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창문 탈출 추락, 병원 주의의무 위반 '인정'

서울북부지법, 병원 측 책임 일부 인정...“탈출 방지 시설 갖추지 않았다” 지적

2024-11-27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의약뉴스]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추락한 환자에 대해 병원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됐다. 다만, 법원은 탈출을 시도한 환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기에, 병원 측의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사망한 환자 A씨의 가족들이 병원장 B씨, 의사 C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B씨는 가족들에게 약 1억 567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C씨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추락한 환자에 대해 병원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됐다.

A씨는 지난 2019년 4월경부터 B씨가 운영하는 D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경도 정신지체, 양극성 정동장애 등의 증상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이다. A씨는 지난 2020년 4월경,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노래방)을 받던 도중 화장실에 간 뒤,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려다 주차장으로 추락했다.

주차장에 추락한 A씨는 인근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는데, 이후 흉추 11~요추 5번 후방 고정술식 및 후방유합술을, 우측 종골골절에 대한 관헐척 정복술 및 내고정술을 받았다. 현재 A씨는 척추손상에 의한 하지 불완전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A씨의 가족들은 “환자가 추락하지 않도록 병원 화장실 창문에 탈출 방지 시설 등 안전장치를 설치해야할 의무가 있는데도 설치하지 않았다”며 “A씨가 사고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퇴원을 요구하는 행동 등을 보였기에, 탈출시도를 예견했어야 했지만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고 이후, 신속한 응급조치 및 전원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A씨가 세로 30㎝에 불과한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발생한 것으로, 환자가 이 같은 크기의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할 것이라 예견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A씨가 자의로 탈출하려다 발생한 사건으로, 의료진에게 ‘낙상 방지의무’의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고, 화장실이라는 공간 특성상 A씨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감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제했다.

다만 “환자 탈출 시도 등에 대비하기 위해 정신병원으로서 갖춰야할 안전장치 등 설치할 의무와 환자를 주의깊게 관찰해 탈출 시도 등에 따른 사고 발생 등을 사전에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B씨는 병원장이자, 병원 의료진 및 직원들의 사용자로서 이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구체적으로 “사건 발생 한 달 전, A씨의 주치의가 B씨에서 C씨로 변경됐고, 다시 E씨로 바뀌었는데, A씨의 의사경과기록지를 살펴보면 주치의 변경에 따라 진료방식과 A씨의 반응이 다소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관련 방역지침으로 외출이 불가능해지자, A씨는 퇴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표출했고, 다른 병실로 옮겨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등, 다소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고 전했다.

의료진으로서는 A씨의 상태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 충동적인 행동을 방지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D병원은 사고 발생 이후, A씨가 탈출을 시도했던 창문에 가로막을 설치하는 등 추가로 탈출 방지 시설을 갖췄는데, 이를 사전에 설치했더라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 사건 사고는 세면대 등 옆의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 발생한 것으로, 환자 인권을 고려해 관찰하기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가 있다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해당 사고는 A씨가 병원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추락한 것으로 가장 큰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며, 지적장애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창문을 통해 건물 아래로 추락하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감행했다”며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B씨에게 이 사건 사고로 인해 생긴 모든 손해를 배상하는 건 형평의 원칙이 비춰 부당하다고 할 것이므로, 책임 범위를 20%로 제한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