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파리의 노트르담(1831)-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025-01-10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의약뉴스]

한 인간은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위대한 인간일수록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클로드 부주교는 가까이는 어린 동생 장을 살렸다. 그리고 버려진 카지모도를 키웠다. 혈육인 동생 장이야 그렇다고 쳐도 카지모도는 생판 모르는 남이다. 그것도 정상이 아니다.

곱사등이에 애꾸눈이고 절름발이다. 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하지만 부주교는 신앙과 양심에 따라 업둥이 카지모도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읽고 쓰는 일을 가르켰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인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의 종지기로 취직까지 시켰다. (카지모도는 종을 치다 나중에는 귀까지 멀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미친 듯이 공부하고 연구해 박사학위까지 땄다.

실력에 신앙심까지 갖췄으니 그의 설교를 받는 많은 신자들은 복많은 인간들이다. 타락에서 구제한 인간들 또한 셀 수 없이 많을 터.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그는 이런 성과로 그가 믿는 신에 의해 행복한 말년을 보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것의 반만이라도 쳐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불행했다. 머리털이 희끗해질 무렵 그는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았다.

바로 한 여자다. 광장에서 춤을 추는 이집트 집시 라 에스메랄다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우째 이런 일이. 신부가 여자를 알았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16 섯 여자에게 신부는 모든 걸 바치려고 했다.

▲ 노트르담의 종지기 카지모도는 양아버지 클로드 부주교를 밀어 뜨려 죽인다. 그 심정을 라 에스메랄다는 알까, 모를까.

신앙도 하느님도 동생 장도 양아들 카지모도도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는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라 에스메랄다는 냉정했다. 그러니 그 사랑이 온전할 리 있겠는가.

그의 연적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카지모도였다. (두 번째로 우째 이런 일이.) 젊고 잘 생기고 늠름한 중대장 페뷔스라면 모를까. 얼빠진 녀석 카지모도가 연적이라니.

부주교는 눈에 불이 붙었다. 질투와 시기로 눈이 카지모도처럼 애꾸눈이 됐고 절름발이가 됐으며 마침내 귀도 멀었다. 비극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해서 서서히 절벽으로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두 권짜리 묵직한 책이 이렇게 단번에 정리될 수는 없을 터. 이야깃 거리는 차고 넘치지만 성질 급한 작자는 결론을 미리 말해 버리고 싶어 안달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다. 라 에스메랄다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녀가 춤을 추며 발랄한 생명을 파리에 심어 줬던 바로 그 광장에서.

루이 11세 왕은 처녀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결정했다. 뭐, 심각한 고민조차 없었다. 숱한 생명에 엄지 손가락을 내렸던 그가 이런 하찮은 죽음에 동요될 리 없다. (실제로 그는 네오황체처럼 엄지손가락 대신 말로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사형을 승인했다.)

목이 매달려 대롱거리는 가엾은 처녀. 대성당의 작은 방에서 이 장면을 목격하던 클로드 부주교를 카지모도는 아래로 떠밀었다. 그토록 원했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부주교는 죽었다.

카지모도는 살아서 라 에스메랄라의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한 여자는 두 남자를 이렇게 죽였다. 호메로스, 단테나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4대 시성으로 일컬어지는 빅토르 위고는 이 장면의 소제목을 ‘카지모도의 결혼’이라고 명명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름다운 여인 라 에스메랄다의 최후의 연인으로 위고는 페뷔스도 아니고 부주교도 아니고 방랑시인 그랭구아르도 아닌 바로 카지모도를 선택했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결합이라고 본 것일까. 둘이 사랑해서 이런 결말을 내렸을까. 대답은 노.

카지모도는 그렇다 쳐도 라 에스메랄다는 아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미남 중대장뿐이다. 그러함에도 위고는 군인을 일찌감치 제외했다.

카지모도와 라 에스메랄다는 꼭 껴안은 그런 해골 상태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발견됐고 그는 후세에 이런 모습을 세상에 전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 아닌가.

: 또 하나의 주인공은 로트르담 대성당이다. 몇 년 전 큰 화제 났으나 최근 복원된 바로 그 성당이다. 주인공이 활약하는 배경이고 15세기 프랑스의 무대이기도 하다.

로트르담에 대한 숱한 묘사와 거기서 펼쳐지는 클로드 부주교와 카지모도의 활약상은 그 공간이 갖는 예술적, 건축학적 가치에 더해 끝없는 빛을 발하고 있다.

그곳에 더 가 볼 기회가 더 있다면 성당의 높은 곳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싶다. 자연스레 카지모도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떨어져 죽을 때 클로드 부주교의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올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바로 아래 광장에서 재기발랄하게 춤추는 라 에스메랄다가 있고 그녀가 처형돼 바람에 흔들리는 교수대의 기둥이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 언제나 그녀와 함께 하는 염소도 보일 것이고 순정을 매몰차게 거절한 페뷔스 중대장이 당당한 모습으로 기병대를 지휘하는 장면도 그려질 것이다.

눈물과 회한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처음 만난 날 딸 라 에스메랄라의 죽음을 대하고 그녀도 죽는 비극적 모정은 차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장이 길고 프랑스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는 다소 지치지만 도둑들의 소굴 기적궁의 거지떼들이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노트르담을 습격하고 그것도 모르고 위에서 각종 건축 자재로 공격하는 카지모도를 상상하면 입이 절로 벌어진다. 그런 날이 또 오겠지.

사족: ('노트르담의 꼽추'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인 비하적인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카지모도가 최고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파리의 노트르담'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