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앞으로 다가온 본인확인 강화제도, 의료계 부담 가중
내달 20일부터 시행..."필요한 제도지만 업무부담ㆍ민원 우려"
[의약뉴스] 내달 20일 시행 예정인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제도’를 앞두고 의료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제도 도입에는 동의하지만, 본인확인을 위한 업무부담이나 환자 민원에 대한 대안없이 제도를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5월 20일부터 병ㆍ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을 때 주민등록증 등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 제도’를 시행한다.
이 제도는 건강보험 자격이 없거나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해 진료받는 사례를 막기 위해 마련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명의도용 적발 사례는 2021년 3만 2605건, 2022년 3만 771건, 2023년 4만 418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2월 병ㆍ의원에서 신분증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안을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에 포함했고 그해 5월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병ㆍ의원에 갈 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본인 사진과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등록번호가 포함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신분증이 없으면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내려받아 병ㆍ의원 진료 전 건강보험 자격 여부를 인증해야 하며, 본인확인이 되지 않으면 진료를 받는다고 해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19세 미만 환자거나 해당 병의원에서 6개월 이내 본인 여부를 확인한 경우 또는 응급 환자는 예외가 적용될 수 있으며, 이는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요양기관 본인확인 강화제도에는 찬성한다”면서 “도용 사례가 많은 만큼,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본인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진료를 보는 것이 맞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의료계 일각에 정부가 성급하게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장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 우려했다.
지금도 진료 전 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만 의무가 아니어서 보통 주민등록번호나 휴대폰 번호를 통해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데, 갑자기 신분증을 요구할 경우 적지 않은 갈등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다.
모 의사회 임원은 “의료계가 이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갑작스럽고 일방적으로 도입하면서 절차까지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협의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과의사회 신준현 정책부회장도 “대한의사협회나 대한개원의협의회에서 이 제도에 대해 우려의 뜻을 표명하고 있지만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며 “제도가 시행되면 현장은 당연히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주민등록번호나 휴대폰 번호만 물어봐도 화내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신분증까지 보여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제도 시행 후 의료기관에 여러 컴플레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에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충분한 준비를 거쳐 제도를 시행해야 하며, 보상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추진 배경이나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해야할 일을 의료기관에 떠넘기지 말라는 주문이다.
대개협은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일은 의료기관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라며 “정부에서 민간 기관에 협조를 구할 때는 해당 기관의 업무에 적합한 것은 물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양해를 구하고, 합의 후에 이뤄지는 것이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시행일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의료기관에 오면 신분증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지 의문”이라며 “대국민 홍보조차 전무한 상황에서 현장의 혼란은 무시한 채, 본인확인을 위반한 의료기관에는 과태료 처분을 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의료기관에서 환자들에게 신분증 들게 하고 머그샷을 찍으라는 건지, 차트에 확인 사실만 기록하면 된다는 건지, 지문 조회를 해야하는지 등 기초적인 지침이 하나도 없다”며 “마음먹고 도용을 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본인확인을 한들 100%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뿐만 아니라 “만약 환자 확인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는 의료기관에 삭감과 과태료 처분을 내릴 것”이라며 “의료기관이 신분 도용을 한 것도 아니고 피해 보는 입장인데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로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국민 80% 이상이 동의하는 등 충분한 준비가 됐을 때 제도를 시행해야 하며, 의료기관에 업무부담이 없도록 최소한의 개입으로 본인확인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며 “도용에 따른 2차 적인 책임을 의료기관에 떠넘기지 않아야 하고, 상식을 벗어난 과태료 규정을 폐지하고 본인확인 업무에 대한 보상을 마련해야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