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응급의료체계 한계 봉착, 사명감으로 버티던 의사들 떠나”

응급의학계 "환자 증가ㆍ전원 불가ㆍ의료소송 3중고"..."복지부 주자은 거짓"

2024-08-26     의약뉴스 강현구 기자

[의약뉴스]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의 여파로 지역 응급의료 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여파가 대학병원을 거쳐, 지역의료체계를 뒤흔들어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

정부에서는 일부 응급의료기관에 국한된 문제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응급실 내원 환자가 늘어났지만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이 불가능하고, 의료소송 위험성이 증가하는 3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환자 내원 증가, 전원 불가, 의료소송 위험 증가라는 3중고를 겪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서울 소재 인제대 상계백병원 응급실은 주말과 야간 진료를 제한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와 성형외과, 안과 환자는 주말에 상계백병원 응급실을 찾아도 진료를 받을 수 없으며 이비인후과와 외과는 주말과 야간 진료가 불가능하다.

심근경색 중재술도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는 제한된다.

양산부산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소청과를 비롯해 응급 수술 대부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산부인과 응급 분만도 제한된다.

전라남도 권역응급의료센터인 목포한국병원도 기관지 응급내시경 불가능하고, 성인과 영유아 모두 영상의학 혈관 중재가 불가능하다.

경기도 권역응급의료센터이자 공공기관인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흉부와 복부 대동맥, 담낭담관질환에 대한 응급진료가 불가능하며, 영유아 장중첩, 폐색 치료, 사지접합치료, 기관지 응급내시경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의협은 “언론에 따르면 응급 환자 수용 능력이 가장 뛰어난 권역응급의료센터이며 경기 남부의 간판 격 응급실로 통하는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절반인 7명이 사표를 냈다고 한다”며 “의사들이 중증ㆍ응급ㆍ외상환자를 더 잘 치료하게 도와야 할 정부가 응급실을 절단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경상북도 김천지역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붕괴 중인 지역응급의료체계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김천은 인구 14만의 소도시로, 지역 내 종합병원은 김천의료원과 김천제일병원이 있다.

30분 거리에 있는 구미시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구미차병원, 지역응급의료센터인 구미순천향병원이 있고, 경북 칠곡에는 칠곡경북대학병원이 있어서 중증 응급환자는 이 병원들로 전원하고 있다.

김천지역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평일 60~70여명 정도, 일요일에는 100~120여명 정도로 많은 환자들이 내원하고 있는데, 농촌지역이라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환자가 많기 때문으로, 중증도도 높은 편에 속한다.

문제는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의료대란이 발생하면서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이 쉽지 않다는 것. 

A씨는 “평소 구미, 칠곡, 대구에 위치한 대학병원들에서 전원을 받아줬는데 최근 수개월 전 부터는 중증 응급환자 전원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전했다.

그 이유로 "대학병원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라며 “다른 지역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일들이 전국 응급실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무력감에 빠져서 더이상 진료하기가 힘든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전국 408개 응급실 중 응급의학과 의료진들의 사직으로 응급실 진료에 문제가 생긴 응급실은 5개소로 1.2%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라는 정부 공식발표에는 ‘거짓말’이라고 

지역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B씨는 “전국 응급실 408개가 다 같은 응급실이 아니다”라며 “120여개 정도는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이고, 270여개 정도가 상대적으로 중등증, 경증 환자를 담당하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인데, 차질이 생긴 응급실은 최고로 중증 응급환자를 담당하는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120여개 상급 응급실 중 언론에 나온 5개소만 해도 전국 중증환자 응급의료의 4%가 넘고, 언급되지 않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116여개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비슷한 상황”이라며 “정부는 대학병원에서 중증 응급환자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면 정권이 날아갈 정도의 분노가 일어날 것이기에 기를 쓰고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지방 응급의료가 붕괴되는 이유에 대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응급실 내원환자 증가 ▲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중증 응급환자 전원 불가능 ▲의료소송 증가 및 여러 악법 발의 등을 꼽았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대도시 대학병원 응급실의 환자 처리능력 감소로 인해 평소에는 그 병원들에서 처리되던 환자들이 밀려나서 주변 중소도시까지 밀려오고 있다”며 “이제까지 관내 환자만 수용하면 됐는데, 최근에는 주변 도시는 물론, 지명이 생소해서 기억도 안나는 지역에서 이송 문의가 계속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로 인해 평소보다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로 내원하게 됐고,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세와 맞물려 응급실 전체 진료가 마비된 지 오래”라며 “한정된 의료 자원보다 많은 환자가 몰려들면 이를 재난 상황이라 정의하는데, 이때 의료사고의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과 각종 의료악법 발의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했다”며 “대한민국 의사 중 단 7%밖에 안 되는 젊은 의사들이 최저임금보다 못한 시급을 받으면서 주 100시간 넘게 갈려 나가고 있었는데, 문제는 전공의들이 실제 대학병원 환자 진료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들이 다 사직해버리니 이 일은 전부 의대교수들이 하게 됐는데, 이들의 나이가 다 40~50대이기에 전공의들처럼 밤새며 진료할 수 없다”면서 “울산대병원 응급실만 봐도 응급의학과 교수 5명과 전공의 8명이 응급실을 지켰는데, 전공의들이 사직하고, 교수 중 1명이 사직하니, 지금 4명이서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타과 교수들을 응급실로 투입해 어거지로 버티고 있다고 하지만, 해당 교수들도 본인 진료도 봐야하는데 응급실 당직 서고 난 다음에 어떻게 진료를 보겠는가”라며 “모든 진료과가 연결되어서 다 같이 응급의료가 마비된 상횡이라, 대학병원은 더 이상 중증 응급환자를 전원 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A씨는 최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응급실을 탈출하는 가장 큰 이유로 의료분쟁을 꼽았다. 응급실 내원 환자가 늘어나면 의료분쟁 발생 위험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A씨가 근무 중인 응급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6명을 유지했었으나 최근 3명이 사직했는데, 사직한 전문의들은 의료소송 리스크를 견딜 수 없다고 토로했다는 전언이다.

A씨는 “의사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사고들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형사소송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판례에 따르면 17억 배상하라는 배상액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소송 리스크들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사직하는 이유”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환자들에게 ‘응급실 진료를 못 보게 되면 신고해라, 변호사를 붙여주겠다’면서 의료소송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응급의학과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 과 중 하나지만, 사명감 하나로 지원하고 있다”며 “많은 악법들이 매년 누적되는 것들을 참고 인내하다가 이제는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왔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