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연 “지불제도 설계, 비용 절감 목표로 삼지 말아야”

인식 조사 결과 발표...의사 10명 중 7명 “행위별수가제 선호”

2025-01-24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의약뉴스] 지불제도를 설계하거나 개편할 때 비용 절감만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환자안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원장 안덕선)은 최근 발간한 '주요국 진료비 지불제도 동향과 시사점: 정부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방향의 문제점'이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진료비 지불제도는 지불대상에 따라 의사, 의료기관, 또는 둘 모두에 대한 보상으로 구분되고, 수가 결정 시점에 따라 전향적 또는 후향적 지불방법, 보상액의 변화 여부에 따라 가변적 또는 고정적 지불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 발표를 통해, 대안적 지불제도(성과보상, 가치기반 보상)로의 전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기본비용(Lump-sum) 묶음 보상과 건강지표 개선에 대한 성과보상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은 기존의 행위별수가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불제도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번 개편안은 의료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나, 가장 크게는 의료비 통제와 지출 증가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것”이라며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보험체계에서 의료공급자가 행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제안한 목표 달성에 따른 성과를 보상(인센티브)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미 총액계약제와 포괄수가제와 같은 지불방식과 유사한 것”이라며 “많은 국가들이 의료비 통제 및 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목적으로 다양한 지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연구팀은 주요 국가들의 지불제도 동향과 효과를 분석, 그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묶음지불제는 특정 건강상태나 치료 에피소드에 따라 여러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비용을 예측해 지불하는 방식”이라며 “미국의 BPCI(Bundled Payments for Care Improvement Advanced)는 CMS가 처음으로 시행한 묶음지불제로, 의료의 질 향상과 의료비 절감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18년 BPCI는 BPCI-Advanced로 대체됐고, 입원과 외래서비스를 묶어 90일 임상 에피소드(입원 첫날, 혹은 외래 진료에서 퇴원 후 또는 외래 시술이 완료된 날부터 90일간 포함)를 기준으로 단일금액으로 지불한다”며 “BPCI 모델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이며, 의료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비용 절감이나 환자 결과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없었다”고 분석했다.

성과보상지불제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해 성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제도로, 국내에서는 만성질환 관리나 외래약제, 혈액투석 등에 활용되고 있다.

연구팀은 “영국의 QOF(Quality and Outcomes Framework)는 일차의료의 질 향상을 목표로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연간 보상과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QOF 도입 후 건강 문제가 있는 개인의 생활습관이 개선되고 혈압이 초기에는 개선됐으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인구기반지불제는 특정 인구집단의 건강관리를 책임지도록 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정해진 금액으로 미리 지급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의 책임의료조직(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ACO)이다.

연구팀은 “미국의 AOC는 진료비 지불체계를 성과(질적ㆍ재정적)와 연동해 의료서비스 과정과 결과를 통제하며 의료체계를 개선하려는 기전을 가진다”며 “ACO의 핵심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료제공자들이 환자 건강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절감된 의료비를 공유하는 것으로, 비용 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병원 기반 ACO의 비용 절감 효과가 미비하고, 이에 따라 다양한 기관 간 연계와 다양한 유형의 ACO를 권장하는 미국 정책 방향의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연구팀은 의협 회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846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84.8%는 진료비 지불 방식이 환자에게 제공하는 치료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65%는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보상, 가치기반 보상 중심의 지불제도 개편 방향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고, 90.5%는 기대감마저도 없었다.

의료 질 향상이나 의료비 절감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은 것.

평가에 따른 가감지급 사업 인지도도 28.3%로 낮은 편이었다. 79.1%는 가감지급 사업 자체가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유는 보상성과 지표 집중으로 인한 환자 치료 왜곡 가능성, 성과지표 선정 및 평가의 적정성 문제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 향후 바람직한 지불제도 모델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앞으로 동네의원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적합한 지불제도 모델로는 행위별수가제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차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는 74.6%, 병원급 이상 근무 의사는 69.3%가 행위별수가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성과보상지불제가 뒤를 이었는데 30% 수준이었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묶음지불제와 포괄수가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연구팀은 “묶음지불제도는 질병의 시작부터 치료까지를 포괄적으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에피소드(episode) 단위 설정이 중요하다”며 “환자의 건강 상태, 중재 방법, 치료과정의 연관성 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으면 환자와 의료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정적 인센티브로 인해 수술 후 합병증 위험이 높은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저위험 환자에 대한 과잉 진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 환자 선택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며 “질환의 중증도와 복합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묶음지불제도는 의료비 상승과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과보상제는 보충적 지불방식으로, 행위별수가제에 추가 비용을 지불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방식이나 효과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며 “성과 보고를 위한 행정부담과 위험환자 기피 가능성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인구기반 지불제도의 대표 사례인 미국의 ACO는 환자 건강관리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이를 공유하는 방식이지만, 병원 기반 ACO의 비용 절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며 “미국의 다양한 시도와 결과를 우리도 주목할 필요는 있으나,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모형 제시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제도 수용성만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연구팀은 “정부가 이번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서 지불제도 개편을 발표했으나 정확하지 못한 원인 분석과 개선방안, 뚜렷하지 않은 정책 방향, 명확하지 않은 재정 투입 계획으로 불신을 초래했다”며 “각 국이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규모와 기술적ㆍ정치적 세부 요소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대로 차용할 수는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정책 입안자들은 지불제도를 설계하거나 개편할 때 단순히 비용 절감을 목표로 삼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환자 안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신중하고 정교한 정책 설계를 위해 의료계와 더 많은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