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ㆍ의대생 휴학, 2000년ㆍ2014년 법원 판단 학습”
전성훈 변호사...“자율적 판단, 공정거래법 대상 아니다”
[의약뉴스]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반발,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휴학을 선택한 의대생의 행동 배경에는 지난 2000년, 2014년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집단행동 시 자율적 판단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집단지성으로 학습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한별 전성훈 변호사는 최근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의료정책포럼에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란 제하의 기고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의료계의 대표적인 집단행동 사례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투쟁과 2014년 원격의료 투쟁, 2020년 4대 악 투쟁 등으로, 이 가운데 2000년과 2014년 집단행동은 정부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소해 법원의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00년 의약분업과 맞선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 1심과 2심 재판부는 ▲의협은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의사는 구성사업자에 해당하며, ▲의협이 의사들에게 휴업 동참을 강요한 행위는 부당제한행위에 해당하고, 공정경쟁침해성이 있으며, ▲의협의 강요행위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대법원 역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와 관련, 전 변호사는 “의협 등이 수차례 의사들에게 공문과 투쟁지침을 보내는 등 휴업 참여를 독려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휴업 동참 여부에 관한 서명을 회람 형식으로 받았다”며 “당시 산하 위원회가 전국적 규모로 규찰대를 조직, 휴업에 불참하는 의사들을 감시하려고 계획했고 심리적 압박으로 일부 의사들은 마지못해 휴업에 동참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논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협이 휴업 동참을 원하지 않는 의사들에게 이를 강요, 의사들의 사업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의료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침해한 것에 해당하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집단휴업을 선택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2014년 원격의료 등 의료정책 관련 집단행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2000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전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당시 재판부는 집단휴진의 위법성이 성립하려면 경쟁제한성과 부당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며 “경쟁제한성은 집단휴진으로 가격, 수량, 품질, 거래 등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고 부당성은 공동 행위가 전반에 미치는 효율성 등 구체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격진료, 영리병원 정책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해 의료서비스 공급량이 줄었다고 해서 더 높은 진료비를 요구할 수 없고 의료서비스 품질이 나빠지지도 않았다”며 “환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해 불편을 겼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거래 조건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일 뿐 경쟁제한성이 인정되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또 “재판부는 부당성에 대해서도 사회 구성원이 국가 정책 발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며 기본권 행사가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외관을 취하더라도 행사가 정당하다면 부당성 요건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의협이 추진한 집단휴진이 구성원의 사업내용,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도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의협이 휴업을 결의했고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통지했는데, 휴진에 참여하라고 직접적으로 다른 방법을 강요하거나 불이익을 고지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전 변호사는 “2000년 의료계 집단행동 당시부터 법원은 의협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로, 의사를 그 구성사업자로 각 인정하고 공정거래법을 일관되게 적용해 왔다”며 “노동조합에 대하여는 경쟁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진국들에서의 다수적인 의견이자 법리지만, 우리나라는 의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사례가 거의 없고, 법원이 이러한 법리를 수용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0년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판단했고, 2014년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법원이 이렇게 판단을 달리한 이유는 사실관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2000년 집단행동에서는 의협이 강압적 방법들로 의사들에게 휴업 동참을 강요했다는 것이 인정됐기에, 경쟁제한성 및 부당성이 있다고 판단됐다”며 “반면 2014년 집단행동은 의료서비스의 가격 등 거래조건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국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고, 불참 시의 불이익 강제 없이 자율적으로 이뤄졌기에, 경쟁제한성 및 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2000년의 경험을 통해 의료계는 집단지능을 발현, 법원의 입장을 학습했고, 이는 2014년의 집단행동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2024년 의료계 집단행동에서 역시 이러한 학습 결과가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제각기 협의한 후, 자율적 판단으로 현장과 교실을 떠났고, 불참 시에의 불이익을 사전 예고하지도, 사후 행사하지도 않았다”며 “그들이 어떤 세대보다도 자립적으로 사고하는, MZ도 아닌 젠지(Generation Z)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집단휴진 전날인 2024년 6월 1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정거래법 위반 신고서를 제출했다”며 “이에 공정위는 휴진에 동참한 일부 개원의들은 모르겠으나 사업자조차도 아닌 전공의들이나 의대생들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을 검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