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메르킬슨로젠탈증후군
2006-04-25 의약뉴스
국내에 정확한 환자수가 알려지지 않은 메르킬슨로젠탈 증후군 환자 아버지인 허성수씨(가명)는 딸 허영자(가명)의 병원 행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딸 영자(가명)가 지금은 어느덧 20살이 됐다. 하지만 병이 완치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치료할 수 없는 희귀질환자로 남아있다. 허씨의 설명은 이어진다.
“입이 제자리로 찾아와 다 나은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런데 혀가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상황이 왔어요. 그래서 연고를 바른다 집 근처 제주대병원을 간다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었지요.”
아프면 그때그때 약 먹고 바르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무슨 병인지 조차 알 수 없고 의사들도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치료를 해준 한의원은 큰 병원에 가라고 재촉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와 고려대안암병원에 입원했다. 영자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한달에 걸친 종합 검사가 이어지고 담당의사는 메르킬슨로젠탈 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어머니 윤미영(가명) 는 “그 때 심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일단 병명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의사는 “우리나라에 이 병이 보고된 예가 없다”고 말했다.
“ 제주대병원 의사 중 하나가 서울대병원을 소개해 줬어요. 3일 만에 입원 날짜가 잡혔는데 서울대병원 의사들도 고개만 갸우뚱 해요. 치료약이 없다거나 개발된 약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지요.”
신경과 이비인후과 류마티스 내과를 전전하다 다시 집이 있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는 사이에 영자는 대학에 입학했다.
공부를 잘해 어렵지 않게 제주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성한 곳이 없어 학교생활이 순조로울 리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을 느껴 운동을 심하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성피로를 달고 다녔다. “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드러누울 것을 알고 있어요. 괴로울 뿐입니다.”
아버지는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빨리 죽는다면 본인이나 주변도 좋지만 그렇지 못하니 서로 괴로운 것”이라고 아비로서 자식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까지 했다. 다행히 큰딸은 아무 이상이 없어 위안을 삼고 있다.
“제약사에서 환자 몇 명을 위해 약을 만들겠어요.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방치하고 있는 상태지요. 정부 혜택이라는 것도 뭐 별 다를 게 없어요.
환자가 많이 있어야 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국내에 한 명 뿐이라니 정부도 그저 그렇게 대하고 있지요.”
<사진2>가스 배달하는 아버지와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는 오늘도 지친 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다.
영자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잘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다행 이예요. 가슴이나 다리 관절이 많이 아프지만 참을 수 있습니다.” 영자는 어머니나 아버지 보다 오히려 담담했다.
시시때때로 증상이 나타나지만 견딜 만 하다고 했다. 혓바닥이 갈라지고 귀나 머리 얼굴 등이 아프다. 정확히 몸을 반쪽으로 갈라 한쪽의 고통이 특히 심하다. 영자는 루프스 환자들이 즐겨 먹는다는 스테로이드제를 달고 산다.
어머니는 딸이 병원에서 실험대상이 되고 있어 지금은 잘 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약을 한 주먹씩 주는데 내성이 쌓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면 의료진은 알아서 하라 대답 한다”고 울먹였다.
“ 한 번은 약 부작용으로 눈동자가 돌아가고 혈압이 떨어져 꼭 저세상으로 보내는 줄 알았어요.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야지요.”
어머니는 영자가 자신 때문에 불치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임신한 줄도 모르고 몸살 감기약을 먹은 것이나 성당 일을 무리하게 한 것이 원인이 아닌 가 자책하고 있다.
제주도의 병원에서는 재활치료를 하면 조금 낫다고 하지만 그마져도 여의치 않다. 한 번은 준 종합인 한마음병원 의사가 한양대구리병원의 동기가 이 병의 논문을 쓰고 있는 것을 봤다며 발췌된 내용을 주기도 했으나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때 논문은 젊은 남자 환자가 피부과 진단을 받은 내용이었다. 얼굴을 만질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고 기억해 냈다. 하지만 영자에게는 의미 없는 논문이었다.
영자 부모는 희귀질환연합회에 가입을 했다. 혹시나 같은 질병에 걸린 환자에게서 연락이 올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면 좀 마음이 나아질까 해서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다. “ 의사들은 이 병에 대해서 몰라요. 그래서 제가 이러이러한 병이다고 설명하는데 그러면 막 화를 내요. 처방전을 써달라고도 하지 못하죠.”
이 병을 처음 진단한 사람은 고대안암병원 이비인후과 정학현 교수다. 그는 현재 외국에 나서 있어 취재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같이 진단에 참여했던 임기정 교수와는 인터뷰가 가능했다.
임교수는 “ 안면마비가 와 있고 얼굴이 부어 있었으며 혀가 갈라진 모습 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해 냈다. 그는 의학저널을 봐도 진단을 놓치기 쉽다고 했다.(외국의 경우 30년 동안 환자를 확진하지 못하거나 진단을 잘 못 내린 경우도 있다.)
임 교수는 “반복적인 안면마비와 얼굴이 붓고 혀가 갈라지는 3대 특징이 이 병을 확진한 계기 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회에 정식 보고 되지는 않았다.
그는 “자칫 다발성경화증이나 다른 신경계 이상증상으로 오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팔다리 마비나 시력저하 등도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영자는 시력이 약화돼 안경을 맞추기도 했다.
* 메르킬슨로젠탈(Melkersson-Rosenthal Syndrome): 안면신경마비가 시도 때도 없이 주기적으로 오고 정확히 몸의 반쪽 부분이 심하게 아픈데 어떤 경우 피부를 만질 수 없을 정도로 통증에 예민하다.
혓바닥이 갈라지고 관절에 이상이 생겨 심한 운동을 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100여명의 환자가 보고 되고 있으며 국내는 한 두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의 임상양상을 보이며 원인 치료는 불가능하다. 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다. 임기정 교수는 “학회에 정식 보고할 수 없었던 것은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bgusp@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