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 사계절의 사나이(1966)- 신념은 도끼날도 못 꺾어
[의약뉴스]
신념 가득 찬 사람을 만나면 죽음 앞에서도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재물 앞에서도 여전히 굳은 믿음이 변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는 갈대가 인간이니까.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영화 ‘사계절의 사나이’를 보면서 느낀 감정 역시 그렇다. 그깟 신념 개나 주고 목숨 부지하고 남은 생은 ‘유토피아’ 같은 걸작 몇 권 더 썼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폴 스코필드)는 그러지 않았다. 절대 군주 헨리 8세(로버트 쇼)를 위한 서명란에 그는 끝내 직인을 찍지 않았다. 런던탑에 갇힌 그는 사계절 변화를 감내하면서 마침내 그의 상징인 도끼의 날에 목이 날아갔다.
그까짓 서명이 뭐라고. 하지만 종교에 관한 것이라면 그까짓이 아닐 터. 모어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웃고 개신교에 적대감을 품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그런 모어라면 충분히 그럴수 있으리라.
하지만 유토피아 같은 그야말로 천국의 세계를 꿈꿨던 그가 굳이 친구라고 다정하게 달려드는 절대 군주의 뜻을 거슬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재능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에 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하느님의 착한 종으로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또 이런 말도 남겼다고 한다. 수염은 반역을 하지 않았으니 도끼날을 맞을 이유가 없다고.)
잘 나가던 대법관이었던 모어는 왕이 요구한 서명란에 끝내 사인을 하지 않았다. 종교적 신념은 죽음을 초월한다. (무섭다.) 왕은 아들을 낳지 못한 캐서린과 이혼하고자 했다. 그리고 앤블린과 결혼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법이나 로마 교황 등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교황이 성서보다 위일 수는 없다는 것. 헨리 8세는 교황을 로마의 주교 정도로 여기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했다.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려는 황제의 태도에 모어는 불안을 느꼈고 서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소극적으로 저항했다. 앤블린의 대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모어와 적대 관계에 있던 크롬웰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모어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웠다.
국가: 영국
감독: 프레드 진네만
출연: 폴 스코필드, 로버트 쇼
평점:
팁: 로버트 볼트의 희곡 ‘A Man for All Season’(1960)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무대극을 영화화한 감독의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분에서 수상했다.
노 젓는 뱃사공을 통해 서신을 주고받을 때 잔잔히 흐르는 강물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평화는 이런 데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육지에 발을 디디면 음습한 거래와 검은 야욕과 교회의 타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선과 악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한편 모어는 처음에는 사지가 찢겨 죽는 거열형을 받았으나 왕의 선처로 참수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도끼에 잘린 그의 머리는 한 달간 반역자의 문(Traitors' Gate)에 걸려 있다 템즈 강으로 떨어질 운명이었으나 딸 마가렛이 수거해 죽을 때까지 보관했다고 한다.
모어의 반대편에서 그를 모략했던 크롬웰은 모어가 죽은 5년 후 대역죄로 그 역시 목이 잘렸고 헨리 8세 역시 매독으로 사망했다.
모어의 말대로 한 번 죽는 죽음이었으나 어떤 누구는 신념에 따라 죽었고 또 다른 누구는 자신의 편안함을 위하다 죽었다. 모어가 ‘우신예찬’의 저자 에라스뮈스와 교류하면서 활약했던 1530년대의 이야기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