 몸처럼 양 옆구리에 끼고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어디론가 갔는데 한참을 가다 멈춘 곳이 채석장이다. 돌에 기댄채 고개가 젖혀진 그의 얼굴 앞으로 달빛에 반짝이는 칼날이 보인다. 두 사람은 법원에서 보낸 K의 처형자들이었다.
팁: 죽음 앞에서도 요제프 K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자신의 말을 다했다. 킬러들에게 당신들은 어디 극장 소속인가 묻는가 하면 늙은 조연 배우들이라고 면박을 준다.
버려진 채석장의 차가운 밤공기 아래 요제프 K는 여전히 자신이 왜 죽는지 자신의 죄가 어떤 것인지 판사는 어디 있는지 끝내 알지 못한 채 길고 얇은 정육점 칼이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두 번 돌리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기 전에 그는 처형자가 들고 있는 칼을 뺏어 스스로 자기 몸 안에 찔러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관청이 할 일이고 자신이 수고롭게 떠맡을 일이 아니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이런 부조리한 처형이 세상에 있을까.
카프카의 '소송'은 그가 죽고 나서 출판됐다. 친구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온 '소송'은 출간 즉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목록에 올랐다. '실종자', '성' 등과 함께 '고독의 삼부작'이라고 불린다.
카프카는 이 소설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동시에 쓰고 중간 과정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소송'을 썼다고 한다.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서 줄줄 읽힌다. 사람의 심리 묘사가 아주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