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ㆍ정 갈등, 구시대적 보건 정치에 대한 저항
안덕선 원장, 의학회 기고...업무개시명령 남아있는 한 세대간 가치관 충돌 해결 어려워
[의약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으로 시작된 의ㆍ정 갈등은 정부의 명령과 통제로 일관된 독재적 보건정치에 대한 전공의와 의대생의 저항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업무개시명령이 남아있는 한,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한 세대간 가치관 충돌은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최근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에 의정사태의 배경이라는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안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전공의에 의한 최초의 집단행동은 지난 1971년에 전국적으로 확산했던 수련의 파동”이라며 “전공의들은 무급으로 시작했고, 초창기에 급여라고 지급된 금액은 너무도 적었다”고 말했다.
이어 “90년대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재벌들의 병원 진입이 시작됐고, 이후 국제적 수준의 병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이 시기에 태어난 의대생이나 전공의가 보는 세상은 70년대 고도성장기에 선배들이 겪었던 우리나라 상황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라고 전했다.
또 “90년대만 해도 의과대학은 무분별한 의대 증설의 후유증을 경험했다”며 “2000년 전문직이 자발적으로 주도한 의과대학 인정평가 도입 이후 2010년경부터 의학교육의 개선이 이뤄지면서 결실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어느 정도 좋아졌다고 해서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공의 교육은 일제 강점기의 의국이 모체가 됐는데, 주임교수 중심의 수직적 위계 속에서 주어진 직무를 어떤 상황에서도 충실히 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며 “당시 의국은 병원의 임상과 별로 세워진 작은 독립적 교육, 경영 단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국이라는 독특한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전공의 교육에 대한 국제적 동향이나 전공의의 조직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며 “문민정부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전공의가 과거 고도성장기의 전공의인 지금의 교수진과 전공의 교육에 대한 시각이나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관을 공유하는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가난한 시절에 전공의 과정을 밟았던 선배들과 경제적으로 중진국에서 시작,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태어난 후배 전공의의 기대치는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며 “근면, 성실, 수월성 추구 등의 보편적 가치는 세월이 변해도 바뀌지 않아야 하지만, 현 세대가 과거에 공유했던 가치를 유지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더해 안 원장은 “의ㆍ정 사태 이후 만나본 의학생들과 전공의들의 보건의료에 대한 시각은 과거 고도성장 세대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며 “현세대는 정보화, 국제화의 영향인지 국제적 시야도 넓어졌고 타국의 발전된 의료제도나 전공의 교육에 대한 식견도 있다. 다만 아직 학생이나 전공의 단체의 조직화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고 느슨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ㆍ정 사태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는 새 세대의 전공의가 갖는 가치관과 일제 강점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보건 행정의 관료적 권위주의와의 충돌”이라며 “의ㆍ정 사태는 정부의 명령과 통제로 일관된 구시대적 독재적 보건 정치에 대항한 신세대 젊은 학생과 전공의의 저항”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과거나 지금이나 정부와 관료의 입장은 의대생과 전공의 의견마저 반체제 활동이나 반사회적 활동으로 규정하려 한다”며 “정권이나 관료에게 순종하지 않는 집단은 자기 이익 이외는 돌보지 않는 사악한 집단으로 간주하고, 국민과 사회의 안정을 위해 철저히 통제받아야 한다는 이념이 지배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과거 70년대의 가치관이 존속하며, 90년대 이후의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대비와 적절한 변화와 적응이 없기 때문”이라며 “의사의 집단행동은 다 불법이고, 업무개시명령이 살아있는 한 신ㆍ구세대 간 인간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세대 간 가치관의 충돌은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