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물돌이동(1977)- 심각시와 허도령
[의약뉴스]
오래된 마을은 대개 전설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물돌이동에도 전해 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물이 돌아 흐르는 이 마을에 경북 의성 월례 마음 심각시가 시집온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 하지만 가난했을 터. 두둑한 쌀값을 받고 양반댁에 팔려 왔다. 마을은 축제로 들떠야 마땅할 터. 하지만 축제의 자리는 무당의 굿판이 대신한다. 무슨 곡절 있기에.
사연은 이렇다. 연지곤지 찍고 예쁜 모습의 각시를 맞이할 신랑은 젊고 팔팔한 남자가 아니다. 신랑이 없다. 물에 빠져 죽었다. 신랑 대신 무당이 혼령을 대신해 위패 앞에서 각시를 홀린다.
부채와 방울을 흔들며 구애하는 몸짓과 애무의 자세. 혼령과 결혼해야 할 심각시. 양반에게 후한 돈 받고 무당이 물러나고 심각시는 처량하다 못해 애가 탄다.
심각시는 죽기로 결심한다. 서러운 마음에 달빛따라 강물로 뛰어든다. 그런 심각시를 구한 도령. '헛소문이 사람 죽인다. 허깨비가 사람 죽인다. 성한 사람도 미치게 한다.'
도령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때 도령의 나이는 십 팔세. 성은 허씨. 그 무렵 마을을 지키는 서낭이 불탄다. 여인은 남자를 잃고 아이는 병들고 마을엔 괴질이 퍼진다. 심각시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허도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 마을은 이내 흉흉해진다. 사람 살 곳이 아닌 이곳을 떠나려는 자들로 넘쳐나나 어떤 마을에서도 이 마을 주민을 받아 주지 않는다. 물돌이동은 폐쇄됐다.
산주는 결단을 내린다. 탈을 만들어야 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허나 아무나 탈을 만들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명이 대상에 오르나 결국 허도령이 낙점됐다. 영험하고 정결하다는 이유로.
나무 조각에 불과한 것에 새 생명을 넣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백일 간 장막 속에서 탈을 만들어야 한다. 심각시는 반대한다.
'도령은 죄가 있다. 죄 많은 날 건드렸다. 내 몸에 손댔다. 깨끗하지 못하다. 탈 만들 자격이 없다'. 심각시는 이런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속내는 탈을 만들면 죽어야 하는 운명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허도령은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는다. 서낭님의 뜻이라면, 내 죄가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받들어야 한다. 그 무렵 심각시와 같은 마을에 사는 별채가 등장한다. 그는 양가 집에서 혼례하기로 약조했으니 심각시를 데려가겠다고 떼를 쓴다.
심각시가 기도하는 미륵석상에도 찾아온다. 처녀 과부로 심각시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별째는 양반의 칼에 찔려 죽는다.
시간은 흘러 약속한 백일이 됐다. 양반탈 중탈 백정탈 등 숱한 탈을 만들고 마침내 이매탈을 끝으로 허도령은 탈 제작을 마친다. 그리고 산주의 칼에 찔린다.
살려고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테두리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래서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을 수 있었던 허도령은 그러지 않았다.
심각시의 품에 안겨 죽는 허도령. 왜 그랬을까. 허도령은 서낭님의 깊은 뜻을 알았을까. 자신의 죽음으로 마을의 평화가 오기를 바랐을까. 그래야 심각시도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을까.
마을은 별신굿을 하기로 한다. 허도령의 노고를 치하하고 죽은 넋을 위로 하기위해서다. 그 한바탕 굿은 신명이 났을 것이다.
그러면 심각시 심은례의 운명은 어찌 됐을까. 자신이 허도령을 죽였다면서 나도 죽여달라고 외쳤던 심각시. 나도 함께 잠들게 하라고 노래 불렀으나 끝내 좌절된 심각시의 그 후 운명은?
그것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허도령 만큼이나 자신을 사랑하는 배필을 만나을까. 아니다. 심각시라면 그 모든 청혼을 거절했을 터. 평생 수절하면서 자신을 살리고 죽은 허도령의 넋과 함께했을 것이다.
허규의 12장으로 이루어진 희곡 ‘물돌이동’은 한국 전통의 현대극화와 함께 한국 연극의 독창적 해석으로 지금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팁: 지은이 허규는 극단 민예 대표와 국립극장장을 역임한 한국 현대극의 산증인이며 한국 연극계를 한단계 끌어올린 선국적 극작가이며 연출가다. 극단 민예극장을 1973년 창립한 이래 전통적 연극유산의 한국적 극장 정립이라는 기치를 내세웠고 신념대로 이끌었다.
허규는 우리 전통의 굿, 탈놀이, 민요, 판소리, 민속무용의 발달에 기여했으며 창극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물돌이동 외에도 ‘허생전(1970)’ ‘다시라기(1979)’ 같은 명품 희곡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