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료보험국가이면서 미국형 정책 따라가”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규식 원장..."의료사회화에 대한 이해 부족"
[의약뉴스] 우리나라는 사회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인데도, 시장주의 의료정책이 주가 되는 미국형 정책을 따라가고 있다는 지저이 쓴소리가 나왔다. 사회의료보험국가이면서도 의료사회화 원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원장 안덕선)은 10일 의협 회관에서 ‘바람직한 의료개혁의 방향’이란 주제로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건강복지정책연구원 이규식 원장은 ‘의료개혁의 올바른 방향’이란 발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 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높은 본인부담에도 불구하고 의료이용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럽의 건강보험국가에 비해 거의 배 이상 높고, 복지국가로 알려진 덴마크, 스웨덴 등에 비해서도 3~6배 정도 높다는 것.
이 원장은 사회의료보험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해 과다이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비스를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서비스 이용을 수요와 공급에 맡긴다는 것인데, 의료보장이란 환자가 가격을 인지할 수 없도록 만든 사회적 장치”라며 “이때 서비스 이용을 시장에 맡길 경우, 과다이용이 일어나 제대로된 배분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이 서비스 배분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필요도를 토대로 배급한다는 의미로, 필요도는 의료서비스 구매자가 의료지식, 의료기술, 인구구조, 상병구조, 경제수준 등을 감안해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결정한다”며 “필요도는 보험급여로 현실화하고, 필요도 접근에서 의료의 구매자는 환자가 아니라 재정조달자인 정부 또는 보험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의료보험국가이면서도 의료사회화 원리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 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의료사회화를 위한 두 가지 핵심요소는 ▲경제적 접근성의 형평성 ▲지리적 접근성의 협평성인데, 경제적 접근성의 형평성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보험급여와 가격의 보장, 원가를 토대로 하는 가격 설정”이라며 “지리적 접근성의 형평성은 진료권을 설정하고, 1, 2, 3차 의료기관의 단계적 이용을 통한 진료의뢰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문제는 1989년 7월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설정된 진료권을 폐지한 것”이라며 “건강보험통합을 위해 조합방식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는데, 특히 통합은 사회복지학 교수들과 의료계의 일부 학자들이 주도했다”고 전했다.
특히 “비판 중 하나가 보험을 지역단위로 조합을 구성해 운영하기에 지역주민은 의료이용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라며 “조합방식의 의료보험제도는 의료자원의 도시편중을 초래하지만 통합방식의 의료보험제도는 의료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이룬다는 억지주장을 펼쳤다”고 힐난했다.
반면 “당시 정부는 통합론에 대한 선제 방어를 위해 1995년 8월 대진료권을, 1998년 중진료권을 폐지했고, 이때부터 환자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며 “2004년 KTX 개통으로 환자의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했고, 환자가 떠난 지방에서 의료기관이 생존하기 어려워, 환자를 따라 수도권에 집중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 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문제는 사회의료보험국가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시장주의 의료정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형 정책을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원장에 따르면, 미국은 1935년 의료보장은 제외한 사회보장법을 도입했는데, 이때 미국의사회는 의료의 사회화를 초래한다면서 반대했고, 시장중심 자유주의 경제학자와 경제단체, 공화당에서도 의사회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제대하면서 의료를 권리로 받을 수 있다는 사고가 등장해 1965년 사회보장법을 개정, 1966년부터 Medicare 및 Medicaid 제도를 도입했다.
그는 “미국은 의료보장제도의 전면적 도입을 반대하다 일부 국민에게만 제한적으로 도입했다”며 “민영보험 중심으로 시장형 의료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유럽의 의료보장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의료정책을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제도를 실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규범적 접근으로 정책을 수렴해야한다”며 “그럼에도 의료의 소비자 시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 미국형 시장주의 의료정책을 시행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러한 배경에는 미국에서 주로 공부해 미국 교과서로 수업을 한 대학교수가 있고, 정부나 공공기관 직원들이 주로 미국에서 연수해 미국형 정책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며 “미국형 정책의 문제점은 수요접근을 통해 의료의 소비자 시장이 있는 것으로 믿게 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의료의 구매자를 환자로 인식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위시한 각종 회의에 환자단체가 참여해 정책관련 의사결정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라며 “건강보험의료를 공공재가 아닌 사적재화로 간주하고, 비급여서비스 제공과 가격 설정권을 의료기관에 허용해 영리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