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질환과 동일한 수준의 정신의료서비스 제공해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위원장..."민관협력 시스템 구축ㆍ공동체 복윈 필요"
[의약뉴스] 우리나라 중증정신질환 정신의료서비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민관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신건강 국가책임제 논의를 위한 연속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총 2부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국가 자살예방 정책과 서비스 개선 방향’이란 주제로 1부가 진행됐고, 2부는 ‘정신보건의료서비스 국가책임제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과 정책 개선 방향’이란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 특별위원장(경희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은 ‘정신건강의 국가책임제 강화를 위한 법과 제도’를 통해 신체질환과 동일한 수준의 정신의료서비스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백 위원장은 진주방화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중증정신질환 정신의료서비스의 문제를 살펴봤다.
범인인 안인득은 조현병 증상 발생 후 치료를 받지 못했고, 2010년 폭력사건을 일으킨 이후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초기 집중적 치료와 재활서비스 지원이 미비해 2015년부터 1년 6개월의 외래치료에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것.
결국 범인은 2016년 7월 이후, 자의로 치료를 중단했는데, 이때 치료지속을 위한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고, 치료를 유도할만한 어떠한 재활복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다. 2019년 1월과 3월 재발로 인한 지속적 폭력 상황에서 공공응급입원체계가 작동하지 못하고 보호자에게 책임이 전가됐고, 2019년 4월 방화 및 살인이라는 최악의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
백 위원장은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진찰을 받아야 하는 법으로 정해진 2가지 상황이 있는데, 코로나 등 감염질환과 중증정신질환”이라며 “코로나와 관련된 감염에 대한 법규는 굉장히 촘촘하게 이뤄진 반면, 중증정신질환은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이 잘 행해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증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아도 설득에 의한 동의없이 진찰이 불가능하다”며 “감염과 달리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지방자치단체와 공무원은 신청 권한만 있고, 본인의 동의가 없을 경우 경찰과 공무원이 신청하더라도 이송을 통해 전문의 또는 전문요원의 진찰 등 진단과정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본인동의 없이 이송이 가능한 자태해위험이 큰 응급입원상황이 아니라면 가족이나 지인이 정신응급진료를 받는 것을 설득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태라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이다.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5개 국립병원 입적심에서 심사한 3만 6096건 중 가족이 59.1%, 사설이송단이 16.8%, 경찰과 구급대원을 합한 16.2%에 불과해 대부분의 입원은 여전히 가족의 책임에 놓여 있다.
백 위원장은 “조현병과 같은 정신병적 질환은 본인이 질환을 인식하기 어렵고, 우울증 등 기분장애 역시 우울증이 아니라 부정적 사고 등 인지왜곡으로 절망에 빠져 스스로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며 “대가족사회에서는 가족 안에서 해결됐으나, 핵가족사회에선 정신건강 조기발견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우울증 검진이 국민건강검진에 포함되긴 했지만 사후관리가 미흡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신건강을 알고도 편경과 차별로 인한 장벽이 있다. 정신과 진료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과 보험가입제한 등의 차별은 실제로 존재한다”며 “지역사회에 자타해위험이 있는 환자가 있어도 지자체의 책임있는 조치가 미흡하다. 안인득 진주방화사건에 이웃의 신고 7회에도 조치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의료체계 내에서도 정신건강에 대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선진국 수준의 치료제공이 어렵다. 2019년도 내원 1일당 진료비는 정신과 평균 5만 7600원, 요양병원 평균 8만 8000원, 일반병원 18만원, 종합병원 35만 7000원, 상급종합병원 61만 8000원으로 저수가 상황에서 급성기 중증치료와 지역사회 정신건강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백 위원장은 정신건강치료를 신체건강치료와 동일한 수준으로 전 국민에게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미국은 오바마 정부 시절에 행정명령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치료를 신체건강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급성기병상과 만성재활병상으로 구분해 급성기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하루 5만원대의 낮은 서비스로 급성기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시도자에겐 인권과 치료권을 동시에 보장할 법개정이 필요하다. 비자의 입원 결정과 관련, 정신건강심판원을 도입해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24시간 전문의 및 정신건강전문가 상담을 진행하고, 소방과 경찰 등 현장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대면ㆍ비대면 전문의를 현장 지원하는 한편, 우울증에 대한 건강검진 후 고위험군은 지역치료와 연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정신응급상황이 발생하도 아직 공공이송은 20%에 불과하고, 임세원법을 통해 정신응급센터가 만들어질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올해 예산심의 과정에서 반토막난 상황”이라며 “
코로나19로 입원이 힘들어져 방치된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 광역별 정신응급센터와 공공이송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백종우 법제사회 특별위원장은 “산업화와 핵가족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정신건강과 자살문제는 새로운 변곡점이 됐다”며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성을 가지고 민관협력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공동체를 복원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밝혔다.
후진국형 장기입원서비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국민정신건강증진을 통해 마음이 아픈 국민이 편견과 차별없이 언제든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는 사회로 나아가 보건-복지 서비스에 연결돼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이다.
백 위원장은 “최소한 정신응급센터는 필수의료서비스로 국민생명과 인권보호차원에서도 시급히 구축돼야 한다”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촘촘한 정신의료서비스가 신체질환과 동일한 수준으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