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1899)-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되다
[의약뉴스]
모든 시작은 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시작은 끝이 아주 먼 경우가 있다. 구로프와 안나의 관계가 그렇다. 한참을 달려왔으나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막 시작되려고 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남녀의 사랑은 언제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거기에 둘 다 결혼했다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유부남, 유부녀의 사랑이라니.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는 바로 그런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비극이거나 해피앤딩은 아니다.
결론이 없는 그야말로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막 시작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은행 일을 하는 구로프가 얄타(1945년 얄타 회담이 열린 그곳이다.)에 온 것은 이주 전이다.
그곳 바닷가에 안나라는 이름의 새로운 얼굴 이른바 뉴페이스가 나타났다. 키가 작으며 금발에 베레모를 쓰고 언제나 흰색 개 스피치를 데리고 다니는 안나. 구로프의 눈에도 안나가 띄었다.
40줄의 나이로 새치가 나기 시작한 그에게 안나는 그가 지금까지 겪었던 숱한 여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많은 여자 경험이 있는 구로프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남편이나 친구와 함께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심 사귀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안나도 구로프의 손아귀에 걸려들기 위해 그가 앉아 있는 식당의 옆자리에 자리 잡았다. 구로프는 바로 대시하지 않고 그녀의 개에게 관심을 보인다.
개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에게 여자도 관심을 보이고 식당을 나설 때 둘은 자연스럽게 함께 나왔다. 이제 일은 순조롭게 풀린다. 둘은 거의 매일 만난다. 카페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한다.
그리고 저녁이 오면 자연스럽게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요? 라고 말하는 단계에 와 있다. 만남이 잦을수록 관계도 깊어진다. 구로프는 안나의 남편이 얄타로 올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는 눈병을 핑계로 안나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둘은 헤어진다. 아쉬움이 어찌 없겠는가. 사랑이 있든 없든 잠시 동안 불같은 욕정을 공유한 연인들의 이별은 이게 마지막이라는 암시에도 불구하고 다음 약속을 꿈꾸기 마련이다. 안나가 없는 얄타를 구로프도 떠난다.
고향 모스크바로 돌아온 구로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또 하나의 진기한 사건으로 치부하면서 안나를 잊는 듯했으나 한편에서는 그녀를 향한 뜨거움이 다시 일고 있는 것을 느낀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찾기 위해 그는 안나의 고향으로 가 호텔 보이를 통해 그녀의 집을 알아낸다. 하지만 남편이 있는데 대시를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어도 그럴 수 없는 것.
노심초사 하던 그는 게이샤 초연 공연을 안나가 보러 올 것을 짐작하고 극장으로 발길을 향한다. 과연 그의 직감은 맞아떨어졌고 둘은 남편이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불같은 입맞춤을 한다.
어찌 이들을 막을 수 있을까. 안나는 관청에 다니는지 지방의회에 속에 있는지도 모르는 노예 같은 비굴함이 가득한 남편 대신 여자를 다룰 줄 아는 구로프에게 끌린다.
구로프 역시 천박하고 속 좁으며 촌스러운 한마디로 저급한 인종으로 치부하는 아내 대신 안나에게 모든 게 쏠려 있다.( 저급한 인종 사이에서 구로프는 12살 먹은 딸 하나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체호프에 따르면 구로프는 그 저급한 인종이 아니었다면 단 이틀도 살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남자들보다는 여자와 함께 있어야 하는 천상 바람둥이가 구로프이기 때문이다.)
이 둘의 사랑은 어찌 될까. 비극일까, 희극일까. 앞서 모든 시작은 끝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둘은 시작은 있으나 아직 끝은 없다. 이제 겨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을 뿐이다.
팁: 체호프의 여러 어마어마한 작품 가운데서도 대표작으로 꼽는다. 체호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서 둘의 관계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서로 끌리는 감정을 담담히 그려나갈 뿐이다.
자연의 변화처럼 둘이 어떤 사계절의 변화를 겪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아내, 지금의 남편은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갈라놓고 둘을 합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두 남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멀찍이서 지켜본다.
결론이 없으니 독자들은 답답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자신의 부인병 때문에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며 남편을 속이고 구로프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오는 안나를 응원하지도 그렇다고 그런 여자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구로프를 비난할 수도 없다.
다만 그들이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관심을 가질 뿐이다. 남의 눈을 피해야 하고 속여야 하고 서로 다른 도시에 살면서 자주 만날 수 없는 이런 처지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도무지 뚜렷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오래도록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견딜 수 없는 이 굴레를 벗어날까 하고. 하지만 나름대로 기대하는 것은 있다. 좀 더 견디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때는 새롭고 멋진 생활이 시작될 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