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배후진료 판단 기준은 법원이 아니라 의료계의 몫"
대구가톨릭대병원 시정명령 취소소송 패소에 성토 릴레이...응급의학회 이어 의협 비대위도 쓴소리
[의약뉴스] 배후진료가 불가능해 응급환자를 수용 거부했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병원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이에 의료계에선 배후진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대구가톨릭대병원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지난해 3월경 대구에서 10대 여성 A씨가 4층 건물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9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A씨는 좌측 후두부에 부종이 있었으며, 우측 족관절 부위에 통증을 호소했지만 의식이 있었고, 간단한 대화도 가능했다.
문제는 A씨를 수용할 병원이 없었던 것. 119가 문의했지만, 경북대병원 등 2곳은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진료가 어렵다고 회신했다.
다른 병원에도 연락했지만, 배후진료가 불가능하거나 대기 중인 환자가 많아 수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A씨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현장조사 등을 실시, 신경외과 의료진 부재를 이유로 한 수용거부는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대구가톨릭대병원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여기에 더해 응급의료기관으로서 업무 수행이 부정적이라며 시정명령 이행기간 동안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도 취소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구가톨릭대병원은 복지부의 처분이 부당하다면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응급환자 수용거부 자체가 위법하다면서 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응급의료법은 응급의료를 요청한 자에 대해 응급의료를 해야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면서 “응급환자로 추정되거나 응급의료행위를 요청한 자에 대해 응급환자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진료행위 자체가 없었던 경우는 응급의료법이 정한 응급의료 거부 또는 기피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에 대한 기초적인 1차 진료조차 하지 않은 채 만연히 구급대원이 통보한 응급환자 상태만을 기초로 응급환자 여부나 필요한 진료과목을 결정한 다음, 수용을 거부한 행위가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병원 응급실은 시설 및 인력 등에 여력이 있어서 일단 응급환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다”며 “단순히 신경외과 전문의가 부재중이라는 사정만을 들어 처음부터 수용자체를 거절한 것에 대해 의무 소홀히 했다고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1심 판결에서 패소한 대구가톨릭대병원은 항소를 제기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의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이기도 했던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정말 응급실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며 “응급의학과의 입장에서 최종 치료가 불가능한데 어떻게 환자를 받으라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이어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심장만 뛰게하면 되는 건지 묻고 싶다”며 “인공호흡기를 달아놓고 그래도 살려놨으니 소임은 다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 되는 건지, 국민들이 원하는 의료가 이런 건가”라고 질타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정부와 법원이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비대위는 “응급의료체계는 병원 전 단계와 병원 후 단계로 나눠 운영하며, 응급의료법에 따라 119 구급대원은 이송 전 응급의료기관의 환자 수용능력을 확인하고 응급환자의 상태 및 응급처치 내용을 미리 통보해야 한다”면서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없을 때는 지체없이 관련 내용을 통보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복지부는 응급의료시스템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 시스템에 따른 병원을 처벌했다”고 힐난했다.
여기에 더해 “법원의 문제도 심각한데, 지난해 10월 법원은 소장이 꼬인 생후 5일 신생아 응급환자 수술에 과실이 있었다며 한 병원에 10억원 배상판결을 선고했다”며 “당시 법원은 소아외과를 잘 모르는 외과 전문의가 왜 소아환자 수술을 했냐고 판결했는데, 이제는 배후진료과 의사가 없어도 응급실에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꼬집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항소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응급의학회 이경원 공보이사는 “학회 차원에서 병원 측 법률대리인에게 의학적 사실, 대응 논리를 제공하고 항소 재판부에 학회 명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 이후에 나오긴 했지만, 지난 9월 복지부가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마련해 현재는 복지부 지침이 유효하고, 응급진료의 정당한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사건은 지난해 발생했지만, 복지부의 지침이 재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침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 의료 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춰 응급 환자에게 적절한 응급 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진료 거부ㆍ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나아가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의학적 판단이 중요한 배후진료를 법원에서 판단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는 “이번 판결의 여파 자체는 상당히 심각할 것"이라며 "배후진료가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은 의학적으로 이뤄져야하는데, 이를 법원 판결로 받다보니 좋지 않은 선례가 계속 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응급환자에 대한 배후진료가 안 되어 있는데도 응급실에 책임을 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응급치료를 하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법적 책임을 지며, 이때 항상 인용되는 말이 ‘최선의 조치를 다했느냐’인데 이는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배후진료에 대한 의학적 판단 기준은 법원이 아닌 의료계에서 만들어야 한다”며 “배후진료가 가능했는지, 응급환자를 수용하고, 어떤 조치를 해야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는 기준을 의료계에서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