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미데이트 이어 파슬로덱스? 공급 중단 불안감 확산
가산 종료 앞두고 재평가 신청...임상 현장 “시간 더 필요”
[의약뉴스] 의료 현장에서 의약품 품절난을 넘어 공급 중단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 정부의 대응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나친 규제와 반복된 약가 인하로 임상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기들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하소연으로, 혁신 신약의 접근성뿐 아니라 기등재 의약품의 안정적인 공급에도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로 출시 후 수십년이 지난 올드 드럭의 공급 중단이 흔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거나 한창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던 의약품의 공급 중단 사태도 빈번하게 발생,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비브라운코리아는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성분명 에토미데이트)의 공급 중단을 예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에토미데이트 성분 제제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 이에 따라 오는 11월부터 공급을 중단한다는 것.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프로포폴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응급의학계에서는 식약처가 무분별한 규제로 의료 현장의 선택지를 줄였다며 반발하고 있다.
에토미데이트 제제는 프로포폴에 비해 혈압 관리에 장점이 있어 급박한 중증 응급 환자에게 유리한 선택지이지만, 공급 중단으로 중요한 무기 하나를 잃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SGLT-2 억제제 시장 선두 주자로, 당뇨병을 넘어 심부전과 만성콩팥병으로 적응증을 넓혀가던 포시가(성분명 다파글리플로진)가 국내 공급을 중단, 의약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비록 국내에서는 특허가 만료됐지만, 여전히 다수의 글로벌 임상 연구를 통해 가치를 확장하고 있는, 잠재력이 큰 약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약가가 다른 국가의 참조 가격이 되는 상황에서 누적된 약가 인하에 더해 제네릭 출시에 따른 추가 인하로 한국 시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다만, 국내 제약사들이 이미 다수의 제네릭 제품을 쏟아낸 가운데 동일 계열의 약제까지 존재해 대체체가 적지 않고, 만성질환 치료제라는 특징으로 예상보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시장 점유율이 컸던 터라 처방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혼란은 불가피했다.
그나마 포시가는 만성질환 치료제로 처방 변경에 대한 환자나 의료진의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당장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항암제는 상황이 다르다.
업계에 따르면, 호르몬 수용체 양성 유방암 치료에 널리 쓰이고 있는 파슬로덱스(성분명 풀베스트란트)가 오는 8월 약가 가산 종료를 앞두고 가산 연장 재평가를 신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파슬로덱스의 공급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포시가의 공급 중단을 결정했던 만큼, 의료 현장에서는 파슬로덱스의 재평가 결과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슬로덱스는 국내외 주요 진료지침에서 여전히 최우선으로 권고하고 있는 표준치료제로, 현재 진행 중인 다수의 신약 임상에서도 백본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2개 제네릭 제품이 출시되어 있지만, 파슬로덱스가 여전히 8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약품인 만큼, 갑작스레 제네릭으로 대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비록 법상으로는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차이가 없다고 하나, 임상 현장에서 이를 신뢰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
이와 관련, 모 대학병원 혈액종약내과 A 교수는 “파슬로덱스는 신약 임상이나 이미 출시된 여러 약들과 병용해서 사용하는 약으로 유방암 치료에서는 꼭 있어야만 하는 약”이라며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제네릭만 있는 것보다 오리지널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는다는 것은 그만큼 의료진이 오리지널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라며 “파슬로덱스의 공급이 중단되면 강제로 제네릭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제네릭 제품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제네릭을 써야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파슬로덱스는 지난해(2024년) 11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우나, 보건의료상 필수적인 의약품’을 의미하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국가필수의약품 역시 공급 중단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파슬로덱스의 가산 재평가에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국가필수의약품이 공급 중단 사례가 108건에 달했다면서, 공급 중단의 주요 원인으로는 판매 부진과 원료 수급 불안, 제조원 변경과 함께 채산성 악화를 꼽았다.
이와 관련, 또 다른 대학병원 종양내과 B 교수는 “현장에서는 신약의 접근성보다 기존에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항암제의 공급 중단이 더 문제”라며 “국내사들도 손해를 감수할 수 없다며 공급을 중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는 환자들이 급여로 받던 약이 갑자기 비급여로 전환돼 당황하기도 한다”면서 “의료진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공급 중단이나 비급여 전환 상황을 설명하고 처방을 변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이에 “신약에 대한 접근성뿐 아니라 현장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치료제의 안정적인 공급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