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보험 도입논의에 대하여

약사 박순국

2006-05-02     의약뉴스
민간의료보험 도입에 관하여는 상당히 오랜 기간 논의가 되어 왔다.

1994년 의료보장 개혁위원회에서 공 보험의 보충적인 수단이 필요하다는 의견 개진이 있었고, 2002년 이후 WTO DDA 보건의료시장 개방 협상과 관련, 민간의료보험의 문제가 외국 의료기관들의 진입 가능성과 더불어 논란이 되었으며 최근에는 경제특구 및 의료시장 개방논의와 함께 민간보험 도입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건강보험시장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며, 의료기관간에 경쟁을 유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소비자의 효용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의료공급자(병․의원, 의사 등)의 입장에서는 공적 보험 내에서 최대한 수가를 보장받고 정부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수가 구조 하에서 최대한의 이윤 확보가 가능하므로 민간보험 도입을 원하고 있고, 재계는 건강보험재정의 안전성과 의료서비스의 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적 보장은 정부 주도 하에 기존의 방식대로 운영하고, 고소득층을 위해 민간보험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내는 물론 외국계 생명보험회사 등도 우리나라가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도입을 바라고 있다.

또한, 정부의 입장에서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건강보험재정지원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 복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공보험을 축소하고 추가적이고 고급화된 의료서비스 영역에 대해서는 민간의 역할을 증대시킨다는 취지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일정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건강보험문제를 비용 효과적 측면과 수지타산의 차원에서 접근해도 되는 것인지, 민간보험을 도입하기에 적절한 시점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민간의료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상품의 보장내역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가입하고, 보장내용과 가격도 천차만별인 보험약관과 상품설명서의 지나친 복잡성,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 등으로 소비자의 합리적인 구매의사결정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민간 의료상품의 합리성 제고를 위해 획기적인 표준화를 통한 소비자의 실질적인 선택권 강화가 필요하며 또한 민간의료보험의 사회적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고위험군을 배제하고 건강한 사람들만을 선택적으로 가입시키거나 다수의 질병을 급여대상에서 제외하여 보험의 본질적인 목적을 훼손시키는 현행의 보험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칠레의 예에서 보듯이 민간의료보험 도입 이후 고소득 계층은 질 좋은 서비스를 받는 반면 저소득층은 진료에 접근조차 어려워지는 의료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즉, 민간의료보험은 특정한 종류의 치료만 하고 주로 건강한 사람들만 가입시켰으며, 그 결과 노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보험료가 너무 높아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질병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민간의료보험에서 계속 퇴출당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민간부문이 증가하면서 국가보건의료체계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여 공적의료의 질이 하락하게 되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질 낮은 서비스만을 제공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체계의 도입은 결국, 공보험의 기능 축소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현저히 약화시킬 것이고, 이는 곧 국민이 피해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민간보험을 도입하는 것이 정부예산의 장부상 비용은 줄어들지 몰라도 결국은 통제되지 않는 영역으로의 비용 전가(cost shifting)가 발생하여 비보험 부문을 증대시킴으로써 전체 국민의 부담은 줄지 않고 사회적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는 결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정부가 내세우는 '선택권 확대'가 건강에 대한 책임을 시장질서 아래 내맡겨 개인적으로 부담하게 함으로써 혹시 재현될 수 있는 건강보험재정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