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전공의 수련시스템, ‘모듈형 프리랜서’로 재건해야”
병의협, 의학교육 인프라 붕괴...지속가능 시스템 위한 근본적 개혁 촉구
[의약뉴스] 의대 정원 증원 사태로 수십 년간 묵혀온 대한민국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특히 붕괴된 교육 인프라를 재건하고, 1년 반 이상 현장을 떠나 있던 전공의들의 경력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도제식 수련 모델을 폐기하고, 개인별 맞춤 설계가 가능한 ‘모듈형 프리랜서 수련 제도’라는 혁신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돼 주목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회장 주신구)는 13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전국의사 의료정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병의협 정재현 부회장은 “의학교육 인프라 붕괴, 사직 전공의 경력 단절, 지속 불가능한 수련 시스템이라는 세 가지 핵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책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부회장은 먼저 의학교육 인프라의 붕괴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의대 정원이 1.5배 늘어난 반면, 학생 1인당 기초의학 교수는 0.06명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절반은 MD 출신이 아니다”며 “특히 인프라가 취약한 지방 의대 위주로 정원을 늘려, 교육의 질적 저하와 양극화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1년 반에 걸친 교육 공백으로 학생들의 학습 능력 저하가 우려되고, 일부 지방대에서는 임상 교수가 기초의학 강의까지 맡는 실정”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배출된 의사 인력의 질 저하는 결국 국민 건강에 대한 위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 부회장은 ▲기초의학 교수 인건비 및 연구 환경 지원 확대 ▲임상의의 기초의학 분야 전환 지원 사업 신설 ▲학생 수와 교원 확보 기준을 연동해 미충족 시 정원을 감축하는 제도 도입 ▲삭감된 의대 교육 시설 예산의 조속한 재확보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1년 반 이상 수련을 중단한 사직 전공의 문제에 대해서는 ‘맞춤형 지원’을 해법으로 내놨다.
그는 “군 복무 여부, 연차, 임상 지속 여부 등 개인별 상황이 천차만별이므로 획일적인 대책은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복귀를 전제로 한 전공의들 사이에 불공정이 없도록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군 입대 전공의를 위한 전역 후 TO 확보 ▲수련 초기 이탈자는 학업 연속성을 위한 지원책 마련 ▲중도 이탈자는 학회별 '이수 인정 심사위원회'를 통한 맞춤형 보충 커리큘럼 제공 ▲수련 완료 직전 이탈자는 집중 수련 코스 후 전문의 시험 응시 기회 부여 등을 제안했다.
나아가 정 부회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도제식 수련 모델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단언하며,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듈 기반 프리랜서형 수련 제도를 제시했다.
이는 내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중환자실 수련, 심장초음파 수련 등을 각각의 '모듈'로 표준화하고, 전공의가 여러 병원을 오가며 프리랜서 계약을 통해 필요한 모듈을 이수해 최종 자격을 얻는 방식이다.
그는 “이 제도는 수련 기간을 개인별로 3년에서 7년까지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출산ㆍ육아ㆍ군 복무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며 “수련의 중심을 ‘시간’이 아닌 ‘역량’으로 전환하는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정부, 의료계, 전공의 대표가 참여하는 ‘수련제도 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수련 모듈의 표준화ㆍ인증ㆍ계약 검토ㆍ이력 관리ㆍ최종 평가까지 전담할 독립 기구인 ‘(가칭)전문의수련인증원’ 설립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했다.
정 부회장은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고 캐나다, 미국에서도 도입을 논의하는 세계적 추세“라며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 국제적 흐름에 발맞춘 근본적인 수련 제도 개혁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