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 부러진 화살(2012)- 떠나간 배우를 기억하며

2026-01-12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의약뉴스]

보통 사람들은 법은 공정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왜? 법이니까.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하니까. 실재로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보통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서글프지만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이야기만도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은 평등하기도 하고 불평등하기도 했다. 고무줄과 법이 일맥상통 하다고나 할까.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을 보면 대개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대학 수학과 김경호 교수(안성기)는 입시 문제의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다.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수험생 모두가 피해를 보지 않는 쪽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당연한 원칙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흘러간다.

적당히 타협하기를 바랐던 대학 측은 모두 만점을 주자는 김교수의 제의를 단박에 거절한다. 한 명의 학생도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해고 카드를 꺼내든다. 학교의 명예를 생각하고 동료의 잘못을 덮자는 것.

잘못을 지적한 것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재임용 탈락으로 이어지자 교수는 반항한다. 말로 안 되니 법에 호소한다. 법은 그의 편을 들어줄까.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을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항소 기각.

대법원 판결도 뻔할 뻔자다. 그는 판사를 직접 응징한다. 활을 든다. 그는 구속되고 지루한 재판이 이어진다. 변호사들은 타협을 거부하는 김교수에게 질리고 김교수 역시 그런 변호사를 해고한다.

감방에서 홀로 법전을 공부하면서 법 기술자들과 맞서는 김교수의 눈빛이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애처롭다. 법은 시종일관 테러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세우고 법치주의를 앞세운다. 도전에 대한 엄중한 응징이 본격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퍼진다.

하지만 김교수는 활을 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겁만 주려고 했다는 것. 하지만 판사는 자신이 화살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몸에 상처도 있고 옷에도 혈흔이 묻어 있다. 누가봐도 김교수에게 불리하다.

▲ 최근 사망한 안성기 배우(사진 우)는 이 영화에서 김교수 역으로 법의 정의와 잘못된 재판에 대해 신들린 연기를 펼쳤다.

이때 박준( 박원상) 변호사가 김교수의 원군으로 등장한다. 둘은 호흡을 맞춰 가면서 법의 진실에 한 발짝 다가간다.

재판장은 과연 공정한 재판을 할까. 단지 위협만 했을 뿐 활을 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까. 활에 맞은 혈흔이 피해자 혈흔과 맞는지 대조해 달라는 변호인의 증거는 채택됐을까. 증거로 제출했다는 부러진 화살은 과연 존재할까. 반면 검사측의 증거인멸과 위증 등 허점투성이 증거들은.

한편 김 교수는 독방에서 혼거실로 이동한 후 심각한 심적 갈등을 겪는다. 재판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하는 등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던 강철 같은 그도 잇따른 폭행과 성적 수치심으로 허물어진다.

이 사건은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정지영 감독이 영화적 상상력을 구성해 만들었다. 피고와 원고의 생생한 법정 다툼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이런 흥미보다는 과연 법은 공정한가 하는 메시지에 관객을 더 매료됐다.

영화의 주인공 김교수 역의 안성기 배우가 최근 사망했다.

그를 추억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그의 대표작인 ‘부러진 화살’을 다시 보았다. 줄거리나 메시지보다는 안성기 배우 자체의 움직임을 포착해 보려고 했다. 그가 화를 내고 그가 웃고 그가 침묵할 때 그 표정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렸다. 대배우는 떠났지만 영화는 남아 있다.

국가: 한국

감독: 정지영

출연: 안성기, 박준

평점:

팁: 법은 결코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힘 있는 곳으로 언제나 기울어져 있는 것. 적어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이건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는 항변에 움찔하는 재판장. 그의 일그러진 표정은 아니라고 부정하기보다는 그렇다고 인정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은 아닐까. 재판장은 법조문보다는 미리 결론을 내리고 재판을 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불변의 법칙은 재판은 오직 재판장이 한다는 그 명확한 진실뿐. 그런 사실을 아는 언론도 법의학도 사법부의 기세와 돈 앞에 무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런 영화를 통해 법은 좀 더 만인에게 평등한 쪽으로 옮겨 가기 때문이다. 안성기의 명연기로 영화는 더 빛났다. 한국 영화는 안성기라는 배우가 있어 행복했다. 그가 있어 한국 영화는 풍성했고 아름다웠으며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