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교감 없이 발표한 무기한 휴진에 의료계 내분 조짐
“득보다 실이 많고, 회원 참여 없을 것”...일각 "집행부 입장 기다려보자"
[의약뉴스] 의협이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철회 등 요구안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의료계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협 집행부가 대의원회나 시도의사회와의 사전 논의없이 갑작스럽게 무기한 휴진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전해져 반발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임현택)는 의대 정원 증원,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반발, 18일 하루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여기에 더해 임현택 회장은 18일 여의도공원에서 진행한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의대 증원에 맞서 무기한 휴진 카드를 꺼내들었다.
임 회장은 “정부에 우리나라 의료수준을 나락에 떨어뜨리는 의대 정원 증원, 의료농단패키지 강요, 전공의, 의대생들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즉각 멈출 것을 요구한다”며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개원가의 투쟁동력을 결집하고 독려해야 할 시도의사회장들과는 무기한 휴진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진행한 집단휴진에 앞서서도 시도의사회장들은 지난 9일 열린 전국의사대표자대회 직전에야 알게 됐다며 의협 집행부를 성토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임현택 집행부가 사전 논의없이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발표, 시도의사회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향후 추가 휴진 여부에 대해선 회원 뜻을 물어 따를 것”이라며 “전에 했던 투표는 이전 얘기고, 27일 무기한 휴진은 다시 회원분들 뜻을 물어야 한다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19일 입장문을 통해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의사회장들은 임 회장이 여의도 집회에서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임 회장의 회무에서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투쟁의 중심과 선봉에 서 있는 전공의 대표와의 불협화음도 모자라 대의원회, 광역시도회장, 감사조차 무시하는 회무는 회원들의 공감을 받기 힘들고 회원들의 걱정이 되고 있다”며 “시도회장들이나 회원들은 존중받고 함께 해야 할 동료이지, 임 회장 장기판의 졸이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박단 위원장도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발표한 무기한 휴진 역시 의협 대의원회, 시도의사회와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파악했다”며 “임 회장은 언론 등 대외적 입장 표명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하길 바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도의사회장은 “(무기한 휴진을) 갑작스럽게 발표했고, 시도의사회장들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으며, 의협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도 논의한 바 없다고 했다”며 “그동안 허니문 기간이라고 생각해 참고 가려고 했는데, 27일 무기한 휴진은 임계점을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옳은 소리를 낸다고 해도, 정부로부터 억압받고 회원 피해가 우려된다면 조심해야 하지 않나”라며 “아무리 옳더라도 전면휴진, 무기한 휴진은 반대하는 입장이 많아 의견을 표출할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의협 회장이 해야할 일”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그동안 정부와의 대응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건으로 인해 집행부가 무슨 일을 하냐는 시각이 많아졌다”며 “정부가 나서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패착인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도의사회장도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지금 정부에서 움직일 생각을 전혀 안 하는 상황인데, 무기한 휴진을 하려면 의협 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를 보고 대의원회나 이사회 등에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무엇보다 “총궐기대회에서 발표한 무기한 휴진은 이전에 어떤 이야기도 없었다”며 “오죽 답답했으면 한 시도의사회장이 집행부에 ‘시도의사회장들이 의견을 모아서 전달하면 반영은 되는가’라고 묻기까지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집행부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임현택 집행부가 무기한 휴진을 발표하기까지 사전 논의가 없었지만, 그만한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
의협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은 “대의원회나 시도의사회와 상의가 되지 않은 건 맞다”면서도 “그렇지만 지금 집행부의 행동을 보면 대의원회나 시도의사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같진 않고,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대의원들에게는 대의원회를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닌 것 같고,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하루 이틀 기다려보고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자 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배제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이라고 하는데, 하루 휴진도 아니고 자칫 잘못하면 퇴로가 없는 상황에 들어서게 된다”며 “집행부가 대의원회와 시도의사회장들을 패스했다는 건 절차상으로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인 만큼, 시도의사회와 얘기가 없었고, 대의원회도 그렇다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임 회장에겐 무기한 휴진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오히려 출구전략을 만들도록 도와줘야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모 시도의사회장은 “27일 무기한 휴진 투쟁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며 “임현택 회장이 무기한 휴진투쟁을 하겠다고 하면 시도의사회장들이 감당해야 하는데, 회원들의 현실적 문제를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시도의사회장들이 언짢아하는 부분은 임 회장의 독단적 결정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3일 앞두고 서울에서 회의할 테니 올라오라고 하고, 촛불집회도 5일 앞두고 갑자기 진행한다 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심지어 "지난 9일 발표한 휴진투쟁도 원래 20일이었다가 갑자기 바뀌었는데, 그 이야기도 2시간 전에 들었다”고 성토했다.
다만 “도대체 임 회장이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그의 입장에선 남은 카드가 무기한 휴진 밖에 없다”며 “시도의사회장들에게 무기한 휴진투쟁을 하자고 하면 동의를 얻기 어렵기에, 대정부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서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지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27일까지 시간을 가지고 협상 카드로 쓰고, 마지막에 출구전략을 마련해서 나오려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따라서 임 회장이 무기한 휴진을 선언했을 때, 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는 ‘상의없이 이럴 수 있냐’며 출구전략 차원에서 성명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장 무기한 휴진 선언을 비난하며 질러버리면 정부로서도 의료계를 상대하기 쉬워진다”며 “이왕 던진 카드라면 잘 쓰라며 출구전략을 도와줘야 하는데 결국 마지막 카드를 우리 스스로 찢어버린 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