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임병찬 교수
드라벳증후군, 발작 발생 최소화해야
[의약뉴스]
근본적인 치료법이 부재한 드라벳증후군,
발작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
매년 10월 16일은 뇌전증재단(Epilepsy Foundation)이 뇌전증 환자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인 ‘예상치 못한 돌연사(Sudden Unexpected Death in Epilepsy, SUDEP)’에 대한 위험성을 널리 알려 뇌전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제정한 ‘SUDEP Action Day’다.
10년차를 맞이한 올해의 주제는 ‘우리의 위험, 우리의 권리(Our Risks Our Rights)’로, 뇌전증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가 뇌전증이 동반하는 위험에 대해 알 권리와 함께 정보, 약물 및 치료에 대한 접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찌보면, 이는 여전히 뇌전증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뇌전증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최근 뇌전증 중에서도 신경 발달 지연과 인지 및 행동 기능장애 부담이 크고 조기 사망의 위험이 높지만 기존 치료제의 효과가 제한적인 드라벳증후군(Dravet Syndrome)에 새로운 치료제 핀테플라(성분명 펜플루라민, UCB)가 등장, 허가급여협상 병행 시법사업을 통해 조기 급여등재를 시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핀테플라는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글로벌 혁신 제품 신속 심사(Global Innovative products on Fast Track, GIFT) 대상으로 지정, 임상적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의약뉴스는 ‘SUDEP Action Day’를 맞아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임병찬 교수를 만나 극희귀질환인 드라벳증후군의 새로운 치료제의 필요성을 조명했다.
◇드라벳증후군, 치명적인 발달성ㆍ뇌전증성 뇌병증
드라벳증후군은 치명적인 발달성ㆍ뇌전증성 뇌병증(developmental epileptic encephalopathy)으로, 다약제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질환이다.
특히 생애 첫 해에 발작이 발생해 심각한 신경 발달 지연과 인지 및 행동 기능장애가 나타나며 조기 사망의 위험이 높다.
국내 환아는 200명 이하로 극히 적고, 별도의 상병코드조차 없는 극희귀 소아 난치 중증 질환이다.
임병찬 교수는 “드라벳증후군은 1978년 프랑스 소아신경과 의사 샬롯 드라벳(Charlotte Dravet)이 처음으로 기술해 알려진 희귀난치성질환”이라면서 “소아 뇌전증은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성인 뇌전증과는 증상 및 발생 원인에서 차이가 있으며, 드라벳증후군 역시 유전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소아 뇌전증의 일종으로, 증상과 경과가 특징적이어서 다른 소아 뇌전증과 구분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드라벳증후군의 첫 발작은 첫 돌 이전, 대개 생후 6개월 전후에 시작되며 발열을 동반한 열성경련과 유사하게 나타난다”면서 “일반적인 열성경련과 비교해 발병 시기가 빠르고, 발작 지속 기간이 길다는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초기에는 증상만으로 열성경련과 구분이 어려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을 동반하지 않는 발작도 빈번하게 나타나게 된다‘며 “여러 항경련제를 사용해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아 약물난치성 뇌전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드라벳증후군의 발병기전은 규명됐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은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임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드라벳증후군은 나트륨채널(voltage-gated sodium channel Nav1.1, SCN1A) 유전자의 이상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면서 “SCN1A는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매우 중요한 채널로 이 채널에 이상이 생기면 발작뿐만 아니라 인지기능 저하 등 다양한 신경증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러 연구자들이 동물모델, 세포모델을 이용한 실험연구와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약물난치성 발작으로 진행하는 정확한 기전과 치료법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첫 돌 이전 반복된 열성경련, 드라벳증후군 의심해야
드라벳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은 비특이적인 발작이다. 첫 발작은 일반적으로 생후 6개월 차에 발열과 함께 발생하는 열성경련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적인 열성경련과 달리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거나 비특이적인 형태의 발작이 있는 경우 드라벳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임 교수는 “초기에는 열성경련과 구분이 쉽지 않아 비열성 발작이 빈번해지는 첫 돌 이후가 돼서야 비로소 진단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전자검사를 통해서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진단할 수 있게 됐다”며 “첫 돌 이전에 장시간 지속되는 열성경련이 2회 이상 재발한다면 유전자검사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강조했다.
이 가운데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유전자검사가 보편화됐기 때문에 유전자검사를 통해 조기 진단하게 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전자검사가 도입됐지만, 아직까지는 진닫받지 못한 환자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벳증후군 환아가 약 200명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실제 환자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임 교수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드라벳증후군 유병률 및 환자 수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실제 환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따라서 유병률보다는 발생율로 정리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가장 최근에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는 10만 명의 신생아당 8명 정도에서 드라벳증후군이 발생한다고 보고하고 있다”면서 “2023년 국내에서 약 23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기 때문에 15-20명 정도의 새로운 드라벳증후군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전에는 연간 출생 신생아 수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20세 이전으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드라벳증후군 유병환자수는 500명 이상 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유전자 검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점은 약 10년 전에 불과하고, 실제로 검사가 활발하게 시행되기 시작한 시기는 5~6년 전으로, 유전자 검사를 미처 받지 못한 환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약 200명’이라는 수치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라벳증후군을 진단받은 사례만을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수치로, 실제 유병환자 수는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첫 돌 이전에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유전자검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임 교수의 조언이다.
그는 “드라벳증후군은 조기에 진단되지 못해 약물난치성 뇌전증으로 진행되고 심각한 신경학적 장애가 동반되는 10대 후반 이후가 되면 다른 난치성 뇌전증과의 구분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면서 “따라서 질병 초기에 증상으로 질환을 의심하고 유전자검사로 진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역설했다.
◇드라벳증후군 환아, 조기사망 위험 노출
이처럼 임 교수가 조기 진단을 강조하는 이유는 드라벳증후군 환아에서 나타나는 발작이 단순히 발작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드라벳증후군에서 나타나는 발작은 영아기부터 시작돼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되며, 아이가 자라면서 발작 형태, 지속 시간, 빈도가 달라질 수 있다.
발작 발생 이후에는 거의 모든 환자가 중등도에서 중증의 운동, 언어, 인지기능 발달 장애를 겪는다.
이로 인해 드라벳증후군 환자의 91%는 최소 1개 이상의 동반 질환을 겪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3가지 이상의 신체 혹은 정신적 동반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실례로 한 연구에서는 드라벳증후군 환자 중 자폐증과 ADHD를 가진 비율이 각각 42%와 24%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임 교수는 “드라벳증후군은 대표적인 발달ㆍ뇌전증 뇌병증”이라며 “간략하게 설명하면 유전적결함에 의해서도 인지기능 장애를 포함한 뇌병증이 발생하고, 발작이 조절되지 않으면서 뇌병증의 악화에 추가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근본적이 치료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발작 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인지기능을 포함한 신경학적 장애의 악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드라벳증후군 환아는 일정기간 이상 지속되는 상태인 ‘발작 지속상태(status epilepticus, SE)’와 야간 발작, 발작 관련 사고, 그리고 발작 중 예상치 못한 돌연사(SUDEP) 등으로 항상 조기 사망에 노출되어 있다.
전체 환자 중 15%가 유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사망하며, 특히 2세에서 7세 사이 아이들의 사망 위험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드라벳증후군 환아들은 SUDEP을 겪을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전체 뇌전증 환자들의 사망 원인 중 돌연사는 7.5~17%를 차지하지만, 드라벳증후군 환자에서는 전체 사망의 20%에 달했다.
특시 2017년에 보고된 한 연구 결과, 드라벳증후군 환자에서 보고된 사망 원인의 56%를 SUDEP이 차지했으며, 주요 사망 연령대는 1~3세였다.
임 교수는 “뇌전증 환자들은 SUDEP를 마주할 위험이 높다”면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드라벳증후군 환자는 전체 뇌전증 환자에 비해 6배 이상의 높은 빈도로 SUDEP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이어 “SUDEP의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수면 중 발작이 지속되면서 호흡이나 심혈관계 문제가 동반돼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따라서, 최대한 특히 전신강직간대발작을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더 나아가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발작의 예측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2차적인 위험성, 그리고 예후 예측 및 치료 전략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드라벳증후군, 환아뿐 아니라 가족들의 삶의 질에도 악영향
다만, 드라벳증후군을 조기에 진단한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SUDEP 등 치명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어 보호자들 역시 불안감을 떨칠 수 없고, 경제적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례로 폴란드에서 드라벳증후군 환아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호자의 76%가 개인 시간의 부족을 겪고 있으며 72%는 간병 및 돌봄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제한된다고 호소했다.
임 교수는 “드라벳증후군의 궁극적인 치료 목표는 경련 발작을 줄이거나 아예 발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으로, 일부 항경련제는 드라벳증후군 환자의 발작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드라벳증후군의 초기 치료에 추천되는 약제가 있지만, 완벽한 발작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전문의들은 개인의 임상적 경험에 근거해 다양한 치료 옵션을 조합해 처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드라벳증후군의 발작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치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작이 발생하는 시점을 예측할 수 없어 일상생활 중 항상 불안감을 안고 지낼 수밖에 없다”면서 “발작이 멈추지 않고 길게 지속되는 발작지속상태(status epilepticus)로 진행해 응급실을 자주 찾게 되고,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드라벳증후군은 하나의 항발작약만으로는 발작을 완전히 관리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치료제를 교차하거나 병용하여 투약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최근에는 1차적인 항발작약에 더해 사용할 수 있는 부가요법(add-on) 치료 옵션인 스티리펜톨(stiripentol)과 의료용 대마오일인 칸나비디올(cannabidiol)이 국내에도 허가됐지만, 두 약제 모두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고, 희귀질환 산정특례제도에 의해 의료비 지원이 되더라도 약가 자체가 비싸 환자와 보호자에게 경제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드라벳증후군 환아들은 발작 이후 인지기능 장애나 운동발달지연과 같이 신경학적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인 특수 교육과 재활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과 함께 보호자가 환자의 곁에서 항상 도움을 주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승인 약제 신속 도입,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드라벳증후군에 대한 연구 개발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임 교수의 전언이다.
그는 “드라벳증후군을 포함해서 여러 유전질환에 대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드라벳증후군의 경우 아직까지 환자에게 바로 투여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유전자 치료제 이외에도 다양한 치료 약물을 개발하고 있으나 연구 단계를 넘어서 실제 허가가 가능한 수준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임상시험 결과를 확보한 약물은 매우 드물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후보 약물 중 하나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 허가돼 있는 펜플루라민염산염(fenfluramine) 성분의 치료제(제품명 핀테플라)는 이전에 비만 치료에 쓰이다가 연구를 통해 경련 발작 조절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져 1차 항발작약에 더해 사용할 수 있는 부가요법 치료 옵션으로 개발된 사례”라며 “임상 연구를 통해서도 2세 이상의 드라벳증후군 환자에서 유의미한 임상적 유효성을 보이는 것이 확인돼 해외 보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주요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비교적 최신 치료 옵션인 펜플루라민도 모든 드라벳증후군 환자의 경련을 완벽하게 조절하기는 어렵고, 신경학적 장애를 회복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한계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 교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많은 드라벳증후군 환자와 가족들이 더욱 새로운, 혁신적인 치료법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펜플루라민과 같은 새로운 치료 옵션은 의료 현장에 새로운 무기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분명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언급한 치료 옵션 이외에 우리나라에 바로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이 진척된 약제는 없으며, 그나마 단시간 내에 국내 도입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치료 옵션이 펜플루라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우리나라 연구진의 손으로 직접 혁신적인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면 무척 고무적이겠지만, 해외의 치료 동향에 맞춰 이미 주요 국가에서 승인된 치료 옵션들을 국내에 신속히 도입하는 절차가 우선적으로 마련된다면 환자들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