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ㆍ마약류 중독 의료인, 전문가 평가가 우선”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양용준 이사...“관련 해외사례 참고해 평가위원회 구성해야”
[의약뉴스] 정신질환이나 마약류 중독 의료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관련된 해외사례를 참고해, 경증ㆍ중증 여부, 자타해 위험, 인지기능 등 평가할 수 있는 평가위원회를 구성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직무대행 강대식)는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과 함께 ‘의사 면허관리 강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양용준 정책이사는 ‘정신질환 및 마약류 중독 의료인의 합리적 면허관리 방안’을 주제로 발제에 나서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2019~2023년 연평균 6228명의 의사가 정신질환을 진단받았고, 이들이 연평균 2799만 건의 진료와 수술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간 조현병과 망상장애 진단을 받은 의사는 연평균 54명으로, 이 들이 진료 또는 수술한 건수는 연평균 15만 1694건으로 집계됐다.
또한, 조울증 진단을 받은 의사도 연평균 2243명에 달했으며, 연평균 909만 5934건의 진료와 수술을 진행했다.
2019~2023년 사이 정신질환이 있는 간호사가 돌본 환자도 연평균 1만 47명에 달했다.
조현병과 조울증으로 진단을 받은 간호사는 각각 연평균 173명과 4120명이었으며, 마약중독으로 진단받은 의사와 간호사는 각각 5명, 7명으로 보고됐다.
추 의원이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의사의 현황을 발표하자, 의료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특히 대한조현병학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발표라며 규탄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법에 규정된 의료인의 결격사유에 정신질환자, 마약ㆍ대마ㆍ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등이 있으나, 결격사유를 막연하게 정의하고 있어 구체적인 사실관계 등 정확한 실체 파악을 하지 않고 과장되거나 그릇된 정보를 부각해왔다는 지적이다.
의료인의 면허취소 여부에 대한 판단은 현행 의료법이 규정하는 기준에 따라 위법성과 해당 질환의 중증도 정도 분류 등 면밀하고 정확한 판단 아래 그 결격성과 적절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
이 가운데 양용준 이사는 정신질환 및 마약류 중독 의사와 관련, 미국 등 여러 국가의 제도를 소개했다.
양 이사에 따르면, 미국은 주 의사 면허 위원회가 의사 면허 발급 및 갱신을 관리하며, 약물 의존 병력이 있는 경우, 이를 고려해 면허 발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약물 의존 병력이 있는 의사는 주기적으로 약물 검사를 받거나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지만, 많은 주에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규정을 준수하면 면허를 허용하거나 재발급할 수 있다.
반면, 의사 면허 신청서 또는 갱신서에 약물의존병력을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고의로 숨길 경우 면허 발급이 거부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주 의료위원회 연합의 환자 안전과 의사 건강 최적화를 위한 모델은 의사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보고하는데 있어 불이익을 받거나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을 최소화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주별 면허위원회가 의사의 정신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재활과 회복을 지원하는 의사 건강 프로그램(Physician Health Programs)을 운영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영국의 일반 의료 위원회(General Medical Council, GMC) 지침에서는 의사의 약물 의존과 관련, 의사가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적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의사가 약물 의존 또는 알코올 사용 장애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경우, GMC는 의사의 적합성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보고하야하며, 문제가 확인될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한다.
치료 후 진료 가능성에 따라 GMC는 제한된 환경에서만 근무할 수 있는 조건부 등록이나 면허 정지 또는 취소와 같은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캐나다는 각 주의 의료 면허 위원회에서 의사의 마약류 사용 문제를 다루는데, 마약류 남용 문제가 있는 경우 면허를 제한할 수 있으나,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면허를 회복할 기회도 제공한다.
호주는 건강 개업 위원회에서 약물 남용과 관련, 면허에 제한을 두거나 조건부 면허를 발급하고 있다.
조건부 면허는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면허를 회복할 수 있으나, 주기적인 검사와 평가가 뒤따른다.
싱가포르와 일본은 약물 남용 문제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상가포르 의료위원회는 의사의 약물 남용이 심각하거나 재발할 경우 영구적으로 면허를 박탈하고 있다.
일본은 제도적으로 재활 및 회복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지만, 의료인의 약물 남용에 대해 사회적으로 매우 엄격한 시선을 갖고 있다.
마약류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의사는 전문성을 잃은 것으로 간주돼 재활 후에도 의료기관에 고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양용준 이사는 “의료법에 부적합한 의사가 진료할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이나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정신질환자라고 평가할 수 없다”면서 “실제 제 환자 중에서 조현병 환자인 의사가 있었지만,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고, 치료도 잘 받았으며, 오히려 약간의 강박 성향이 있어 환자 진료를 굉장히 꼼꼼히 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진단을 근거로 의료인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낙인과 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양 이사는 “진단명 자체로 어떤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선 진단명보다는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주변 사람과 보호자나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최근 언론에 보도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의사 6000여명에 대한 통계는 큰 문제가 있다”며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신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의 직업군이 의사라는 이유로 이런 통계를 발표하고, 6000여명을 정신질환자로 낙인을 찍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신건강문제로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제약이 생긴다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정신질환자나 마약류 중독자가 진료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증인지 중증인지, 자타해 위협이 있는지, 치매로 인해 인지기능이 떨어졌는지 등 이 모든 요소에 대해 전문가가 판단해야하고, 평가위원회를 구성해야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